설교

2017.12.31 한해를 돌아 보며 결심하자 고전 9:24-27

“후회는 꼭 뒤늦게 찾아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지나간 순간순간들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 때였다는 것을 한참 지난 뒤에야 게 됩니다. 그려면 그때서야 야, 내가 그때 더 열심을 다해 살걸!이라고 후회를 해 봤자 이미 우리의 곁을 떠나간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마다 마지막 12월을 맞이하게 될 때에 늘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다짐을 해 보지만 해마다 년말이 되면 똑같은 후회를 남기는 일들을 반복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도 뒤를 돌아 보며 후회를 하며 다시 다짐하는 사람은 다시 열심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자기가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예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2017년도의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한해를 뒤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할껄하며 살다 놓쳐 버린 기회들을 생각하므로 또 다시 후회를 남기는 삶이 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도였던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 책은 사도 바울이 자기가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를 뒤돌아 보며 기록한 말씀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6-7절까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벌써 관제로 부음이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관제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구약 시대의 제사법을 알아야 합니다. 관제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번제나 소제에다 포도주를 붓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제물 위에다 포도주를 붓는 일은 제사드릴 때 마지막으로 하는 순서입니다. 그리고 그 관제를 부으면  제사의 모든 과정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마치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부어드리는 포도주와 같이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자면 사도 바울의 죽음이 코 앞에 다가 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담담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그는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만큼 사도 바울은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열심을 다해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어떻게 그런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후회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살아온 삶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열심을 다해 살므로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먼저,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한 해 였는지를 돌아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사는 인생을 마치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선수와 같이 비유를 합니다. 운동장에서 달리는 선수들을 보세요. 그들이 어떤 자세로 경주에 임하는가요? 모두 다 일등이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달립니다.

올림픽에 참여하는 선수들을 보면 모두 금메달을 얻기 위해 참석합니다. 올림픽에 참석하면서 나는 꼴찌가 될거야!라고 마음 먹고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얻기를 목표로 하는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시합에 임합니다. 그들은 4년 동안 죽어라 연습했던 것보다 더 최선을 다해 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금메달을 받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2017년도에 달리기를 하는 선수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사는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는지 돌아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한해 동안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신앙생활을 했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한해동안 주님께 최선을 다해 충성했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예수를 알지 못하는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전했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때로 어떤 일을 할 때 최선을 하기보다 차선을 선택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할 때 오직 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상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이루고자 목적한 바를 성취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자기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게 됩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스탠다드 석유 회사가 있었습니다. 존 록펠러라는 사람이 그 회사를 세웠는데 지금은 엑숀 모빌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당시 회사원 중에 아치볼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난히도 그의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호텔에서 숙박계를 쓸 때에도 자기의 이름을 쓰지 않고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자기 회사의 석유 가격과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누구와 대화할 때에도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는 말을 먼저 한 후 용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사장 록펠러가 이 아치볼드라는 사원을 불렀습니다. 록펠러는 이 평사원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스며 있는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그가 얼마나 회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지 알고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록펠러는 아치볼드야말로 스탠다드 석유 회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록펠러는 이 아치볼드를 자기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평범한 회사의 한 사원이었던 그가 세계 최대의 석유 회사의 사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자기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회사를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사람이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삶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자기 회사를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던 것 같이 여러분이 누구와 만나든지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자랑스럽게 먼저 말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누구와 만나든지 교회를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크고 교인이 많기에 그런 것을 자랑하기 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해 해 주신 그 위대한 일을 자랑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삶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금메달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는 사람의 삶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을 사는 모습일까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헬라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를 열렬히 존중하며 따랐습니. 그는 어느 날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스승님과 같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를 강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젊은이의 머리를 붙잡고 물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젊은이는 머리를 쳐들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소크라테스는 계속해서 그의 머리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때 그 젊은이는 죽을 힘을 다해 물속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젊은이에게  “당신이 물속에 빠져 있었을 때 가장 원했던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가쁜 숨을 헐떡이면서 “숨쉬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만일 당신이 숨쉬기를 원하는 만큼 지식얻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고자 마음에 목적을 정했다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그것을 향해 최선을 다해서 달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것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렬히 배우고자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한 해 동안 이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도, 여러분의 삶에서 추구하는 일들도 이렇게 최선을 다하며 달려 왔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렇게 살지 못했다면 오늘 마음의 결단을 다시 내리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오늘 그런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2018년도에도 또 다시 후회만 남기는 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시간 여러분의 자신을 돌아 본다면 결코 후회를 남기지 않는 2018 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다 같이 2017년도를 돌아 보며 최선을 다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것을 돌아 보아야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인생의 방향을 옳바로 정하고 살아 왔는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더 중요합니다.

