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9.4.7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창5:24

성도 여러분! 요즘은 세상이 살기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자라던 어린 시절을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그 당시에 화장실이 집안에 있으리라고 꿈에라도 생각해 보셨나요? 그리고 목욕탕이 집안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나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떤가요? 목욕탕도 집안에 있고 화장실도 집안에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 밤중에 화장실에 가는 일입니다. 깜깜한 밤중에 불도 없이 화장실에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시골의 화장실은 집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밤중에 화장실을 가려면 더듬거리며 가야 했습니다. 불도 없는 깜깜한 화장실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조심을 해야 했나요? 그리고 어릴 때 한 밤중에 혼자 화장실을 간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누군가가 금방 나올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혼자서 가기가 무서워 누군가를 깨워서 같이 가자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화장실 문 밖에 세워두고 볼일을 봅니다. 그러면서도 미덥지 않아 밖에 서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아직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을 합니다. 혹시 혼자 두고 가지나 않았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서 자꾸 이름을 부르며 확인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서운 밤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나와 함께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아무리 깜깜한 밤이라 할지라도 괜찮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런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아무리 세상이 험난하고 무서울지라도 누군가 나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그것도 나와 동행 하시는 분이 사람이 아니라 나를 창조해 주시고 나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전지전능하신 능력의 주님이시라면 더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할렐루야!

여기서 말하는 너희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구약시대에도 자기 백성들과 함께 동행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여호와라...”(레위기11:4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주시고 그들과 동행하시기 위해 애굽의 종되었던 곳에서 그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두려워할까봐 용기를 주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라지 말라. 나는 하나님이 이니라. 내가 너를 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오른 팔로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므로 어렵고 힘든 과정을 다 통과하며 승리하도록 해 주셨던 것입니다.  

요셉을 보면 하나님이 그와 동행하시며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겉으로 보기에 형들의 시기에 의해서 애굽에 팔려간 불쌍한 종으로만 보일지 모릅니다. 자기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린 아이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갈 때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가셨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 있을 때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축복해 주셔서 사에 형통케 하시므로 그를 보는 모든 자들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셨던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요셉이 한 신앙고백을 보시길 바랍니다. 요셉이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을 보고 요셉의 형들은 두려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의 총리라면 바로왕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하고자 하면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권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런 요셉을 두려워하는 형들을 향해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먼저 보내셔서 당신들을 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 마세요.’

