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9.3.24 하나님의 임재 마 2820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혼동이 되고 헛갈리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나님이 만져지지도 않고 지금 나에게 말도 거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는지 그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이 있다면 “하나님이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그 하나님이 지금 내 눈에 보인다면 당장 믿겠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나타나 보여 준다면 자기들이 믿겠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므로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임재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의 의미를 모르기에 혼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란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와 특별하게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방언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언을 받아서 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을 하므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어떤 큰 기적이 일어나야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고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어떤 극단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려는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올바른 표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하나님이 구약 시대에 모세를 만나 주시고 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며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이 지금도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면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단 말씀입니다.

지금도 구약 시대에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몽땅 태우므로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모두 제거한 것처럼 그렇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의 얼굴을 만져 주시며 눈먼 자를 고쳐 주시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나와 지금도 동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역사하실 때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며 살 때 옳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엘리야 같은 믿음의 사람도 하나님의 임재를 엉뚱한데서 느끼려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450대1로 영적인 싸움을 벌렸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불로 응답해 주시므로 단위에 올려 놓았던 소와 나무와 물을 다 태우시므로 자기와 함께 하고 계셨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그 기적을 통해 바알 선지자들을 이기고 그들을 모두 죽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경험을 하고 난 후에 아합 왕의 아내인 이사벨이라는 왕비가 자기가 섬기던 바알 선지자들을 엘리야가 다 죽였다고 보복을 하려고 경고장을 보냈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두려운 마음으로 저 멀리 남쪽인 브알세바까지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로댐나무 아래 주저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깜빡 잊었기 때문입니다.

죽기를 간구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떡과 물을 가져다 주시며 힘을 얻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그에게 호렙산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그곳에 가서 굴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립니다.

그때 엘리야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특별한 방법으로만 역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임재하실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며 지나가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토네이토나 허리케인 같은 거대한 폭풍을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바로 이런 가운데에 나타나실 것이라고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에서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거대한 바람이 지나간 에 무시무시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는 거대한 지진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것이라고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지진 속에도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지진이 지나 간 후에 다시 거대한 불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는 그런 불속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실 것이라고 기대를 했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다 지나간 후에 온 사방이 아주 조용해 졌습니다.

그때 아주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강한 폭풍 가운데에도, 강한 지진 가운데에도, 그리고 강한 불 속에서도 임재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아주 잠잠하고 조용한 가운데 임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보며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방법은 요란 스러운 일이 일어날 때가 아니라 조용한 가운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그에게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으시자 불평을 시작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기에 이제 자기만 혼자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에게 지금 너만 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바알에게 무뤂을 꿇지 않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7천명이나 남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보기에 자기만 혼자 남아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순간에도 하나님은 아직 7천명과 함께 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때 엘리야는 완전히 소망을 잃었었습니다.

인생을 완전히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자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명을 받아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성도 여러분! 왜 믿는 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다 자꾸 쓰러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고 게시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이 어떻게 해야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질문을 한다면 반대로 왜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자기가 생각하는 특별한 방법으로만 느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대화를 나누던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말하는 그런 특별한 일들이 자기에게도 나타나기를 기대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곁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우리가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보시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걸어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잠깐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같이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 보았나요?

그들이 예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나요? 아닙니다. 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도 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바로 여러분의 곁에 계신데도 그 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자기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방법대로 주님이 함께 해 주시길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절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생각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절대 자기들과 함께 하실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이 예수님께서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보다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믿는 것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보다 더 강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하나님이 순종하면 된다고 하시는데도 절대 안된다고 믿으므로 불순종을 선택할 때가 얼마나 많나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주님은 저와 여러분과 늘 함께 계십니다.

