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8.2.4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 16:6-13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옷을 사러 때는 좋은 옷을 입고 가라.”  아니 옷을 사러 가는데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가야 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옷을 사러 가면 가계 주인은 손님이 입고 있는옷을 보고 사람의 수준을 판단하고 옷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가계 주인에게는 상대방이 입고 있는 옷이야 말로 사람의 모든 인격과 성품까지 판단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을 이렇게 외모로 판단받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다 보면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어느 호텔에 새로 채용된 지배인이 직원들에게 청소를 시키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손님들을 위해 정원 한가운데 마련해 놓은 깨끗하고 고급스런 의자에 인상도 별로 좋지 않고 옷차림도 허름 노인이 거기에 걸터 앉아 있는 것입니다. 지배인이 생각하길 이런 훌륭한 호텔 분위기에 저런 누추한 사람은 좋지 못한 인상을 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원을 시켜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사람에게 빨리 이곳에서 나가 달라는 쪽지를 건네 주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호텔 지배인은 호텔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누추한 옷을 입고 앉아 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호텔의 경영주였던 것입니다. 경영주는 새로 지배인이 어떻게 호텔을 운영하는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만 보고 판단했던 지배인은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맛있어 보이지만 맛이 없어 먹을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비어 있으면서 겉만 번지름한 실속 없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물론 외모도 멋지고 인격도 훌륭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개살구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신중을 기한다 해도 사람 즉흥적 감성의 지배를 많이 기에 외모만 보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보시고 그 사람을 판단하시나요? 그리고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모든 사람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외모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외모를 가장 중요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 대면을 할 때 상대방의 얼굴과 표정, 옷차림 등 외모를 아래 위로 살펴 봅니다. 그런 다음 아~ 이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판단해 버립니다. 그러기에 첫 만남의 감동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외모로만 사람을 평가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외모로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외모라는 말은 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두 눈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육신의 눈으로 외적인 용모와 신장, 그리고 배경을 따집니다. 그러기에 점점 외모를 아름답게 해 주는 미장원과 피부 미용실이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모 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외모나 배경을 완전히 무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얼굴만 아름답고 마음이 아름답지 못하기에 얼마나 추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있나요? 외모는 더 예뻐지고 있지만 마음은 더 추해지기에 이 사회속에 추한 일들이 그렇게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중심이란 말은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고 사람을 판단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겉으로 보이는 겉이 진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이 그 사람의 진짜입니다. 사람은 잠간 동안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그러나 속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습니다.

몇년 전에 중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지옌 펑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내가 결혼 전 성형수술을 한 뒤 그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다는 이유로 약 1억3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이혼소송을 했으며 그 재판에서 이겼다고 합니다. 남편 펑씨는 결혼 후에 아내가 딸을 낳았는데 자신도 닮지 않고 그렇다고 아내도 닮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분명 아내가 외도를 했다고 의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두 사람의 친자식이라는 판명이 나온 것입니다.

그 여자는 불륜을 했다는 의심에서는 벗어났지만, 남편의 추궁 끝에 아내는 결혼 전에 약 1억1000만원을 들여 성형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속이고 결혼했다고 하며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중국 법원은 남편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혼과 더불어 아내에게 위자료를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몇 년이 지나면 선을 볼 때 어린 시절 사진을 꼭 가지고 나와서 보여 주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사는 자기 아내의 진짜 얼굴의 모습은 딸을 낳아 봐야 알게 되는 시대가 올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외모로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중심 즉, 마음을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움 받은 사울 왕이 하나님께 불순종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왕에서 폐위를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을 세우라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새는 너무 기뻐서 자기의 일곱 아들들을 부르고 그들로 하여금 사무엘 앞으로 지나 가도록 했습니다.

사무엘이 첫 번째 아들인 엘리압을 보자 한 눈에 뿅하고 갔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분이 바로 이 사람이구나!라고 겉 모습을 보고 판단해 버렸습니다. 사무엘은 이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이 사울 대신 왕으로 삼을 사람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엘리압은 멋지게 생겼습니다. 키도 컸습니다. 용모로 볼 때 사울이나 별 차이가 나지 않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곱 아들들을 다 지나가게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 중에서 왕으로 뽑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끼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양을 치던 다윗을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왔을 때 하나님은 바로 이 아이가 내가 찾는 사람이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사람이 바로 사도행전 13장 22절에 하나님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흡족해 하셨던 다윗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소릴 듣고 싶지 않으시나요?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다 만족 시킬 수 있다 할지라도 한 분 하나님을 만족 시키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평생을 사울 왕에게 도망다니며 아비멜렉 왕 앞에서 미친 사람 흉내를 내면서 살아야 했던 다윗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진짜 성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실까요?

