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 우리의 선한 목자 요101-17

세상에는 다양한 지도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미 과거에 있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지도자들도 많이 있지만 지금 현재 존재하고 있는 지도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중세기 때에는(1100년 경부터 1450년까지) 십자가(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하고 그리고 다양한 전쟁들을 일으켜서 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보내 죽이는 일을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가 죽음과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지도록 했던 제2차 세계 대전의 범인은 누구였을까요? 그 사람은 바로 일본의 천황인 히로히토입니다. 일본은1930년대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격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이겨낼 방법을 찾다가 자원이 풍부한 중국을 차지하므로 자기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야망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일본은1931년에 거대한 만주를 삼키려고 쳐들어갔습니다. 그게 바로 만주 사변인 것입니다. 일본은 1945년 미국이 원자 폭탄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떨어뜨려서 항복하기 전까지 아시아에 있는 많은 나라들을 정복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악한 지도자가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독일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자 그것을 극복하려고 폴란드라는 나라를 1939년에 침범하므로 전쟁이 시작되어 유럽 전체가 전쟁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여러분은 아시나요?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죽은 군인들만 1,830만명입니다. 그리고 부상당한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모두 합치면 약 2,900만명입니다. 그래서 군인과 민간인 모두 합해서 사망자들만 4,700만명이며 부상을 입고 피해를 당한 자들은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은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이었습니다. 이러한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 이유는 단지 몇명의 잘못된 지도자들로 인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 것입니다.

10년 전에는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 같은 악한 지도자가 나와서 이라크의 백성들과 세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그 전쟁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악당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지금도 공산주의 지도자로서 이북의 동포들을 공포와주림으로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같은 동족이면서 총뿌리를 서로 겨냥하며 기회만 노리는 마귀와 같은 존재로 굴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과거나 현재 살고 있는 지도자들을 보면 자기들 나름대로 사상이나 이론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쪽으로 이끌어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거짓 선지자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는가요?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는가요? 그러기에 누구든지 세상에 사는 동안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게 되면 고통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 세상에 살면서 올바른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삶인지 점점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삶에서 풍성하게 누리도록 주시는 선하신 인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세상의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분이십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명예와 유익과 영광만을 위해 자기들의 권세를 사용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과 유익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행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오직 자기의 양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시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우리의 선하신 목자가 되시는 우리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겸손하신 인도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왕이시지만 자신의 영광을 위해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으로 들어 가실 때도 가장 초라한 나귀 새끼를 타시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행차는 세상의 어떤 왕의 행차보다 초라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귀 등위에 가죽이나 모피로 만든 호화스러운 방석을 깔고 그 위에 앉으신 것도 아닙니다. 그와 정반대인 사람들이 입고 다니 더럽고 땀냄새 나는 옷으로 나귀 등에 깔고 위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한다는 멋진 플랭카드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서 군중들이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요즘 대통령 취임식과 비교한다면 너무 초라하고 보잘 없어 보이는 환영식입니다.

 

각 나라 마다 자기 나라의 군대가 얼마나 강하고 멋진지 보여 주는 사열식과 퍼레이드를 합니다. 특히 이북은 자기들의 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자랑하려고 자주합니다. 그래서 방송으로 내 보냈습니다. 대통령은 군인들이 자기 앞을 지나가면서 경례를 하는 것을 보면 흐뭇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데는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군인들의 사열식이나 퍼레이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을 올말이나 내년에 하려고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런데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말이 나와서 취소시켰다고 합니다. 퍼레이드를 한번 하는데 들어가는 경비가 얼마 정도 되는지 여러분은 아시나요? 92 밀리언 달러라고 합니다. 이렇게 대통령이 군대의 보고를 한번 받고 자랑하는데도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러니 각 나라들마다 어마어마한 경비를 들여서 그런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얼마나 초라했나요? 그러기에 이렇게 초라한 환영식으로 인해 위대하신 예수님의 진짜 위대하신 모습이 가리워질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런 것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 자체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겉으로 그렇게 하신다 해도 예수님의 진짜 모습이 없어지거나 약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기름을 바른 것 같이 번지르하게 입만 살아 말만 잘하는 화려한 사람을 따르면 큰일납니다. 그런 사람은 실속 없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 않더라도 신실한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실패하지 않게 됩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소개를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의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을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지도자도 좋은 사람을 만나게 주십니다. 만약 예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으면 예수님도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면 악한 영이 역사하므로 악한 지도자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 시대 아합이라는 왕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당연히 하나님을 목자로 섬기며 따라야 할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그 나라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저기서 나도 너도 선지자라고 하며 거짓 선지자들이 그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보낸 진짜 선지자라고 거짓 주장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영적으로 눈이 가려진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를 따라갔습니다. 그 당시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따르던 믿음의 사람들은 오직 칠천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 거짓 지도자들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선한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면 이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반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았던 히스기야 왕이나 요시야왕 같은 지도자가 있던 시대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 때는 백성들도 태평성대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지도자를 만난 백성들은 그런 축복을 같이 누리도록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영원한 목자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는 동안 좋은 영적 지도자도 만나게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한 목자로 삼지 않는 사람들은 되는 같아도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 예수님만을 우리의 목자로 삼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모든 일을 주관해 주시며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지 아세요? 분은 우리의 선하신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예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지 이유들을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직 선하신 우리 주님만을 믿고 따르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만드셨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를 안다고 하는 말이 그저 단순히 우리에 대해 조금 안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알고 있듯이 부분적으로 조금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 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을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고원지대이며 또한 땅은 거칠기에 농업보다 양을 많이 치는 나라입니다. 목자들은 들판에서 떼들에게 풀을 먹이다 밤이 되면 떼들이 잠을 있도록 돌로 만든 우리 안으로 모두 집어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목자의 떼만 우리 안에서 넣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자들의 떼도 함께 섞어 밤을 지냅니다. 아침이 되면 들판으로 나가기 위해 목자가 와서 자기들 양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양들은 자기 목자가 부르는 이름을 듣고 따라갑니다.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부르고 난 후 앞서서 걸어 가면 양들은 줄을 지어 자기 목자의 뒤를 졸졸 따라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있을까요? 이게 목자와 양과의 관계입니다.

