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8.10.28 어떤 결단을 하며 살아야 할까? 1011-8

이 시간 여러분이 이제까지 걸어왔던 인생의 발자취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 놓은 한 가지 한 가지의 일들을 생각해 보면 모든 일들이 선택과 결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인생도 모두 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단을 하느냐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하며 살아왔던지 그 선택과 결단에 대한 열매를 거두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700클럽이라는 CBN TV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팻 로버슨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예일대학의 법학과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었으며 은행통화위원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삶이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자기 멋대로 살던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예수님을 자기의 구원자로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가 구원의 확신을 체험하던 퇴근시간에 친구가 보통 때 처럼 하러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친구의 요청을 단호히 뿌리치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면서 "여보, 구원받았소"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비웃는 목소리로 "당신 미쳤군요!" 그의 아내가 하는 말을 듣고 그는, " 미치지 않았소. 구원을 받았단 말이오." 그리고 잠자는 시간이 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부엌으로 가더니 다양한 술들이 진열되어 있는 케비넷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위스키병과 다른 술병들을 하나씩 꺼내어 마개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씽크대에다 쏟아버리기 시작했습니다. ... ... ... 그러자 놀란 그의 아내가 달려 나와서 "당신 이래요?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하면서 마지막 술병을 빼앗으 했지만, 그는 그것마져 빼앗아 쏟아 버렸습니다.

그는 구원받았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주님만을 믿고 따르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해서는 그는 이제껏 습관적으로 행하던 나쁜 습관들을 다 버리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후 그는 기독교 방송국을 세워 다양한 일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그가 올바른 것을 선택하고 올바른 결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좋은 것을 선택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것은 바로 용기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선택과 결단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그거야 당연히 결단을 내리려면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린 후에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 만한 희생을 치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결단을 내리며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그냥 자신을 맡기고 환경이 이끄는 대로 사는 쪽을 선택합니다.

마치 죽어가는 물고기가 물살에 저항 하지 않고 물살에 휩쓸려 따라 떠내려 가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결단과 용기가 있는 사람은 거쎈 물살을 거스려 자기가 가고픈 쪽으로 헤엄쳐 올라가는 숭어와 같이 삽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승리나 인생의 승리는 결단력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그래서 사무엘 죤스라는 사람은 “결단력이 없다면 실행할 수 없고, 실행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이제까지 인생을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용기와 결단력을 가진자들이 성공을 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반면 결단을 하지 못하고 미적미적하는 사람들은 늘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안주하기를 좋아 합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것은 잘 안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그게 잘되지 않기에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 결단을 내리세요. 그리고 발을 앞으로 내어 놓고 시작하세요. 그러면 주님이 붙잡아 주십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게 안되요라고 대답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그냥 쉬운 쪽만 선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쪽의 사람인가요? 선택과 결단을 하며 계획 세운 일을 이루어가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용기가 없어 그냥 흘러가는대로 따라가는 쪽인가요? 믿는 자들은 결단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결단력 없이는 신앙생활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버려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결단을 잘 내리는 사람은 삶에서도 지혜롭게 결단을 잘 내리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결단하며 살아 합니다.

방금 우리는 시편 101편을 읽었습니다. 이 시는 믿음의 사람인 다윗이 기록한 것입니다. 이 시를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신앙의 결단을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기에 신앙의 결단 같은 것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그냥 저절로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다윗도 신앙의 결단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도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신앙의 결단을 반드시 내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승리하려면 어떤 결단을 내리며 살아야 할까요?

먼저,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 1절 말씀에서 다윗을 보니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할까요?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드리기 위해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불러 주시고 구원시켜 주셨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 한 가지만 고르라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 다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셨나요? 하나님의 존재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자들뿐입니다.

