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9.4.14 열매 맺는 삶이 되자 막11:12-14, 20-25

오늘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날을 기념하며 지키는 종려주일입니다. 종려 주일이라는 이름이 불리워지게 된 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무리들이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흔들었던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오늘부터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되는 주간이라고 해서 고난주간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고난 주간에 행하셨던 일들 중에 중요한 한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주일 날 만왕의 왕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성전을 한번 둘러 보시고 베다니라는 곳으로 나가셔서 하루 밤을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중이셨는데 그때 예수님은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위를 둘러 보시다가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 하나를 발견하셨습니다. 그 무화과 나무는 보기에 잎이 아주 무성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시고 나무에게 가셨지만 아무 열매도 찾지 못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무화과 나무를 향해 이렇게 저주를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들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그러자 즉시로 그 나무는 뿌리째 말라 버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길거리에서 자라는 무화과 나무는 여행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장하셔서 무화과 열매를 찾으셨으나 찾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이튿날 제자들은 저주받은 무화과 나무를 보고 뿌리째 완전히 말라 죽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사건 속에는 사람들이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말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13절에 가서 보신 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고 하고 그냥 끝났다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라는 말이 덧붙여 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 나무는 아직 열매를 맺을 때가 되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깁니다. 당연히 때가 되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열매도 맺지 못했다고 저주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왜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저주 하셨는지, 그리고 왜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는지에 대해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예수님이 무화과의 철이 아니였기에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그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일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에는 반드시 어떤 의도를 가지시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교훈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에는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는 나무가 두 개 나옵니다.

하나는, 포도나무이고 두번째는, 무화과 나무입니다.

상경에서 이 두 나무는 늘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두 나무의 특징도 비슷합니다.


포도나무나 무화과 나무를 키우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오직 한 가지 목적 밖에 없습니다.

포도나무나 무화과 나무는 절대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드는데 쓸 수 없는 나무들입니다.

그 나무들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면 불에 태우거나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에 무화과 나무가 해야 할 것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화과 열매를 찾았지만 그 무화과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때가 아닌 때에 예수님이 열매를 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그 무화과 나무에게 열매를 요구하셨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왜 예수님이 그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기대하셨을까요?

그 나무는 겉으로 보기에 잎이 무성했다는 것입니다.

잎이 무성하게 나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열매를 맺고 있다는 표시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무화과 나무의 특징입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반드시 열매가 맺어져 있어야 정상입니다.

 

보통 팔레스타인 지역의 무화과 나무는 일년에 두 번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이른 열매는 3월부터 5월까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늦은 열매는 8월부터 10월까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무화과 나무는 잎이 나오기도 전에 열매부터 맺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무화과 열매를 얻으려고 하신 때는 4 중순 쯤입니다.

 

그러기에 그때 쯤이면 무화과 열매를 당연히 맺고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잎이 무성하면서도 열매도 풍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무화과 나무의 저주를 통해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교훈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 무화과 나무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 받은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겉모습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그들의 신앙의 모습은 화려했습니다.

그들의 겉 모습에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그저 허울 좋은 형식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열매는  맺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성전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성전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자기들이 돈 버는 사업장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가신 곳이 성전입니다. 그리고 공생애를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기 전에 가신 곳도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가셔서 그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채찍으로 내좇으셨던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내 쫓으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집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물론 그들도 성전에서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렇게 그들을 꾸짖었을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의 기본 자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나 예배를 자기들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 이용했던 것입니다.

 

왜 그들이 성전 안에서 돈을 바꾸어 주는 일을 하고 비둘기 파는 일을 했을까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자기들의 욕심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같이 열매는 없으면서 잎만 무성한 것 같이 그들의 신앙생활도 겉으로 보기에만 화려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과 성전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는 그들의 마음을 다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겉으로 화려하게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 같은 그들의 행위를 채찍으로 때리고 상을 엎으시므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런 깊은 뜻을 가르쳐 주시고자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의 모습은 무화과 나무처럼 잎은 화려했지만 열매는 전혀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을 통해서 열매 없는 신앙생활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도 자신들을 돌아 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겉으로만 화려한 형식주의가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제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자들이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좋은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과연 잎만 무성한 신앙생활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잎만 무성한 모습이란 입술로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을 귀하게 옳바로 섬기지 않고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으로는 순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따르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그렇게 하는 척 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있으면 대단히 믿음이 좋은 사람 같이 보여지기에 열매도 많이 맺으며 살것이라고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 보면 열매는 없고 형식적인 신앙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모습으로  신앙생활하는 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에서도 순종하며 멋지게 주님을 섬기고 교회 밖에 나가서도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도록 멋지게 행동하는 사람이 열매 맺는 신앙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물이 아주 소중합니다.

