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8.1.28 신앙의 불량자가 되지 말라 삼상 2:12-21  

예전에 우리가 자랄 때는 불량자라고 하면 방탕하고 다른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나쁜 사람들을 부를 때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길을 가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해서 주지 않으면 폭력을 행하기도 했던 사람들입니다. 80년 초까지는 이런 불량자들이 많아서 밤에 혼자 다니는 것이 참 힘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청교육대가 생긴 후 길거리의 불량자들을 다 잡아 들이므로 그 다음부터는 안심하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불량자란 말이 다른 쪽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돈이 필요해서 빌려 쓰고 갚지 않거나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신용 불량자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신용 불량자가 되기가 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카드를 들고 다니며 물건을 사다 보면 아주 쉽습니다. 그냥 카드로 사면 편하기에 생각 없이 쓰다 보면 금방 돈이 쌓이고 그것을 갚지 못하면 그부터 신용 불량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용에만 불량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믿는 사람들에게도 신앙 불량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엘리의 아들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바로 신앙 불량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직분이 무엇이었나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신앙 불량자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제사장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시기에 죄인인 사람들은 감이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제사장을 세우셔서 대신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제사 제도는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라는 예표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더 이상 동물을 잡아 드리는 의식은 행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일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구약 시대는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이 되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이 다 제사장의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를 보면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러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제사장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이 다 왕같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 한번 따라 해 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귀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직분을 소홀이 하면 직무유기 입니다. 직장에서 자기의 직무를 유기하면 어떤 일을 당하나요? 그만한 징계를 받든지 아니면 직장에서 쫓겨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너무 자유분방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다 보면 신앙의 불량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의 아들들은 모두 신앙의 불량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사무엘상 2장을 끝까지 읽어 보신다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결말은 비참합니다. 가족이 모두 멸살당했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며 무시하던 그들의 후손이 다 끊기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영광의 직분입니다. 그러기에 그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신앙의 불량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모두가 신앙의 불량자가 아니라 충성된 제사장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로, 신앙의 불량자가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하나님 같이 섬기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먼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12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여기서 분명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불량자인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배우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니 어떻게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경외하며 섬길 수 있을까요?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인정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자기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별볼일 없는 분으로 생각하며 대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신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둔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렘4:22).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도 섬길 수 없으며 선을 행할 능력도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사람이 됩니다.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면 호랑이에게 다가갑니다.

어느 동물원에서 유리로 된 우리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다 호랑이를 넣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가까이 가서 호랑이를 구경하도록 하므로 실감이 나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어린 아이 하나가 유리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를 만지려고 유리에 다 손을 갖다 대고 노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호랑이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만지려고 합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그 아이를 헤치려고 발톱으로 유리를 끍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꾸 호랑이를 만지려고만 합니다.

