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8.8.12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 삼상 31:7-13

Enough”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식당에서 웨츄레스로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가 맘에 든 어떤 남자가 그 아가씨를 자기의 아내로 만들기 위해 친구와 계획을 짭니다. 친구로 하여금 그 웨츄레스에게 접근하여 치근덕대도록 만들고 자기가 정의의 기사가 되어 그 남자로부터 그 여자를 구해주는 것입니다. 그 남자가 얼마나 멋지게 보였을까요? 웨츄레스는 한 눈에 그 남자에게 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을 합니다. 그들은 결혼식을 얼마나 화려하게 치뤘는지 모릅니다. 시작은 아주 멋지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첫 딸이 태어난 후 남편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여자들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남자의 외도를 알아차린 아내는 남편에게 항의를 합니다. 나는 더 이상 식모와 같이 살기 원치 않고 아내로서의 자리에서 살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남편은 이 집도 내가 벌어 산 집이고, 회사도, 차도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니 이 집의  모든 주도권은 자기가 가지고 있으며 이 집의 법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내는 자기는 그렇게는 못살겠다고 하자 남자가 마구 때립니다. 그 여자는 법에 호소를 해 보려했지만 보복이 두려워서 그냥 탈출을 시도합니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딸 아이를 데리고 도망하려고 계획한 날 남편에게 붙잡혀 죽도록 두둘겨 맞습니다. 그리고 도와 주려고 했던 사람들도 죽이겠다고 남편이 권총으로 협박을 합니다.

 

남편에게 맞아 다친 곳을 치료하러 병원에 간다는 이유로 겨우 집에서 탈출한 그 여자는 그때부터 도피 생활을 시작합니다. 돈도 없이 전전긍긍하기에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남편은 사람들을 시켜 계속 추적을 합니다. 남편의 추적을 막기 위해 이름도 바꾸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찾아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여자는 자기가 살아 남는 길은 오직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호신술을 배워서 남편에게 도전하는 길 밖에 없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개인 교습을 받기 시작합니다. 자기를 때리는 남편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자기를 죽이려는 그 남편을 어떻게 쓰러뜨릴 수 있는지...그녀는 여러 가지 공격법과 방어법을 배웁니다. 그녀는 자기 혼자 남편과 싸울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고 생각되자 남편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 갑니다. 몰래 집으로 숨어 들어가 이곳 저곳에 남편이 숨겨 둔 권총 3자루를 찾아 쓰레기 통에 버립니다. 그리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정면으로 남편에게 도전을 합니다. 남편은 그녀를 총으로 쏴 죽이려고 찾지만 이미 아내가 버렸기에 소용이 없습니다. 그녀는 이제껏 두둘겨 맞으며 당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남편과 싸움을 합니다. 남편은 자기에게 늘 두둘겨 맞기만 하던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 싸움을 하자고 하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화가난 그 남자는 죽이겠다고 달려 듭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자기를 죽이려던 남편을 처참하게 때려 복수를 합니다. 결국 싸우던 남편은 쓰러져 죽고 맙니다. 그러자 그녀는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그리고 정당 방위로 풀려 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이 영화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하시나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재미 있는 영화 이야기만 해 주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꼭 알려 주고 싶은 것은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그들이 만났을 때는 얼마나 멋지게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끝도 아름답게 끝났어야 하지만 비참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할 것 같이 화려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서로가 죽고 죽여야 하는 비참한 마지막을 장식한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우리의 인생도 마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의 인생이나 신앙생활을 비추어 보면 처음에는 화려하게 시작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처음에는 주님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이 입술에서는 주님이라는 이름이 떠나지 않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주님이 없는 싸늘하고 텅빈 마음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게 바로 시작은 화려하게 했지만 마지막은 실패로 끝마치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사울이라는 왕의 인생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울 왕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시작은 잘했지만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실패한 인생의 대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 얼마나 화려하게 시작했나요?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뽑힌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위대한 인물로 뽑힌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후 그가 죽는 장면을 보면 너무나 비참합니다. 마지막에는 믿음의 실패자가 되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모습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화려하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실패로 끝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초라하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진짜 화려한 인생으로 마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나요? 우리는 비록 우리의 여건이, 우리의 처지가, 우리의 환경이 화려하게 시작할 수 없었다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화려하게 마친다면 이게 바로 승리한 인생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  제가 그 방법을 여러분에게 오늘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고 싶나요? 그렇다면

