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8.3.18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시32:1-2

여러분은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이 행복인지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하루하루 살기도 바쁜데 그까짓 행복 타령을 하며 살 여유가 어디있느냐고 하며 행복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독일의 시인인 칼 부세라는 사람이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저 산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아아, 나 또한 남을 따라 찾아갔건만 눈물을 흘리고 되 돌아왔네.
하늘 너머 저쪽 멀리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지금도 사람들은 이런 행복을 찾아서 헤메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행복이 무엇일까요? 저는 행복만족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만약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도, 아무리 높은 직책을 가져도, 아무리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들어도 마음에 만족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록 많은 재물은 가지지 않았어도,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지 않았어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어도 마음에 만족을 느끼며 산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 왕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가장 부귀영화를 많이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 만큼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살던 시절에는 금이 돌처럼 흔한 시절이었습니다. 요즘 금값이 얼마나 비싼가요? 그런데 금이 돌같이 흔했다는 말은 그 만큼 부요하게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왕이었습니다. 통일 왕국을 이루자 이웃의 모든 왕들이 솔로몬을 찾아왔습니다. 조공을 바쳤습니다. 가장 귀한 것들을 가지고 와서 선물로 주며 그에게 아부했습니다.

그뿐인가요? 그는 사업도 많이 해서 번창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700명이고 첩이 300명이나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지 않을까요? 마음에서 행복이 넘치지 않았을 까요?

그런데 그가 전도서에서 뭐라고 한탄했나요?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3).

사람들은 지금도 세상에 있는 것만 많이 가지면 저절로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져 보았어도 그 마음에는 만족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가 한탄한 것이 바로 이런 것으로 행복해 보려고 했던 것이 다 헛된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전도서의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2:13).

성도 여러분! 지금도 마귀는 쉬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에 엉뚱한 생각을 넣어 주고 있습니다.

지금 네가 불행한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세상 것을 많이 가져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 라고 속삭여 줍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마음껏 많이 즐겨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보다 세상 것을 더 많이 가지고자 그리고 더 즐기려고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의 것으로는 절대 만족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국에 컨글튼 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자기 하녀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다 말고 한숨을 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5파운드 생긴다면 이상 소원이 을텐데! 그러면 만족할 텐데…. 들은 컨글튼 경은 하녀에게 정말 소원이 5파운드를 가지는 것이냐?” 그리고 그것만 가진다면 행복할 것 같으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녀는 그럼요, 주인님. 정말 그렇고 말고요.” 그래서 그는 자기 하녀의 등을 두들겨 주면서 내가 소원인 5파운드를 테니 이제부터는 불평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해라고 하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5파운드를 하녀에게 주고 컨글튼 경이 정원으로 나가서 산책을 하는데 이런 소리가 려오는 것입니다. 아이구, 이 바보야! 이렇게 될 알았 10파운드라고 말하. 5파운드라고 말했니? 아이구! 정말 아까워라.” 하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녀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정도만 있으면 나는 행복할텐데! 라고 말하고 그 만큼이 채워지면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시 이 만큼만 있으면 행복할텐데!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 일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만족하며 감사할텐데 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다 그 기도가 이루어지면 만족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러기에 늘 마음에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같이 불행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야!라고 하며 비관적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도서 5:10)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 마음에 만족과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정답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 보세요. 여러분의 마음이 만족 되는지…. 안됩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찾으려면,

먼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을 보시길 바랍니다. 사실 그도 만족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그당시 가질 것 다 가졌던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따져 볼 때 그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에서도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명예도 가지고 있었으며 권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그렇게 죽자 살자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없애려고 애를 썼을까요? 그 이유는 그의 마음에 진정한 만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번에 크리스천들만 다 잡아 들인다면 자기의 인생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러면 마음에 만족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메섹에 살고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을 소탕작전을 해서 잡아 올 수 있도록 특별 허가장을 달라고 대제사장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메섹으로 갑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이 일만 잘 된다면 진정한 만족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악만 행하던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딤전1:13).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할 때 행복을 찾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할 때 비로서 죄를 용서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장에 보면 다윗이 자기가 누구인가를 발견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같이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삯을 은혜 여기지 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 말한바 불법 사하심 받고  죄를 가리우심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4:4-8).