첫째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어떻게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잘 살아볼까? 라는 계획을 세우는 마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어떻게 이 세상에서 대우를 잘 받을수 있을까? 연구하는 마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어떻게 해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마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겨자씨만한 믿음을 갖고자 노력하는 마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겨자씨만한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하나님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십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과 서로 통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를 보시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면 사실 그 당시 그들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기에 느브갓네살 왕에게 당돌하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풀무불 속에서 우리를 충분히 건져 내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절대 당신의 신상에 절할 수 없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니엘의 세 친구의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은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느브갓네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불 속에 던져 넣은 후 하나님이 그들을 불 속에서 보호해 주시는 것을 보고야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그들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모두 다 그들을 보며 바보 같은 녀석들이라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은 그들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지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 쓸모 없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에 가득 채워 놓고 하나님 보세요 라고 하면 하나님은 보지 않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환경에 따라 변하는 믿음을 좋아 하시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생길 때나 나쁜 일이 생길 때나 변함 없이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사업에 어려움이 생길 때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길 원하십니다.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께 무릎 꿇으며 이겨 내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다 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고난 속에 빠질 때라도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며 나가는 믿음이야 말로 하나님이 보실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있다 할지라도100%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며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입니다. 어렵고 힘든 문제들이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 해도 묵묵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은 사람의 눈으로는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 하나님이 보실 수 있는 귀한 믿음을 마음에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실까요?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마음에 있는 겸손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겸손한 사랑이었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서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다윗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스라엘과 유다를 합한 통일 왕국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이쯤 되면 목에 힘을 주며 교만해졌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도 예루살렘으로 옮겨 온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날 다윗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라는 신분으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춤을 덩실덩실 췄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다윗과 같이 춤춘 사람들이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허리띠가 풀어져 바지가 내려 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췄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창피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그에게는 창피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겸손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오히려 춤을 추는 다윗을 흉보던 사울의 땅 미갈이 죽을 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저주를 받지 않았나요? 다윗은 하나님 앞에 겸손했지만 미갈은 교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삶을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2세기에 성 프란시스라는 훌륭한 크리스천이 있었습니다. 그의 제자 중 하나가 어느날 꿈에서 하늘나라에 올라간 꿈을 꾸었습니다. 그곳에 보니 높은 곳에 비어 있는 보좌가 하나 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자가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더니 성 프란시스가 앉을 자리라는 것입니다. 제자는 소리를 듣 슬그머니 질투가 났습니다. 그리고 꿈을 깼습니다. 그래서 제자는 자기 스승에게 찾아 가서 "선생님,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성 프란시스가 대답하기를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지"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제자는 자기 스승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선생님의 대답은 위선이고 거짓말입니다. 당신 성자인데, 악하다고 신다면 살인자, 거짓말하는 자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이때 성 프란시스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걸세. 만약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이 받았다면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 걸세. 내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사는지 자네는 잘 모를 거야."

이 얼마나 겸손한 마음인가요? 하나님은 마음 속에 이런 겸손을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런 겸손을 마음에 품지 않으면 한 알의 밀알이 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그 분이 한 알의 밀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모든 죄인들이 구원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생명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기를 드려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 희생을 하셨기에 이러한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이 땅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알은 자신이 죽는 겸손이 따르지 않고는 결코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낮아지고 죽어지는 모습이 되어야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겸손해지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아부가 아닙니다. 겸손은 섬김입니다.

교만은 존귀한 천사로 하여금 타락한 마귀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나라에 까지 올려 주는 통로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 겸손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실까요?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신이 잘못했을 때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시인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는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잘못했을 때 그것을 빨리 회개하는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는 회개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다윗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께 회개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회개를 잘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고집장이이며 교만한 사람입니다. 다윗의 회개는 사람들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겉치레의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놓는 마음의 자세였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잘 보여 그 순간만 피하려는 얄팍한 계산상의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밧세바를 간음하고 나단 선지자에게 꾸지람을 들었을 때 다윗의 모습이 어떠했나요? 그는 무릎 꿇고 하나님께 이렇게 회개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만 범죄하였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용서해 주시며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기뻐하시는지 아합 왕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하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사벨이라는 이방나라의 딸과 결혼해서 바알을 섬기므로 큰 죄를 지은 왕입니다. 그리고 욕심이 많아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아내와 공모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치사한 인간이었습니다. 아합은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을 갖고 싶어 악당들을 사용해서 나봇을 역적으로 몰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취하러 가다 엘리야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당신의 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굵은 베로 몸을 동였습니다. 아합이 마음으로 진짜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는 금식을 하고 잠잘 때에도 굵은 베옷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걸어갈 때도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아합이 하나님께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다음 세대로 연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런 회개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잘못할 때 잘못한 것에 대해 지적 당할 때 빨리 하나님께 무릎 꿇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멋진 신앙인의 삶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마음이 되지 못하면 그 인생은 헛된 인생이 되고 말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며 살 때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마음으로 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