 

목자는 자기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이름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목자와 양은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지냅니다. 그러는 동안 목자는 양의 성질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양에게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때 양의 성질에 따라 이름을 지어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갈색다리를 가지고 있는 양이면 갈색다리라고 이름을 지어 부릅니다. 검은 귀를 가지고 있는 양이면 검은 귀라고 이름을 붙여 줍니다. 점이 있는 양에게는 점박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목자는 양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목자가 밤에 우리 안으로 양들을 집어 넣을 가지고 다니던 목자의 막대기를 입구에 가로질러 놓은 후 한마리씩 아래로 지나가도록 합니다. 그리고 양이 아래로 지나갈 목동은 하루동안 혹시 양이 상처를 입지나 않았는지, 아니면 양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살펴니다. 그래서 양들의 상태를 목자는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행하면서 양치는 목동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가 보니까 목자가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자 그의 양들이 목자를 따라 가는 것입니. 하도 신기해서 그 목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에 있는 양이 모두 마리나 되나요? 그리고 어떻게 많은 양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나요?” 그때 목동은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저는 양이 마리인지 숫자적으로는 모르지만 그러나 양들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양이 없어지면 금방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하물며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 주이시며 구원자가 되시는 위대하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모든 것을알고 계신다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가요? 우리 예수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아시고 또한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장이십니다. 아무리 양들이 많다 해도 우리 개개인의 이름과 특성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얼마나 위대한가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달에서 바라보면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 각자를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지금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마음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하는지?  여러분이 힘들고 고통스러워 때도 예수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가며 위로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찬양을 합니다. 여호와여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를 통촉하시나이다. 나의 길과 나의 행위를 아시며 혀의 말을 아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으십니다(시139:1-3).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예수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의탁하며 사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도 여러분의 문제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실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니….”

 

우리 예수님은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양들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시고 또한 풍성함을 누리도록 하시려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살므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기의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사시던 당시에도 목축업을 크게 하는 사업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양들을 혼자 관리할 없었기에 삯군 목자를 돈주고 고용을 했습니다. 이렇게 고용된 목자는 사실 소유주가 아니기에 목자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삯꾼 목자를 고용할 경우 일어날 일들을 위해 법적 책임 한계를 정해 놓았다고 합니다.

 

규정에 의하면 마리의 이리가 공격할 경우 반드시 싸워서 양을 지켜야 한다. 만약 양무리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그것에 대해 삯군 목자가 보상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마리의 이리가 예측하지 못하게 공격을 경우에는 자기의 안전을 위하여 도망가므로 양들을 보호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책임이 없다. 상식적으로 누가 자기의 양도 아닌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까요? 그러기에 삯군 목자는 이리가 오면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목자와 삯꾼 목자와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나 진짜 목자는 끝까지 양을 위해 곰이나 이리와 맞서 싸웁니다. 다윗을 보세요. 그는 자기 양을 지키기 위해서 무서운 곰과 사자와도 싸웠습니다. 탐슨 박사라는 분이 있는데 분이 아는 친구가 양을 치는 목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랍계 유목민 3명이 그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양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세 명이 같이 공격했기에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그는 도끼로 갈기갈기 난도질을 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목자는 이렇게 자기의 양떼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바로 그런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마리의 양을 잃어 버리면 그 양을 찾기 위해 험산준령도 마다하지 않고 넘어가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 옵니다. 우리 예수님은 선하신 목자이기에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므로 마귀에게 물려가 가죽도 찢기고 살도 찢겨 엉망진창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우리를 구하시려고 험산준령 같은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양을 구하기 위해 모진 고난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우리가 지은 모든 값을 치뤄 주셨습니다. 그는 구원 받아야 할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놓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나요?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노라.” 이게 바로 진짜 선한 목자입니다. 선하신 우리 예수님만이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붙잡혀 죽으실 것을 다 아셨지만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만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분은 우리를 마귀의 손에서 빼앗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생명을 얻고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에게 가지 고민이 남아 있습니다. 16절을 보면 예수님의 고민이 무엇인지 있습니다. 우리 안에 들지 아니한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터이니 저희도 음성을 듣고 무리가 되어 목자에게 있으리라.”

 

성도 여러분! 구원 받아야 예수님의 양들이 아직도세상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마귀에게 물려가 찢기고 상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세상에서 방황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도 예수 믿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전도하므로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도록 해야 합니다.

 

선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구원 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방황하는 영혼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계십니다. 마치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선하신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가 구원 받았다면 우리도 선하신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선하신 주님의 뜻을 알고 아직도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선한 목자로 믿는 사람들이 해야 자세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자기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내어 놓으셨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열심을 다해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선하신 우리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