어느 시골에서 가뭄이 들어 물이 몹시 귀한 물로 인해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가 늦도록 수고하며 논에다 물을 대어 놓고 집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논에 나가 보니 이웃에 사는 논의 주인이 자기 논둑을 터서 물을 자기 논으로 빼낸 것입니다.

그 성도는 화가 무척 났습니다.

그래서 당장 달려가서 사람의 멱살을 붙잡고 싸우고 싶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참고 다시 논에다 물을 대고 들어와 잤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논에 나가 보았더니 또 어제와 같이 물을 훔쳐간 것입니다.

그 성도는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록 화가 나서 당장 달려가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참고 목사님에게 달려가서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제안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님, 지금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지 마시고 어떤 것이 서로 살 수 있 길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이번에는 물을 빼앗긴 치고 사람의 논에 먼저 물을 대어 준 후에 성도님의 논에 물을 대어 보세요.

성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목사님이 그렇게 제안을 하시자 그는 원수 같은 이웃 사람의 논에다 먼저 물을 충분히 대어 준 후 자기 논에 물을 대어 놓고 돌아와 잤습니다.

그랬더니 아침 일찍이 고약한 이웃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당신처럼 착한 사람이 됩니까? 나는 당신이 달려와서 싸우자고 알았는데 먼저 논에 물을 대주다니요. 저도 이제부터 예수 믿고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결국 그의 선행으로 귀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이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찬양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승리하며 사는 자들이 하나님께 나와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사람을 왜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선한 모습으로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선택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믿는자들이 선한 행동을 하며 살 때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시켜 주신 목적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는 예수님께 저주를 받고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이 무화과의 저주는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열매를 많이 맺힌 것 같이 보이는 위선적인 크리스천들이 되지 말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며 살므로 하나님이 칭찬해 주시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무화가 나무를 저주 하신 또 다른 이유는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 주 이심을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창조 주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제가 렉싱톤에 살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느날 화장실 파이프가 막혀 하수구로 오물이 내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빨래를 해도 물이 넘칩니다. 더군다나 한 여름에 그런 일이 생기니 냄새도 심하게 납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하수구 뚫는 화학제품도 사다 부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운티의 하수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나와서 조사를 해 보더니 나무 뿌리가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서 꽉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기에 고쳐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수구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카메라를 사고 기계를 빌려서 뿌리를 다 잘라 냈습니다.

그런 후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 해에 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무를 잘라내지 않아서 나무 뿌리가 자라서 하수구를 막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무 뿌리만 자라낸 것이 아니라 아예 나무도 잘랐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를 완전히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하다 개스를 붓고 불을 질렀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나무 그루터기를 하나 태우기 위해 불을 피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오랜 고생 끝에 그 나무를 태워서 죽였습니다.

저는 그 나무 하나를 죽이면서 인간의 능력은 정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저는 그 나무 하나를 죽여 없애는데 온갖 노력을 다해야 겨우 하나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을 보면 창조주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십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죽이는데 예수님은 그 나무를 자르라고 하지 않으셨고 나무 뿌리를 캐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그 나무에다 불을 지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예수님은 그 무화과 나무를 바라 보시며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내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시자 그 무화과 나무는 뿌리 채 말라 죽었습니다.

이게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이것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창조주 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가막히게 잘 증거를 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고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면 모든 피조물들은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그 분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영적 세계를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이 명령 하시면 떨면서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그 분은 자연세계를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큰 폭풍과 파도가 일어나도 그 분이 한번 잠잠하라고 명령하시면 성난 파도도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을 보면서도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것은 교만으로 인해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나옵니다.

어느날 예수님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눈에다 진훍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자 눈이 떠져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그를 붙잡아다 심문을 합니다.

누가 네 눈을 뜨게 해 주었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이때 그 사람은 예수라는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해 주었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고 그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라는 자는 죄인이기에 절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부정합니다.

이때 장님이었다 눈뜬 사람이 이렇게 증언을 합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라.”  할렐루야!

 

이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완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예수님이 이런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그리고 단지 저주 했다고 그 무화과 나무가 어떻게 뿌리까지 말라 버릴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보고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이 바로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이심을 나타내 보여 주시기 위해서 이런 능력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능력을 가지신 주님께서 마지막 날 재림하실 때 예수님을 의심하며 믿지 않았던 모든 자들을 심판하실 재판장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분임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넘겨 주셨습니다.

 

마지막날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실 예수님은 은혜의 주님이 더 이상 아니십니다.

그때는 무서운 심판 주로 오십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경을 통해 보여 주시고, 선포해 주셨건만 바리새인들처럼 끝까지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지옥으로 가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기를 거부하던 모든 자들은 무화과 나무의 저주와 같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오늘 무화과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믿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면서 잎만 무성한 바리새인들과 같은 겉모습만 화려한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신앙인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잘했다, 작은 일에 충성했다라는 칭찬을 듣는 성도들이 다 되도록 열심을 다해 열매를 맺으며 주님을 섬기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