첫째로, 올바른 삶의 목적을 정하시길 바랍니다. 올바른 삶의 목적을 정한 사람은 더 이상 인생을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인생에서 방황을 하나요?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있는 사람은 절대 방황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없는 사람은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실패로 끝나 버립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은 마치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돛 단 배와 같습니다. 바람이 동으로 불면 동쪽으로 흘러 갑니다. 바람이 서쪽으로 불면 서쪽으로 흘러 가버립니다. 그저 순간순간 일어나는 현상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며 살게 됩니다. 자기가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사울 왕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왕이 되자 자기가 왜 왕이 되었는지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왜 왕으로 세워주셨는지 목적을 잃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잃어 버리면 다른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목적인양 살게 됩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실패자들이란 꼭 예수 믿지 않는 사람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도 올바른 목적을 가지지 못하고 살면 엉뚱한 목적지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권력을 위해 이스라엘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께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목적을 잃어 버리자 그는 차츰 멸망의 내리막길을 달려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와 같이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된 것입니다. 화려하게 시작했다 실패로 끝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시작이 화려하면 무엇하나요?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잃어 버리면 이런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이 왜 이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 목적을 알고 있나요? 한번 여러분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며 야, 아무게야! 네가 지금 살고 있는 목적이 무엇이니? 그리고 솔직히 그 질문에 대답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대답에 따라 여러분이 지금까지 올바른 목적을 정하고 살아 왔는지 아니면 허송세월을 보내며 살아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이 나왔나요?

 

성도 여러분! 사람마다 이 세상에 사는 방법과 형태는 다 다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근본 목적은 단 하나 뿐입니다.  빌립보서 1:20절 말씀을 보시길 바랍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의 목적이 바로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화려하게 시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에 악명 높은 자로 시작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죽이는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자기를 부를 때 원수 중에 원수였다고 부릅니다. 이정도로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나자 그는 오직 한 가지의 목적을 정했습니다. 나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일을 하든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과 관련이 없는 것은 다 쓸데 없는 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목적을 정하고 살았던 사도 바울의 삶을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 주셨나요?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화려하게 끝마치게 해 주셨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 왔으니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면류관을 예비해 두셨을 것이라는 확신의 기쁨을 가졌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는 삶의 목적을 올바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 왔는지 자신이 더 잘 알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하며 이제껏 살아 왔다면 이제부터 바꾸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귀케 되도록 해야 겠다”는 목적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나머지 일은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여러분의 환경이 어떠하든 그것과는 상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목적을 정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승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예수님만을 존귀하도록 하려는 목적을 세우므로 끝까지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마지막까지 승리는 성도가 되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마지막까지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과학이 발달하여 하나님이 없어도 살 것 같은 분위기 입니다. 마치 과학이 하나님인양 취급을 하기에 이제 하나님께 의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날 과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한 번 보세요. 얼마나 과학이 발달했는지… 그리고 이제 콜론으로 인해 사람을 복사할 수 있고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과학자의 말을 듣고 계시던 하나님이, “그래, 네가 정말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한번 사람을 만들어 보거라.” 그러자 과학자가 땅에 있는 흙을 한 주먹 집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 아니다, 그 흙은 내가 만든 재료이니 그것을 사용하지 말고 네가 직접 재료를 만들어서 사람을 만들어 보거라.”