시편 150편에서 “호흡이 있는 자들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했는지 그의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꿰가 예루살렘으로 옮겨 갈 때 다윗은 무진장 기뻤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꿰 앞에서 어린아이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춤을 추며 하나님께 찬양 했던지 다윗의 허리에 매었던 허리끈이 풀려서 바지가랭이가 내려갔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백성들 앞에서 어린 아이 같이 춤을 추다 바지가랭이가 내려갔다면 망신살이 뻤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가 생긴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 다윗의 아내 미갈이 창 너머로 다윗이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의 바지가랭이가 내려 가는 것을 보고 다윗을 비웃었습니다. 다윗이 마치 방탕한 자 같으며, 염치도 없이 자기 몸을 드러내고 춤추는자 같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다 생긴 실수이기에 챙피를 당한다 할지라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자기는 이 보다도 더 창피한 모습을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또 찬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결단하는 다윗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께 찬양드리다 실수하는 것을 보고 비웃었던 미갈은 하나님이 어떻게 대우하셨나요? 하나님은 그녀가 평생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도록 태의 문을 막아 버리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죄악된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 받은 자들을 하나님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은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다윗 왕이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화롭게 한것 같이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영화롭게 하고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시나요? 하나님은 찬양을 통해 여러분을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해 주신 목적이 바로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이 튼튼하게 잘 자라던가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충성하던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는지 아시나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예배 시간부터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가정에 돌아가서도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구원을 생각하며 열심히 찬양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찬양속에 놀랍게 역사해 주십니다.

오래 전에 무디 목사님과 콤비로서 같이 다니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부르던 생키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생키가 어느날 여객선을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문에서 그의 사진을 자주 본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그 분이 작곡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라는 찬송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생키가 그 찬송을 부르고 나자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생키 선생님, 혹시 당신은 남북전쟁 당시 북군으로 참전한 일이 있었나요?” “네, 맞습니다. 그때 북군으로 참전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저도 남군으로 참전했었는데 그때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북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으며, 그 날은 보름이라서 달은 환하게 비추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때 당신은 내가 총을 쏠 수 있는 사정거리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겨냥해 막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데 당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밤에 부른 그 찬송이었습니다. 그 것은 제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찬송이였습니다. 당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저는 도저히 당신을 쏠 수가 없었습니다.” 생키는 너무 감격하여 자기의 옛날 적을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라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니 그가 나를 도왔도다. 나의 마음이 크게 기뻐하고 내가 그를 찬양하나이다”(시편 28:7).

생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인해 죽을 목숨도 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찬양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방법은 특별하게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목소리가 좋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찬양을 잘 못부르는 음치라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마음으로 드리면 하나님은 그 찬양을 받으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지 말라고 해도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찬양의 도구가 되어 열심을 다해 찬양하시길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또한 믿는 자들이 어떤 결단을 하며 살 때 승리할 수 있을까요?

선한 것만 보고자 결단 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 눈앞에 악한 것을 두지 않겠다고 신앙의 결단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 시대도 지금 이 시대 만큼이나 타락하고 악이 왕성했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악을 멀리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리지 않고는 믿음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는 우리의 마음에 곧바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단지 마음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러면 그 영향은 신앙생활에까지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눈으로 보는 것이 자기의 신앙생활에 방해를 준다는 사실을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 살았던 다윗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눈 앞에 악한 일을 하는 자들이나 불신앙의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보고 배우지 않겠노라고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심각하고 두려운 뉴스들을 자주 보고 듣게 됩니다. 이러한 뉴스들이 방송을 통해 보도 되면 그 뉴스를 본 아이들이나 어른들까지 그러한 일들을 따라서 모방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나쁜짓인지,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따라 합니다.

