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8.3.4  돈 때문에 망한 사람 삼상25:36-38

성도 여러분! 요즘 돈 벌기 참 힘들지요? 얼마나 돈 벌기가 어려운가요? 요즘은 열심히 뛰어서 밥만 먹고 살아도 만족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부자가 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그러기에 한 마디로 돈벌기란 힘이듭니다.

그렇지만 돈 벌기 힘든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시나요? 그것은 돈을 잘 쓰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 어떤 사람은 목사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 돈만 줘 보세요. 그러면 돈을 어떻게 끝내 주게 쓰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돈을 가지고 나가서 갖고 싶은것 사고, 먹고 싶은 것 사먹고, 입고 싶은 것 사면 돈을 잘 쓰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그것도 돈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잘 쓰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돈을 쓴다는 말과 돈을 잘 쓴다는 말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돈을 잘 쓰느냐 못쓰느냐가 판가름 납니다.

물질을 잘 사용한다는 말은 그 물질이 쓰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곳에다 쓰는 사람이 돈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돈을 잘 쓴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와 주는 것을 말합니다.

물질을 잘 쓴다는 말은 그것이 쓰여질 때 영광이나 칭찬이 자기에게 돌아 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하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 하도록 쓰여질 때 잘 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땀흘려 소유하게 된 물질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므로 나중에는 후회를 남기는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인들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야 어차피 이 세상에 살다 그냥 끝나 버릴 인생이기에 먹고, 마시고, 즐기며 자기들이 쓰고 싶은대로 마음껏 써 버립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물질이라는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칭찬 듣는 알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나발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부자라도 조금 부자가 아닙니다. 아주 거부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많은 돈을 자기만 위해 흥청망청 썼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젊은 나이에 몸이 돌처럼 굳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아주 비참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차라리 가난했으면 더 나을뻔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나발은 부자였지만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망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이 나발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믿는 자들이 어떠한 마음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재물을 많든 적든 그것을 잘 사용하므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에 대해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것임을 시인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후6:7)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나의 소유가 된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이 만큼 소유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셨기에 내가 이만큼 소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자기 혼자 그 물질을 모은 것처럼 생각하며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교만해집니다. 그러면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나발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갈멜 사람이며 그 지방에서 돈이 가장 많은 부자였습니다. 요즘은 재산을 따질 때 사업체를 몇 개 가졌느냐, 일하는 사람을 몇명 고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부자다 아니다로 판가름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양과 소와  염소를 몇 마리나 가지고 있느냐로 판가름 했습니다. 나발이라는 사람은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정도 가지고 있던 나발을 심히 부자였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을 볼 때 그가 부자였음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된 것이 자기가 혼자 경영을 잘해서 부자가 된 것처럼 교만한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성도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과 건강을 허락해 주셨기에 그러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건강을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일할 수 있나요? 일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셨기에 열심히 일하므로 물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건강과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기에 물질을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똑 같은 돈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됩니다.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환경과 기회를 주셨기에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물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벌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 해도 그 기회를 갖지 못해서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얻었기에 물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발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면 전혀 하나님께 감사하는 태도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가 말하는 말투는 오만불손합니다. 사람을 무시하며 업신여깁니다. 왜 나발에게서 그런 행동이 나온 것일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런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직 자기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이 생각했기에 교만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나발이라는 이름은 사실 그의 본명이 아니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부모가 막 태어난 자기 아들에게 어리석은 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발이란 그의 별명이라고 말합니다. 나발이라는 뜻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하도 못되게 구니까 이름 대신 붙여준 별명이 그의 본명 같이 되어 버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의 본명이 나발인지 아니면 별명이인지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리석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도 모른체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같이 어리석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며 감사하며 살고 있나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시인할 수 있는 믿음이 있나요? 만약 그래도 이것은 모두 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죽을 때 과연 얼만큼이나 가지고 갈 수 있는지... 가지고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진짜 여러분이 만든 물질이며 진짜 여러분의 소유입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건데 여러분들은 죽을 때 단 1전도 가져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소유라는 것을 시인하시길 축원합니다.