이사야서 5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것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어느날 허허벌판에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어느날 배고픈 무리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배가 빵빵하게 빵을 먹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 후 무리를 흩으시고 제자들을 건너편으로 건너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폭풍이 부는 새벽녘에 제자들은 공포에 질려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기적을 통해 빵을 배부르게 먹었던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가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을 보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기 위해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빵을 먹기 위해 왔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의 인치신 자니라”(6:27).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무엇을 위해 수고와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올바로 알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썩어질 것만 위해 우리의 인생을 투자한다면 허송세월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목적이 올바로 정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열심히 산다 할지라도 그 수고는 헛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어떤것이 영원토록 썩지 않는 양식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정확하게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을 믿어야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올바로 믿을 때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찾아서 살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해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썩을 양식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기가 왜 사는지 정확한 인생의 방향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를 믿는 것 같이 말하고 예수를 믿는 것 같이 보이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것을 추구하며 사는 인생이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것만 추구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나중에 그 사람의 인생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아닌 자기가 원하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썩을 양식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옳바른 방향을 잡고 최선을 다해 달려 가야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올림픽에 참여해서 금메달을 얻기를 원하는 선수가 어떤 방향을 향해 달려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대로 모르고 달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가야할 방향의 정 반대쪽으로 정신없이 달려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아무리 빨리 그리고 멀리 달려 간다고 해도 그 사람이 잘했다고 칭찬해 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금메달은 커녕 오히려 사람들의 비난과 비웃음을 받을 것입니다. 정신 병자가 아니냐고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것을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자들이 영원한 천국에 가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예수님께로 돌리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맡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인생의 방향을 예수께로 향하며 살아왔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일을 뒤로 제쳐 두고 돈버는 일이나, 직장 다니는 일이나, 쾌락을 쫒는 일이나,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추구하느라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았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돈도 벌어야 합니다. 사업도 해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삶에서 이런 저런 일들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다 보면 진짜 중요한 영적인 일은 제쳐 놓고 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진짜 중요한 영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일들이 이런저런 핑개로 밀리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중요한 영적인 일을 잘하게 되면 다른 일들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서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을 제쳐 두고 세상 일만 하다 보면 나중에 후회하는 일만 남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어떻게 끝까지 주님만 바라보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사람들에게 두둘겨 맞으면서도 그리고 고생을 하면서도 기쁨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한다면 신앙생활이 힘들어서 못하는 것 보다 주님을 그 만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라고 말해야 정확한 대답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기쁘고 좋을 것입니다. 절대 지겹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함께 갈 때 즐겁던가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갈 때입니다. 그럴 때는 어떤 일을 해도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지겹고 힘들던가요?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갈 때입니다.

영국의 어떤 회사에서 신문에다 큰 광고를 냈는데 그 광고에는 이런 질문이 실려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출발해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까지 왕복으로 가장 빨리 갔다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에게는 큰 상금을 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워낙 큰상급이 걸려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에 대답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지점까지는 고속기차를 타고 가다가 택시로 갈아타면 시간을 조금 단축할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에 승용차를 타고서 이런 저런 지름길로 갔다 오면 가장 빨리 다녀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런 저런 나름대로의 방법을 제시하면서 자기의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일등상을 사람의 대답이 나왔는데 아주 특이한 대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대답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갔다 오면 된다."

성도 여러분! 왜 그럴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먼길이라도 언제나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모자라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것입니다.

영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살아가 인생길 멀고 힘들다 할지라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걸어갈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인 서혜경 교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분은 미국의 카네기 홀이 선정한 세계 3 피아니스트 가운데 사람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런데 분은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낯설고 설은 땅에서 밀려오는 외로움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그녀가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유학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매주일 한번씩 걸려오는 그녀의 어머니의 전화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질문이었을까요? 여러분은 이렇게 추측할 것입니다. ‘얘야,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 밥은 제때 챙겨 먹고 있지? 건강은 어떠니?’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딸에게 이러한 질문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주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러한 질문을 했습니다. "얘야, 오늘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는 드렸느냐?" 그녀의 어머니는 자기의 사랑하는 딸이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자기 딸이 능히 유학생활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서 딸이 교회에 다녀왔는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지를 먼저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서혜경씨는 유학 생활 동안 번도 빠지지 않고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의 믿음을 굳게 지킬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예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유학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풍랑을 이겨낼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갈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2017년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를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해도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하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산다면 그 사람은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한해를 돌아보면서 최선을 다해 살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서 다시 결단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짜 올바른 방향을 향해 달려 왔는지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달려 왔는지? 올바른 것을 목표삼고 달려 왔는지?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가 더 나아지고 삶에서 더 나은 열매를 거두었는지 돌아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라면 기쁘게 최선을 다해 살고자 하는 마음의 결단이 내려 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