요셉은 이렇게 말하므로 두려워 떨고 있는 자기 형제들을 안심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이 늘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어디에 있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약시대에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구약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만 함께 하시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함께 하지 않으실까요? 구약시대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고 계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별로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밖에서 역사하셨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하나님이 더 가까이 우리 속에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는 구약 시대보다 하나님이 더 가까이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자신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주님이 내 속에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떠났던 리빙스턴 선교사님이 오랜만에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분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 명예 박사 학위를 준다고 해서 돌아온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리빙스턴의 모습을 보고 모두 몹시 놀랐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생기고 있고 건강한 모습이었던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원시림에서 복음을 전하다 사자에게 물리기도 했고, 열병으로 20 번이나 쓰러졌기 때문에 몹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리빙스턴이 사람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놀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니 이곳에 남아 편안하게 살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고생이 훤한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분위기를 파악한 리빙스턴은 사람들을 둘러본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살아 계신 주님이 계십니다. 분이 나의 길 동무가 되어서 원시림과 광야를 함께 걸어가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 누리는 축복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저와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평안할 때도 함께 하십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도 함께 하십니다. 고난을 당할 때도 함께 하시고, 말할 없는 깊은 고통 가운데에 빠져 있을 때에도 함께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시길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동행하실까요?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 말은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길을 간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가는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두 사람이 길을 가는데 뜻이 맞지 않거나 방향이 다르다면 같이 동행할 수가 있을까요? 서로 싸우고 갈라 서게 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일을 하려고 해도 의견이 맞지 않으면 티걱태걱 싸웁니다. 그러다 서로 갈라서게 됩니다. , 당신은 저쪽으로 가시렵니까? 나는 이쪽으로 갈랍니다. 그러면서 서로 잘되었네요. 이제 우리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어 잘되었네요. 그러면 잘가세요라고 하며 헤어져서 제 갈길로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야 얼마나 더 중요한가요? 그러고 보면 하나님이 에녹이라는 사람에 대해 성경에다 기록해 주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성경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잠시 동안이 아니라 365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데려갈 때까지 하나님과 동행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지만 에녹은 365년 이라는 숫자대로 살다 하늘나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65란 숫자는 우리가 계산하는 1년의 365일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365년이라는 숫자는 그가 매일 주님과 동행을 하며 365년을 그렇게 했다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에녹이라는 사람이 위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에녹은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 것입니다. 그가 갔던 목적지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지와 같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시길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는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바꾸세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려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가는 방향으로 끌어 당기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에 맞추어 가려고 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옳바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끔 부르는 복음성가가 있는데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발걸음은 언제나 주를 향해 걸었으나 나의 맘과 눈길은 세상을 향하였네 주님 위해 살겠다고 맹세한 나의 고백 바람결에 날리어 흩어져 버렸네.”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가면서 하나님이 자기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 오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과 같은 방향으로 동행할 수 있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가시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믿는 자들은 인생의 목적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과 똑 같이 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속에서 무엇을 원하며 살기를 원하시는지 그 목적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목적을 정해 놓고 그 목적만 이루게 해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들 마다 많은 사람들이 출석을 합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동행하려고 하기 보다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님을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정해 놓은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하기 보다 자신이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으로 따라 가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돌려야 합니다. 자기의 인생의 목적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옳바른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에녹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365년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2백 년 전에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리던 유명한 제니 린드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부른 노래 중에서 우리가 잘 아는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Jenny는 가수로서 최고 인기가 좋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갑자기 가수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인기를 맛본 가수이기에 그 달콤함을 누리기 위해 틀림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무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무대를 떠난 뒤 완전히 소식을 끊었습니다. 몇 년 후 한 친구가 Jenny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니! 사람들이 환호를 외치는 무대가 그립지 않니?" 그때 그녀는 성경을 가리키면서 "돈과 인기 때문에 내가 이 행복을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어. 무대 위의 기쁨은 잠깐일 뿐이거든!" 하면서 그녀는 무대로 다시 복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기가 가는 방향이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과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만약 자기가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간다면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과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동행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해도,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으로 자기가 돌아설 줄 아는 사람이 멋진 신앙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려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바로 용기입니다. 용기가 없으면 절대 그러한 신앙의 결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아직까지도 주님과 동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빨리 방향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안된다고 하기 보다 용기를 가지고 결단을 할 때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모두 이런 결단을 내리므로 주님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주님과 동행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시길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5-6에 보면 에녹에 대해 이렇게 증거를 합니다.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해야 합니다. 동행하는 사람이 같이 동행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지 않으면 같이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음식도 먹고 차도 옆에 같이 타고 다니고 싶은가요? 아닐 것입니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과 포옹하라고 하면 싫어서 도망을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도들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마음의 상태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무엇인가 감정적으로나 기분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말할 때 그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말하는 말투도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상대방과 나와 마음이 일치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저절로 표출 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 금방 파악이 됩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도 똑같은 원리입니다. 주님에 대해 뭔가가 불만이 있는 사람은 주님과의 관계가 달라집니다. 그러면 주님이 싫다는 것이 은근히 행동에서나 말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태도나 방법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면 헌신과 충성된 마음이나 감사한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지 못해 억지로 하기에 형식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친해야 합니다. 가까와야 합니다. 그래야 그러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의 대표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평생을 동행하다 하나님이 죽음을 맛보지 않도록 하늘 나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의 옆에서 동행 했던 것입니다.

에녹이 어떻게 했길래 하나님을 그토록 기쁘시게 했을까요? 그가 어떻게  365년 동안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동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의 관심사는 오직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믿는 자들이
구원 얻는 믿음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구원 얻는 믿음이 무엇인가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나는 죄인이기에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내 죄 때문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을 가진자는 또 다른 믿음도 가져야 합니다. 그냥 구원 받았다는 믿음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고자 의탁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 받은 자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자에게서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원 얻는 믿음과 삶속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신뢰의 믿음을 가져야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찾아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으로 따라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동서남북이 어느 쪽인지를 알려면 나침판을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침판은 항상 북쪽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침판을 아무리 흔들었다 놓아도 바늘은 북쪽으로 돌아갑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면 우리의 삶의 환경이 어떤 상태가 된다 할지라도 생각은 늘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   

그런데 이러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날마다 정성 들여 말씀을 읽고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나오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가시는 같은 방향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동행하시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