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8.10.1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롬12:1-2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오늘 본문 1절에서 이렇게 대답을 해 줍니다.

“형제들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구원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믿는 자들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몸보다 마음을 더 중요시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할 때 하나님은 다른 왕을 세우기 위해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을 사무엘 앞으로 한 사람씩 지나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키도 크고 멋지게 생긴 이새의 아들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동이었던 다윗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왕으로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겉을 보시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를 보세요. 마음에 없는 제물을 아무리 많이 하나님께 가져와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11-13).

하나님은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린다 해도 마음이 떠나있는 제사는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마음이 떠나 있는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마음으로 산제사를 드리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리고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셨는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을 단지 영혼만 구원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구원 받을 때 우리의 육체도 함께 구원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볼 때 믿는 자들이 구원 받을 때 영혼과 함께 몸도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을 받았다면 분명 우리의 영혼을 담고 있는 육체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이 중요한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는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전6:15). 

그리고 “너희 몸은 하나님께로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의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9-20).

성경은 믿는 자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요 성령의 전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곧 우리의 몸도 영혼과 마찬가지로 함께 구원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몸은 죄로 부패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한 육체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죄를 짓는 작업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을 제단에 산제물로 올려 놓아야 한다는 말씀은 그 나약한 육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구원 시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기는지 나타내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우리의 육체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믿음이 자리 잡는 중요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하여 그 사람의 신앙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인격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눈으로 사람의 인격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인격이 눈으로 보이던가요? , 저 사람의 인격은 파랗구나! , 저 사람의 인격은 노랗구나! 이런식으로 인격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인격을 절대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볼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통해 그 사람의 인격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속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인격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이란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줄 수 있는 모니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생각해 보세요. 그 전화 안에는 다양한 부품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부품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스마트폰을 다 뜯어서 들여다 본 후에, ~ 부속품이 있구나라고 하며 믿나요? 아닙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부속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의 버튼을 누르고 화면이 나오는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스마트폰을 다 뜯어 그 속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그 속에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부속품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좋은 믿음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속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고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사람의 몸을 통해 나오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은 우리의 마음을 보여 줄 수 있는 화면이라고 보면 됩니다.