이 어린 아이가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호랑이를 아는 동물들은 호랑이가 오는 기척만 나면 무서워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멀리 도망갑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잡신 정도로 취급을 합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그들에게는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교회를 다니는 것이 단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니는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의 유익거리로 삼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나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계신가요? 아니면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고 있나요?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신앙의 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열심히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보물을 찾는 사람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게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올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므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잘 알고 섬기는 교회로 만드는 것을 제일 중요한 사역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행여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 같이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께 버림 받는 신앙의 불량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좋은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배워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의 불량자가 아니라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훌륭한 제사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다 될 것입니다. 모두 그런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신앙의 불량자가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면 무지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자기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엘리의 아들들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자들인데 오히려 자기들이 하나님 같이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나쁜 습관을 만들어 그 습관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분명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번제단 위에다 태운 고기나 삶은 후에 고기를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잘못된 습관을 만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기는 분명 굽거나 삶아서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절대 날것으로 먹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먹는 것도 하나님께 먼저 드린 다음에 제사장의 몫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기도 전에 자기들이 먼저 그것을 먹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루 이틀 형성된 습관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랫 동안 이런 잘못된 습관을 들여 왔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들의 행동을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다고 증거를 합니다. 그들은 신앙의 불량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런 습관은 일시적인 실수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오늘 말씀에서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행하는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냥 한번 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습관이 자기들을 죄악으로 끌고 갔다는 것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좋은 습관을 들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나쁜 습관을 들이다 보면 하나님 보다 자기가 먼저가 됩니다. 집에서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을 섬길 줄 모릅니다. 제대로 교육 받은 아이들은 아무리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어른이 먼저 손을 대고 나면 그 다음에 먹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습관이 들면 어른 보다 먼저 먹고 어른은 나중에 찌꺼기만 남겨 줍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신앙의 습관을 제대로 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무조건 자기가 먼저이고 하나님은 제일 마지막 입니다. 그러면 그 나쁜 습관이 신앙 생활을 망치도록 만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엘리의 아들들 같은 신앙의 불량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의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좋은 습관은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지만 나쁜 습관은 신앙의 불량자로 만들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습관이란 살며시 내리는 눈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눈이 처음에는 소리도 없이 하나씩 둘씩 떨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북이 쌓입니다. 그러면 교통을 차단 시키는 큰 힘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눈사태가 일어나 산기슭의 집이나 주민을 위협하는 힘으로 돌변합니다. 습관도 처음에는 순간적인 하나의 행동에 불과한 것 같이 생각 되지만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거기에서 도망갈 수 없도록 하는 족쇄로 변합니다. 나쁜 습관이 하나하나 모이다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나, 성실성, 그리고 인격을 파괴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할 때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 생활에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습관을 들여야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첫번째로, 하나님께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열심을 다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33년 동안 이 세상에서 사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늘 하신 습관 중 하나는 안식일 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 가사 성경을 읽으시려고 서시매.” 여기서 규례대로라고 했습니다. 규례란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법칙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이렇게 하나님을 정성껏 예배하는데 적극적인 습관을 들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규칙입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꼭 해야 할 중요한 습관입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될 때 절대 신앙의 불량자는 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인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등불입니다. 어떤 쪽으로 가야 할지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칭찬 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목적은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게 됩니다. 또한 천둥번개만 요란하고 비가 오지 않는 가날의 날씨와 같게 됩니다.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사람은 절대 실패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 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는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절대 신앙의 불량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기에 불량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므로 신앙의 승리자가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매 순간마다 기도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매 순간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습관을 들일 때 교만해 지지 않습니다. 일이 잘 되도 자기가 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기도했기에 하나님이 해 주셨다고 하나님께 공로를 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 오셨을 때 그 분은 습관을 쫓아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주신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매 순간 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절대 신앙의 불량자가 될 수 없습니다.

네 번째로, 힘써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귀신을 내어 좆고 좋은 일하다 실컷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옥 속에서도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하나님은 그들이 갇혀 있던 옥터에 지진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풀려 나도록 해 주셨을 뿐 아니라 간수의 가족도 구원 시키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 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절대 불량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로,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습관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습관이 아닙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자기에게 공로를 돌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그런데 그러한 공로를 하나님께 돌린다는 것은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불평불만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불평불만이라는 나쁜 습관이 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불평불만이라는 습관이 붙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늘 불평불만을 하기에 그런 일만 자꾸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늘 더 좋은 감사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 하십니다.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절대 신앙의 불량자가 되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힘써 복음을 전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주시라고 시인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 분을 전하는 습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이 일을 위해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쉬지 말고 전파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은 신앙의 승리자가 되지 불량자가 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전하는 좋은 습관을 들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하며 나쁜 습관을 몰아 내기 위해 그것에 너무 집착하면 나쁜 습관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무 나쁜 습관에 집착하지 마시고 나쁜 습관 대신 그 자리에 좋은 습관을 가지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신앙 생활하면 엘리의 아들들 같이 불량자가 되기 쉽습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을 믿는 다고 말하면서 교회에 덕이 되기 보다 폐를 끼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왜 그럴까요? 신앙 생활을 하며 좋은 습관을 들이지 않고 옛날 습관을 그냥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옛 습관대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다 보니 신앙의 불량자로 남아 교회에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지금부터라도 혹시 잘못된 습관이 있다면 하나씩 버리고 좋은 습관을 들이므로 신앙의 승리자가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