이 말씀을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일을 해서 받는 품삯은 정당한 대가이지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공로가 없는 경건치 않는 자를 의롭다고 하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백하기를 잘못을 용서 받고 하나님이 죄를 덮어 주심을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만족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의로움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사랑으로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깨달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행복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자 자신의 신분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자 인생에서 모든 것이 만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너무 행복해서 죽을 때까지 예수를 믿고 그 분을 위해 살다가 순교를 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고후3:11).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의 입에서는 기뻐하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사도 바울의 삶이 모든 것이 다 잘되고 편안해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의 환경이나 그의 처지는 어렵고 힘든 일이 줄줄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늘 핍박과 고통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예수를 전하다가 돌로 맞고 나무로 맞았습니다. 그러다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기쁘게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마음에 예수로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도 행복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삶에서 주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감사하며 기쁘게 삽니다. 그러나 마음에 만족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늘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사람은 아직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예수 안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난 후로부터 그는 후회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만족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자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 주님으로 만족하며 행복한 인생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행복을 찾기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14:6).

누구든지 자기가 가는 길을 잘 아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자기의 목표 지점을 향해 열심히 달려 갑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야 할 목표지점이 어디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이곳저곳 방황하며 헤매게 됩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불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처음 애굽에서 나올 때는 자기들이 가나안 땅에 간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차츰 어려움을 당하자 그때부터 그들이 가야할 가나안 땅에 대한 목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삶에서 행복하지 않고 만족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서는 불평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그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가야할 분명한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갔다면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에 목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반응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광야에서 죽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를 보세요. 그들은 똑같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님이 주신 그곳에 도착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찾아 갈 수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장정들만 60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모두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두 사람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그들이 가야할 목표가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떠한 어려움이 그들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 사람은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이 그곳까지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으로 만족할 때 환경도 그렇게 따라 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길에는 여러가지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향락의 길을 선택합니다. 어떤 사람은 불신의 길을 선택합니다. 모두 다 자기들이 선택한 길이 옳다고 주장하며 갑니다. 그러나 그 길에는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길의 끝에 가면 자기가 옳바른 선택을 하며 왔는지 아니면 잘못된 길을 선택하며 왔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일회용입니다. 그러기에 그 길을 잘 선택하며 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을 만족하며 살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은 행복하게 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올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은 안전한 길입니다. 그길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까지 가도록 인도해 주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예수를 만난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만족하며 살게 됩니다. 예수를 올바로 만난 사람은 행복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웨스턴 복음주의 신학교의 총장이었던 폴 페티코드 박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트럼펫을 아주 잘 불었다고 합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나이트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나이트 클럽을 향해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마음 속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 온 것입니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느냐?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길은 너와 네 이웃을 지옥으로 가도록 이끄는 길이다.” 이러한 음성을 듣자 그는 차를 길 옆쪽에 세우고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자기가 살던 죄악의 길에서 돌아서서 유턴을 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후 그는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이 살던 옛날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악의 길을 즐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발견하자 옛날 자기가 살던 모든 방법을 다 버렸습니다. 그냥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아예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고백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예수님이 아니면 구원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발견하자 이제껏 만족이 되지 않던 인생의 모든 것들이 다 만족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행복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셨나요? 여러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발견하셨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만이 오직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발견하셨나요? 그래서 지금 여러분의 삶은 만족하시나요?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시나요? 아니면 지금도 다른 무엇인가를 가져야 만족할 것 같은 생각으로 다른 것을 얻기 위해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 모두 다 예수님을 올바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만족하며 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비록 이 세상에서 여러분의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감사하며 기쁨으로 주님을 잘 섬기며 사는 인생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