성도여러분! 만약 몸이 없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인격의 사람인지, 또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몸이 있기에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인격의 소유자인지를 나타내 보여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올바로 살고 있구나. 또는 저 사람은 잘못 살고 있구나라고 분별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몸을 통하여 그 사람의 인격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NBC Nightly News에서 이런 뉴스가 방영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정직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10가지 테스트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무엇이었는지 아세요? 우리는 마트에 가서 음식을 삽니다. 그때 물건을 사서 담는 것이 카트입니다. 이때 양심이 올바른 사람은 어떤 상황이 되어도 그 카트를 사용한 후에 정확하게 카트에 가져다 놓아야 할 장소에 가져다 놓고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곳에나 내버리고 가므로 다른 사람들의 차에 상처를 주고 또한 상점 주인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카트를 아예 자기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끌고 자기 집까지 가다가 길에다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운전하고 가다보면 길거리에 카트가 버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심의 테스트에서 합격한 어떤 분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이 됐습니다. 어떤 백인 할머니가 마트에서 시장을 보고 카트에 짐을 싣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비가 막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비를 다 맞으면서도 카트를 가져다 놓아야 할 그 장소에 정확하게 갔다 놓고 가는 것이 동영상에 그대로 찍힌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기가 해야 할 그 일을 그냥 묵묵히 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정직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할머니는 정직하기에 누가 보든 안보든 그 일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누가 보면 체면상 그 일을 억지로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으면 적당히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어디를 통해 나타나나요? 그 사람의 육체를 통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생각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고 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있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므로 구원 받은 사람답게 삶의 모든 부분에서 멋지게 살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진리를 모른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단지 교회에 있는 동안에만 교인 노릇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중에 교회에 한 두번 출석하면 그것이 크리스천의 의무를 다 수행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만날 때 만 교인이 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왔을 때에 만 열심히 찬양하고 예배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과 사회 생활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란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터전을 하나님이 성전 삼으시고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생활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일날, 수요일날 교회 올 때에 나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간다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공장에 갈 때나, 가게에 갈 때나, 사무실에 갈 때나, 학교에 갈 때나, 밭에 갈 때도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러 간다 라는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은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디서나 똑 같은 모습으로 살기를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든 똑 같이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사는 삶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우리의 몸을 드리는 삶인 것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꼭 해야 할 2가지 일이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 믿는 자들은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서 세상이란 우리가 사는 “이 시대” 를 말합니다. 이 시대란 여러 가지 하나님을 대적하며 믿음으로 살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방식이나 사람들의 생각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방법이나 생각을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즉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모든 잘못된 생각들을 거부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눈만 뜨면 접해야 하는 일들을 때로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받아 들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잘못된 것도 잘못된 것으로 보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속담에는 '자주 만나는 사자는 표범으로 보인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비약시킨다면, 사자를 더 자주 만난다면 사자가 고양이로 보이고, 그 다음에는 사자가 생쥐로 보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사자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그러나 아주 위험한 상태로 빠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믿는 자들까지도 쓰러뜨리려고 찾아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의 방식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어느 선까지 받아 들여야 할 것이며, 어느 선에서 거부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별하기가 어렵기에 사람들은 생각도 해 보지 않고 그냥 받아 들이고 따라 갑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쉽고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 그 선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 상황 상황에 따라 어느 시점에다 선을 긋고 거부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본 받지 않기 위해서는 본 받지 않기 위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을 어디서 얻을 수 있나요?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에서 얻을 수 있나요? 세상에서 버는 물질로 얻을 수 있나요? 세상의 경험으로 얻을 수 있나요? 그러한 것들로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할 때 하나님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혀주십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거부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함을 얻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새롭게 될 수 있나요?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안됩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본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면 영혼이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 아이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나 친구들입니다. 그 사람들로부터 아이들은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을 그대로 본받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시 여기며 성경을 가까이 하면 성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믿음의 친구와 자주 만나면 그 사람의 좋은 모습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반면 말씀은 멀리하고 세상 것을 가까이 하면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한 믿음이 없는 사람과 어울리면 조금 있던 믿음도 버리게 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내가 지금 어떤 것을 가까이 하느냐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쪽으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세상을 본 받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세상을 본받지 말고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 여러분의 몸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성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할 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좋은 쪽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변화라는 단어의 뜻은 어떤 형상이 있는데 그것이 다른 형상으로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 합니다. 예전에는 마귀가 원하는 악한 모습으로 사는 것을 당연히 여겼지만 이제 예수님이 원하시는 선한 모습으로 살고자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다 예수님의 선하심을 닮아 변화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다 예수님을 닮아 변화 되기를 기대 하시지만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절대 그렇게 변화 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그래서 변화 받으라고 하는 동사는 수동태로 쓰여졌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변화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 혼자의 힘으로 변화되어 멋진 사람이 되라고 하시지 않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변화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의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변화 되고자 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만약 주님을 믿고 있는데도 자기의 모습이 전혀 변화 되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심각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아직 성령님을 의지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삽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자기 원하는 방법대로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절대 변화가 일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삶에서 멋진 신앙인의 행동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제가 전도하다 한 경험한 일입니다. 어떤 남자분을 만나 전도를 하게 되었는데 전도하는 도중 자기의 아내가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말을 하기에 선생님도 어서 예수를 믿어야 아내와 함께 천국에 갈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저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니 지금 여기서 함께 사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죽어서 까지 함께 가야 하나요?” 그러면서 차라리 그런 곳이라면 안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표정을 짓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삶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보여지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아내에게, 내 남편에게, 그리고 내 부모에게, 그리고 내 자녀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지... 또한 내 이웃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 내 모습이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더욱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큰일까지 어떤 일이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할 때 그러한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산제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교회에 왔을 때만 멋지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 전체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이 나오는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