 

성도 여러분! 지금 사람들이 잘난척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만들어 놓으신 재료를 가지고 조금 요령을 피우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마치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 같이 착각합니다. 그러나 창조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미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들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마치 자신들이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 같이 착각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마지막까지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며 지금까지 살아 왔나요? 혹시 이 세상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의지하며 살아 오지 않았나요? 이 세상의 것을 의지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시작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성공이란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의 기준은 하나님을 얼마나 잘 믿으며 살았느냐로 결정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면 날개가 달려 날아가 버립니다.

 

히스기야 왕을 보세요. 그의 보물 창고에 보물이 가득찼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풍성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대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의지하며 자랑하자 나중에 바벨론에게 몽땅 다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나라까지 바벨론이라는 나라에다 빼앗기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절대 물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로 판가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얼마나 힘입으며 사느냐로 판가름합니다.

 

물질로 성공 했느냐를 판단 한다면 사도 바울 만큼 가난뱅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명예도 권세도, 물질도 다 버리고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얼마나 초라한 모습인가요? 그는 영락없이 인생의 실패자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후회하지 않는 승리자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껄껄하며 아쉬워 하나요? 좀더 이렇게 살았을 껄… 좀더 저렇게 살았을 껄… 후회를 남기며 떠나 갑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의 마지막 죽는 모습은 당당합니다. 왜그런지 아세요?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을 무엇으로 사나요? 혹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려고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울 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려고 하다 그의 인생은 실패로 마쳤습니다.

 

피터 라이브스라는 사람이 쓴 "갑옷"이란 이야기에 레오나드라는 임금님이 나옵니다. 이웃나라의 왕들이 그의 나라를 탐내어 자주 쳐들어 왔기에 왕의 목숨이 위태로 왔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은 왕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강철로 갑옷을 만들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입으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임금도 그 말을 좋게 여겨 갑옷을 짓도록 허락했습니다. 임금은 아주 튼튼하고 안전한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어떤 칼이나 화살도 그 갑옷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습니다. 임금은 적군을 향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들 눈에 이 갑옷이 보이지 않느냐? 이제는 그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으하하하! 이제 나는 불사신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자신이 불사신이 된 것이 그 갑옷 때문이라고 생각한 임금은 그것을 벗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하며 밤에도 갑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잤습니다. 비록 갑옷은 위험에서 임금을 지켜주었지만 임금은 갑옷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신하들은 왕이 갑옷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 작전을 짰습니다.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왕이 잔뜩 취하게 만들어 놓고 조심스럽게 임금의 갑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갑옷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는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 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신하들이 오랜만에 사랑하는 임금님의 모습을 보려고 궁궐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궁궐에 도착했을 때, 레오나드 임금은 이미 숨져 있었습니다. 갑옷을 너무 의지한 나머지 자신이 갑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공포에 질려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갑옷이 그의 생명을 보호해 주었다 해서 그 갑옷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재물이 곤궁에서 벗어나게 했다 해서 재물을 섬겨서도 안 됩니다. 재물이나 권력이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 사람들은 그 재물이나 권력을 잃을 때 그의 목숨까지 잃게 될 것입니다.

 

혹시 레오나드 임금님의 갑옷 같은 것이 여러분에게도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갑옷인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거나,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있다면 어떤 갑옷을 입고 있기에 그런지 현상이 일어나는지 찾아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성장에 문제가 있어 원인을 찾아보면 무엇인가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므로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나 물질과 재능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 각자에게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 것을 오직 자기만 위해 사용하는 사람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허락해 주십니다.