경기도 용인에서 10 청소년이 평소에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 한 후 목을 졸라 죽였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방치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범행을 저지른 19살 먹은 심모 군은 미리 준비한 칼로 시신을 파손했습니다. 그런 후 그는 자신의 장롱 속에다 시신을 숨겨 놓았습니다. 당시 체포된 군은 영화 '호스텔' 보면서 살인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진술했습니다. 영화 '호스텔' 2005년도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공포 영화로 호스텔에 머무는 여행자들을 상대로 잔인하게 고문하면서 살해하는 것을 즐기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한국에서 제작된 친구라는 영화를 아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 영화는 800 명의 관객을 끌 정도로 흥행했던 영화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지나친 폭력 장면이 많이 나오기에 청소년들이 모방하여 범죄를 저지를 있다는 걱정의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려는 사실이 되어 그해 10 부산의 고등학교에서 1학년 군이 자기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다른 한 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군은범행을 준비하기 위해 '친구'라는 영화를 40 차례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친구를 살해 할 결심을다고 자백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왜 다윗이 자기의 눈앞에 악한 것들을 보지 않겠다고 신앙의 결단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보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요즘은 비주얼 시대입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양한 기기들이 만들어져서 모든 것이 다 눈으로 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눈만 뜨면 다양한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셀폰과 인터넷이 발달되어 너도나도 사용합니다. 요즘은 유치원생들까지 휴대폰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아이페드를 가지고 놉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자료가 유튜브에 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적인 것이라든지 아니면 폭력적인 것들이 많은 양을 차지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요즘에는 폭력적인 게임이나 영화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어디에서 성교육을 받는지 아세요? 텔레비전이나 할리우드 배우들, 그리고 인터넷의 음란 싸이트에서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이 점점 성적으로 문란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교회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예배를 드리지만 많은 시간들을 세상의 다양한 것들에 의해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것들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들이 무엇을 보며 사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는 그러한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어떤 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하시나요?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 내 눈이 가장 많이 보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텔레비전인가요? 유튜브인가요? 불건전한 영화나 자료를 아무런 생각도 없이 보고 있지는 않나요? 그러한 것들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과 사상과 습관들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배우거나 따라가고 있지는 않나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쁜 것을 안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좋은 것을 많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이야기를 생각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 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12:44-45).

우리는 나쁜 것을 그리고 악한 것을 보지 않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됩니다. 대신 좋은 것으로 우리의 눈에나 우리의 마음에 채워야 합니다. 어떤 좋은 것으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채워야 할까요? 이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 늘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즐겨 보던 악한 일들이 차츰 우리의 눈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사는지 눈으로 자꾸 봐야 합니다. 좋은 신앙의 모습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좋은 신앙의 모습을 보고 배우고자 결단을 내릴 때 삶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저는 모압 여인 룻을 보면서 보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녀는 모압 여인입니다. 모압 사람이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 사람입니다. 단지 이방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아주 악하게 굴었던 민족입니다. 자기들 땅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했으며 떡과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압 사람들이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 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압 여인 룻이 이스라엘 사람인 나오미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여인 룻이 예수님이 오시는 족보에 들어간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물론 하나님이 그녀를 선택해 주셨기에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좋은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나오미라는 시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옆에서 직접 본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가 보여준 신앙의 모습을 보고 배웠습니다. 그러기에 룻도 그러한 위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룻기 1장16-17절을 보면,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나오미의 아들들이 다 죽었습니다. 반면 룻은 아직도 새파란 젊은 여인입니다. 그러기에 친정으로 돌아가 다시 시집을 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룻이 뭐라고 시어머니에게 대답을 했나요?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얼마나 멋진 신앙의 고백인가요? 어떻게 이런 신앙의 고백이 그녀의 입에게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믿음의 시어머니로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에는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과 얼마 안된 사람들이 같이 섞여 신앙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오래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멋진 모습을 보여 주는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겸손과 순종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며 목사와 교회를 섬기는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단지 연수로만 경력을 따지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에 와도 보고 배울 모델이 없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선배는 신앙의 후배에게 신앙의 멋진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후배들이 보고 배우며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번 어떤 교회에서 집사들과 권사들을 세우는 예배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권사가 되면 000같은 권사님이 되고 싶어요.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고 늘 앞장서서 열심히 묵묵하게 교회를 섬기고 목사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분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떤 권사님이 멋진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었기에 그런 모습이 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어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서로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아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보고 듣고 좋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멋진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배가 멋질 때 후배들도 멋지게 된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멋진 모습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요?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배울 수 있는 멋진 모습을 한 가지씩 가지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눈으로 무엇을 보는가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우리 모두 다윗과 같이 선한 것만 보고자 신앙의 결단을 하므로 신앙의 승리자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늘 찬양하며 사는 삶이 되고자 마음의 결단을 내리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