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8.12.2 올바른 인생의 성을 11:1-9

우리가 사탄에 대해 연구를 해 보면 사탄은 여러 가지의 방법 통해 믿는 자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있습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무기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으면서도 가장 효과를 얻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것은 바로 교만이란 무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다윗이 인구조사를 것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교만은 가장 오래된 사탄의 전술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믿는 자들을 쓰러뜨리는 가장 강한 사탄의 무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교만이란 것이 우리가 있도록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약 자신이 교만 해지는 것을 있다면 교만해 사람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만이란 교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만해지지 않으려 해도 슬그머니 들어와 교만해 지도록 만듭니다.

교만의 증상은 암의 증상과 비슷합니다. 처음 암이 몸에 발생할 때는 증상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서히 속에서 자라나 자리를 잡아 전체에 퍼지고 나면 그때야 비로서 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서 치료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교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도 처음에는 낌새를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만약 우리가 교만의 증상들을 계속 덮어 둘 경우 분명한 것은 그것들이 그냥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증상들은 계속 자라서 마침내 그 사람을 완전히 파괴시키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바벨탑 사건을 보면 그들도 교만에 빠졌습니다그들의 교만이 어떻게 나타났나요? 하나님이 없이도 있다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그래서 자기들이 원하는 인생의 탑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잘못된 인생의 탑을 쌓으므로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게 하시므로 전 세계로 흩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인생을 설계하며 살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며 사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인생이 수도 있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의 탑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인생이 될까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곳에 모여 자기들끼리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에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그들에게 번째로 축복하신 말씀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땅에 흩어져 충만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땅에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세계 각곳으로 흩어져 살아야 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이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서로 흩어지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우리끼리 모여 살므로 흩어지지 맙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서로 힘을 합하여 높은 성을 쌓읍시다. 그리고 하나님 명령에 따르지 말고 우리끼리  이곳에서 살므로 흩어지지 맙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가 서로 통하지 못하도록 혼잡케 만드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오직 하나의 언어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나오는 나쁜 결과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초의 세계 최대 여객선으로 알려진 '타이타닉호' 대해 영화나 또는 기사를 읽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타이타닉호는 1912 4 14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대서양 횡단을 목적으로 항해를 떠났습니다. 많은 승객을 태우고 첫발을 내딛은 타이타닉호가 캐나다 동부 해안에 이르렀을 , 해안 통제소로부터 '빙산주의' 라는 무전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항해사는 거대한 타이타닉호를 너무 신뢰했습니다. 배는 절대로 빙산정도에 부숴질 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해사는 경고를 무시하고 항해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빙산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자 그때서야 항해사는 선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방에 빙산이 있다는 무전을 받았는데 어찌 할까요? 설마 타이타닉호가 빙산 따위에 무너지기야 하겠습니까?" 선장도 항해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이,

"하나님이라도 감히 배를 어찌할 없을 걸세. 항해를 계속해!" 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결국 타이타닉호는 슬픈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만약 선장이 해안 통제소로부터 오는 말을 듣고 겸손하게 대처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 때문에 무시해 버렸던 것입니다.

만약 바벨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그들은 언어의 혼잡을 경험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계획하신 방법대로 기쁘게 즐겁게 살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언어로 인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사람도 영어를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직장도 얻을 없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원수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겨우 의사 소통만 있지 감정까지는 통하지 않기에 답답하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바벨의 사람들로 인해 빚어진 결과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우리는 생명을 얻을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도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 위에서 기꺼이 죽으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셨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지금도 죄인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셔서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죄를 위해 피를 흘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있는 것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할 우리 같은 죄인들이 죄에서 구원 받는 기적을 체험할 있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우리의 속에서도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나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신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깊은대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그러나 베드로는 전날 고기를 잡으러 바닷가에 나갔지만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기의 경험으로 고기는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깊은 곳에 고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설교하시는 말씀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자기의 경험을 모두 버렸습니다. 자기의 지식을 버렸습니다. 자기의 고집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질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자기 배에 실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사는 것들은 없나요? 바벨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흩어져야 하며 땅에 충만케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흩어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이때 그들은 강제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언어도 혼잡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말씀을 순종하려고 투쟁을 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의 욕심과 체면 그리고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바벨의 사람들 같이 불순종을 선택하지는 않나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도록 하는 가장 원인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시나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원인은 자신의 경험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보니 괜찮더라고 하며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의 경험을 앞세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때로 우리의 경험과 하나님의 말씀이 대립되는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이 옳은 같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옳은 같아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바벨과 같은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무리 인생을 화려하게 쌓아 올린다 해도 결국 허물어 버려야 하는 탑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을 설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면 어떤 것이든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성공하는 인생의 성을 쌓기 위해서는,