주님이 어디에 가셨다가 가끔 여러분을 방문하러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24시간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이 잠을 자고 있을 때도 함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다른일 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에도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며 살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굳세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이 약속을 귿게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해 주시느냐 아니냐로 고민하지 않게 됩니다.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느냐 아니냐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주님과 깊은 교재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로 고민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우리 주님이 여러분과 함게 하고 계시다는 증거에 대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감동을 느낀다면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말씀을 읽다가 마음에 책망이나 교훈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주님과 인격적인 교재를 나누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책을 아무리 옆에다 가가이 끼고 다닌다 해도 그 말씀을 통해 아무런 감동이나 깨달음이 없다면 주님과 교재를 나누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이 있다면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계시는 것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이 성경공부를 하다 마음에 교훈을 얻으면 그것도 하나님이 여러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삶을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주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느끼며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하고 그들을 주님게 인도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어간다면 그 사람은 주님이 임재하시고 계심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마음에 깨닫고 용서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사는 사람입니다.

혼자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에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은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해 주셔야 한다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만 의지하며 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던 특별한 일이 일어날 때만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400 에 프랑스에 니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평범 이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30년 동안 전쟁에 참가하여 격심한 전투에서 부상을 어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군대를 제대한 후 회계사의 심부름꾼의 직업을 잡아 일하지만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그는 하나님의 신비한 리를 깨닫습니다. 나무에서 얼마 남지 않았던 나뭇잎이 다 어지고 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그는 이제 이 오면 기서 다시 이 나고 잎이 어나고 이 피고 열매가 을 것이라는 각이 들면서 문득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강렬한 그 무엇인가를 체험한 것입니다.

는 자기가 나이 50이나 되어 자신의 삶을 아보니 너무 자신의 삶이 너무 피폐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이제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체험은 그를 세상의 번잡함에서 어나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불붙게 으며 그 불이 가슴에서 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50세가 되어서 프랑스의 갈메르 수도원으로 들어가고자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렌스라는 이름을 습니다.

수도원에서 처음으로 받은 일은 주방에서 잡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엌에서 일하는 것은 모멸과 멸시와 천대를 의미했습니다. 그가 그런 일을 하다 보니 당연히 사람들로부터 받지 했습니다. 그는 차츰 마음이 불쾌해 졌습니다. 또한 육체는 들고 고달팠습니다. 그러자 그곳의 냄새도 싫고,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일들이 마음에 분노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고민을 안고 그곳으로 들어 왔기에 꾹 참고 계속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던 어느날 그에게 문득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해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이 자기와 항상 동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장소에 있든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던 일을 하든 그 일이 바로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자 자기가 그렇게 싫어하던 부엌에서의 일들이 다른 차원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멸시와 천대를 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일들 속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신다는 원으로 이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부엌일 속에서도 짜릿한 기쁨과 복을 리는 사람으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음식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들도 주님이 함게 하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자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 하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의 얼굴은 항상 났고 기쁨에 차 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물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습니다. 때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아주 사소한 일을 하며 살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임재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끼며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삽니다. 자기의 방법대로 삽니다. 그러기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처음 예수 믿었을 때의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다양한 직책을 맡겨 주셨습니다. 삶의 터전에 나가면 다양한 일을 하게 됩니다. 집에 가면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부모나 자녀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면 권사, 집사, 그리고 성도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감당할 때 이런 저런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든 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일입니다. 어떤 일은 귀하고 어떤 일은 천한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일은 주님이 함게 하시는 일이고 어떤 일은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늘 일 주일에 한번씩 쓰레기를 가져 가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그런 분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완전히 쓰레기 더미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일을 하기에 이 세상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분들로부터 시작하여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통령까지 모두 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직업이든 하나님이 나에게 그 일을 맡겨 주셨다는 사명을 가지고 일한다면 그게 바로 최상의 직업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많이 받는 직업이라도 그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하는 사람은 늘 피곤하고 힘들고 불평이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고 있나요?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고 계신가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사는 사람입니다.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느끼며 그 분과 동행하며 살므로 매일 기쁨으로 살므로 승리하는 자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