어떤 부자가 죽게 되어 임종하는 자리에 목사님이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부자가 죽어가는 침대 곁에서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어가는 순간 목사님은 부자의 손을 잡고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손을 뿌리치며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힘없이 손을 이불 위에 털썩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그의 굳은 두 손엔 금고의 열쇠가 쥐어진 채 빳빳하게 식어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의 마음은 죽는 순간까지도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열시만 꼭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으면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에게 다른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있나요? 어떤 별명을 가지고 있나요? 어떤 사람은 좋은 별명을 가진자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발과 같이 듣기 거북한 별명을 가진자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좋은 별명을 가진 사람은 계속 그 별명과 같이 좋은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들 중에 듣기 거북한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여지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별명을 떼어 버리고 좋은 별명을 갖고자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빨리 회복되어야 합니다. 나발과 같이 좋지 않은 별명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의 아내 아비가일과 같이 좋은 평판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발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에 인생의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부자이면서도 그 부를 제대로 누려 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나중에는 비참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며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치 해바라기가 오직 해만 따라 고개를 돌리듯이 오직 주님만 바라 보며 사는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사는 자입니다. 그럴 때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에게 입은 은혜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입은 은혜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나발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그의 재산을 보호해 주므로 도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윗이 나발의 양떼들을 보호해 주고 지켜 주었습니다. 나발의 재산은 양이 삼천 마리며 염소가 천 마리입니다. 이 많은 것을 그의 종들이 어떻게 다 관리할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산에는 굶주린 늑대와 여우들과 그리고 곰들이 공격하려고 기회를 찾아 주위를 맴 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 백명이 넘는 다윗의 부하들이 양떼들의 주변을 둘러치고 보호해 주므로 악한 짐승이 얼씬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 마리의 양도 잃어버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나발의 재산에 아주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기에 그는 많은 재산을 늘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발은 다윗에게 은혜를 입었지만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혼자 잘나서 부자가 된 것 같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이 보낸 부하들을 무시하며 망신을 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나발이 부자가 된 것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발의 지혜로운 아내의 내조 덕분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리석은 나발과 같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런데 나발의 아내는 아주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만나서 살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된 사연인지는 몰라도 나발은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내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남자와 지혜로운 여자는 맞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떠하든 그는 지혜로운 아내를 얻어 살고 있었기에 아내의 도움으로 이렇게 부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기가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첫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입은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이 겸손해 집니다. 사람은 절대 이 세상에서 혼자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시며 남자에게 여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함께 살도록 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사람이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으며 삽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절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다 못해 여러분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쑤시게를 생각해 보세요.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이를 쑤시는 이쑤시게는 슈퍼에 가면 한 주먹에 1불이나 1 50전이면 살 수 있는 제품입니다. 그러기에 이쑤시게를 쓰면서 그것에 대한 중요성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별로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쑤시게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셨나요? 이쑤시게 하나 만들려면 나무를 잘라야 합니다. 그러려면 톱이 있어야 합니다. 톱이 그냥 만들어지나요? 톱을 만들려면 광부가 필요합니다. 깊은 산에 들어가 철을 캐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녹여 철을 구분하는 기술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공장으로 보내져서 엔지니어들이 톱을 디자인해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톱을 가지고 나무를 자르는 것입니다. 만약 집에서 혼자 이쑤시게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루 종일 깎아도 이쑤시게 몇개 만들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협력하며 도울 때 아주 편리한 이쑤시게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서로 다른 사람의 은혜를 받기도 하고 은혜를 주며 살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발이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혀 도움은 주지 않고 자기만 위해 사는 욕심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무시하고 자기만 잘먹고 잘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발이 자기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고 신나게 먹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먹을 것이 없어서 부하들을 시켜 나발에게 음식을 조금 얻어 오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나발에게 찾아 가서 아주 정중하게 평안을 빌면 다윗의 말을 전했습니다. 협박을 한 것도 아닙니다. 강제로 빼앗으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얼만큼 내 놓으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음식을 조금 얻어서 부하들과 한끼 먹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발은 그들에게 음식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망신을 주고 쫒아 보냈습니다.

다윗은 배은망덕한 나발과 그의 종들을 모두 죽이려고 사백명의 군사를 끌고 갑니다. 이때 지헤로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중재하므로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것입니다. 나발은 이 사실을 다음날 술에서 깨어난 후에야 그의 아내로부터 듣고 알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발은 거의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 후로 그의 몸은 돌처럼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치시매 열흘만에 나발은 죽고 말았습니다. 전날에는 자기만 위해 먹고 마시며 흥겨워 했습니다. 그는 아까워서 배고픈 자들에게 조금도 나누어 주지도 못하던 재산을 그대로 두고 죽고 말았습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가난해서 굶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풍성한 부자였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다른 사람에게 받은 은혜를 무시하는 교만함으로 인해 결국 인생을 비참하게 마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다른 사람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벌었다고 자만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합니다. 그리고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 준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러기에 미국 사람들은 자기가 번 돈에서 십일조와 감사 헌금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사회에다 기부를 하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다른 사람들의 덕을 입고 산다는 것을 행동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다른 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산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사는 성도가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입은 은혜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의 기본 자세가 무엇일까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마음에 품고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옳바른 감사를 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감사를 하며 살기 위해서는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믿음이 있는 행동이 겉으로 나타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그 감사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를 하려면 먼저 감사할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목사가 감사하라니까 그냥 감사한다고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감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감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진정한 감사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 나와야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그러려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았다는 이 중요한 진리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감사를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은 형식적인 감사가 아닌 진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감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삶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옵니다. 행동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옵니다. 이게 바로 진짜 구원의 은혜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자기들의 삶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 무엇인가 얻어지는 것이 있을 때에만 감사하다고 말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단지 육신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감사하면 안됩니다. 집을 사게 되어 감사하고, 사업이 잘되어 감사하고, 새 차를 사서 감사하고, 직장에서 내가 원하는대로 되기에 감사하고, 병이 나아서 감사하고, 돈을 많이 벌게 되어 감사하는 그런 감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감사입니다.

우리가 진짜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피 흘려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하므로 그 은혜에 어떻게 보답하며 살꼬하며 사는 그런 감사가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게 바로 감사의 기본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연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이 나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먼저 구원 받은 감사가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입은 은혜도 감사하며 살 때 여러분의 삶이 풍요롭고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물질과 재능을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교회를 위해 사용하여지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