자기의 명예를 추구하는 욕심을 버려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벨의 사람들은 하늘 높이 성을 쌓아 하늘에 닿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 높이 쌓으려고 하는 이유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서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한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자기들의 이름을 남기려는 교만 때문입니다. 성을 높이 쌓아서 하나님의 이름 보다 자기들의 명예를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소릴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느 수필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 할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여러분은 글에서 무엇을 느끼시나요?

때로 많은 욕심이 우리의 지혜를 가리기 때문에 순종은 커녕 불만과 불평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나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진달래는 진달래 대로 스스로 만족할 압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따를 아는 순종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순종을 맹종과 혼동하여 순종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가집니다. 그리고 순종하면 발전이 없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순종이란 진리에 대해, 자연에 대해, 부모에 대해, 또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럴 자기에게 맡겨진 본분을 잘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있습니다. 이럴 자기의 영광과 명예를 얻으려고 하기 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우리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주셨는지 이유를 알며 사는 사람은 자기의 명예를 구하지 않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어떤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젊었을 그분의 주특기 웅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전국 웅변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항상 일등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웅변대회에 등록을 하려다가 목사님의 이름이 등록 되었다는 것을 알면 등록을 포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분은 27살에 목사 되었고, 29 7명이 집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9 만에 5천명이 모였습니다. 웅변을 맡아놓고 1등을 했으니 설교도 얼마나 매끄럽게 잘 했을까요.

그래서 그는 재산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한국 목사님들 중에 재산이 제일 많았다고 합니다. 요새 돈으로 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책이 96권이며 32살때 자신의 재산으로 고등학교를 세워서 교장과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45 때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문교부장관을 하라는 제의까지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생기고, 잘하고, 그리고 똑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치셨습니다. 50세에 쓰러져 3 동안 말도 못하고, 몸도 가누지도 못했습니다.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옛날같이 말을 잘하고 싶어서 기도를 하며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하나님 교인들이 보고 싶어서 살겠습니다. 죽기 전에 번만 교회 나가서 설교하고 죽게 주세요. 5 동안이라도 설교하고 죽게 주세요. 그러면 죽을 감사하며 웃으면서 죽겠습니다."

거의 의식도 없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목사님은 계속 " 한번! 5분만!"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3 만에 조금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부터 담임 목회는 못해도 간증을 섞어 부흥회를 인도할 있었다고 합니다. 부흥회를 다니면서 목사님이 가장 강조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교만하게 하나님 앞에서 까불다가 혼나서 이렇게 바보가 되었습니다교만은 죽는 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없으면 안됩니다. 자신의 재간이나 능력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겸손해 지시길 바랍니다."

목사님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며 뛰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으로 인해 쓰러지고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주의 종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나타낼 이렇게 치신다면 여러분을 어떨까요? 마찬 가지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구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바벨의 사람들도 자기들의 명예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럴 하나님은 언어를 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으로 흩어져 방랑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는 대단한 인텔리젠트였습니다. 그는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였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학식과 명예를 위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을 서슴없이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다메섹 도상에서 치셨습니다. 강한 빛으로 그를 치시자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졸지에 그는 장님이 된 것입니다. 자기의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던 삶을 하나님이 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자기의 영광이나 명예를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것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부족한 것을 자랑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살려고 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나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나요?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일도 자신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 바벨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혹시 나는 지금 나의 인생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삶을 위해 살고 있지 않는지? 다른 사람이 칭찬해 주는 것을 위해 달려가고 있지 않는지? 자신의 삶만 위해 자신의 시간이나 물질이나 자신의 육체를 투자하며 살고 있지 않는지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자신을 위한 인생의 계획을 세우며 시간을 쓰거나 물질을 쓰거나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쓴다면 그것을 자기의 명예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됩니다. 이러한 인생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나중에 무너져 버릴 인생의 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높이 튼튼하게 쌓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쌓는 인생의 탑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쌓기를 축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 순종합시다. 하나님께 순종할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 명예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가능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인생의 탑을 아름답게 쌓을 수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이런 인생의 성을 쌓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