 

구약게 나오는 삼손이라는 사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이라는 직책을 맡겨주셨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위해 살라는 특별한 직책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대단한 힘을 주셨습니다. 그는 나귀턱 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한 순간에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성의 문짝을 뽑아서 산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맨 손으로 사자를 잡아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한꺼번에 여우 삼백 마리나 잡아 꼬리를 묶어 불을 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능력과 힘을 주신 목적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일보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힘과 능력을 잘못된 쪽으로 사용했습니다. 삼손은 여자라면 사죽을 못쓰는 사람입니다. 그저 여자만 보면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잊어 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힘의 비밀을 여자가 가르쳐 달라고 울며 애원하자 가르쳐 줄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블레셋 사람에게 눈도 뽑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블레셋 사람의 신전에서 멧돌이나 가는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사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인생의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삼손과 같이 시작은 화려하지만 마지막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사용한다면 끝까지 인생의 승리자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유력한 가정에 귀한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공부도 잘 마치고 성년이 되어서 역시 유력한 어떤 집의 좋은 남자와 약혼을 하고 결혼 날까지 다 작정을 했는데 불행히도 결혼하기 약 1주일 전에 갑자기 병에 걸렸습니다. 아주 힘든 열병을 앓는 동안 결혼 날짜가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한 달 이상 중병을 앓고 겨우 생명을 유지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머리를 빗으려고 거울 앞에 가서 얼굴을 보니 거울에 비친 얼굴이 전혀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앓았던 병은 마마라고 하는 천연두였는데 그 어여쁘던 얼굴이 다 얽어버린 것입니다. 너무 기가 막힌 것입니다. 그 여자는 머리를 빗다 쓰러져 눕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녀의 병이 좀 나았다는 말을 듣고 약혼한 남자가 찾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전 같았으면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그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한번 곁눈으로 힐끗 보더니 금방 얼굴 빛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급하게 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중매했던 노파가 찾아와서 머뭇거리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 집에서 파혼하겠답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도망치다 시피 가버렸습니다. 그 여자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그런데 얼마 후 바로 그 남자가 자기와 친하게 지내던 여자 친구와 다시 약혼하고 결혼 날짜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앞이 캄캄하고 분하기만 하여 그만  '아무도 원치 않는 이까짓 몸 살아서 무엇 하냐' 라고 생각한 끝에 결국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부모 몰래 집을 빠져 나와 높은 벼랑 위에 앉아서 달빛 아래 흐르는 푸른 강물을 내려다 보며 자기 신세를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힙니다. 그만 서러움에 복받쳐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인가 이상한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는데 조그마한 농촌 예배당에서 찬송을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때마침 부흥회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밖에서 서성거리니까 어떤 사람이 나오더니 친절하게 들어오라고 합니다. 별로 들어갈 마음도 없었는데 억지로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녀는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날 무슨 설교를 하고 무슨 설교를 들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러나 단 한가지 예수를 믿으면 새로운 소망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듣자 그녀의 마음에서는 예수를 믿자라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 후 그 여자는 부모에게 더 공부를 하겠다고 하자 넉넉한 집안인지라 딸의 소원대로 허락했습니다. 그 여자는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자 어떤 교회에 여전도사로 갔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자기 같이 못생긴 여자를 원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지만, 주님만은 자기의 신랑이 되어 주셨다고 생각하고 주님의 신실한 신부로서 열심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겼습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받은 월급을 다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산도 전부 다 써가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특별히 불구자를 불쌍히 여기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일했습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교회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그 교회에서  "우리 전도사님의 얼굴은 예수님의 얼굴과 같다" 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전도사의 얼굴은 어떻게나 은혜가 충만한지 모르겠어! 그 오목 오목한 자리마다 주님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고 그 울통불퉁한 데는 주님의 영광이 반사되는 것 같단 말이야." 이런 말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게 바로 시작은 비참하게 시작되었지만 마지막에는 승리로 끝나는 위대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가요? 물질, 재능, 건강, 섬기는 것, 전도, 그리고 많은 재능을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것으로 각자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만 위해서 쓰는 자는 인생의 실패자가 됩니다. 하나님께 어떤 것을 받았던지 그것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인생으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미비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창대케 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부족하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승리로 끝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겠다는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며 살 때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