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6.10.23 예수님 능력을 받으려면 요4:46-54

오늘 말씀에는 왕의 신하가 나옵니다. 사람의 아들은 거의 죽을뻔 했지만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정확한 그 시간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살아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 예수님이 고쳐 주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가족에게도 복음을 전하므로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이 해 주신 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축복 받은 인생입니다. 우리도 이런 사람이 다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일을 이루어 주시든지 그것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그래서 저는 우리가 어떤 마음의 자세가 될 때 예수님이 해 주신 그 놀라우신 손길을 볼 수 있는 눈이 될 수 있는지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마음이 되므로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손길을 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손길을 볼 수 있으려면, 먼저 마음이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이 겸손할 때 하나님이 하신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찾아온 왕의 신하를 보면 세상에서 말하는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직책을 영어로 Royal Official 라고 부릅니다. 이 말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작은 왕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그 만큼 그 사람의 직분이 높고 귀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아들이 아파서 죽어갑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작은 마을에 사는 이름도 없는 목수였던 예수라는 사람을 찾아온 것입니다. 가버나움이란 동네에서 가나까지 오려면 약32Km정도 됩니다. 약 20 마일 정도 되는 거리이지요. 왕의 신하는 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요즘 그 정도의 거리야 차로 30-40분 운전하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걸어서 4-5시간 정도 걸려야 합니다. 그뿐인가요? 그는 왕의 신하로서의 체면도 포기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자존심도 버렸습니다.

보통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이나 유명하게 알려져 있는 사람은 절대 이름도 없는 무명의 사람에게 찾아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의 신하는 이런 관습에ㅔ 엃매이지 않고 무시해 버리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틀림없이 그의 행동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톱픽 뉴스 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도 전전긍긍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가서 아들만 살릴 수 있다면 그는 더 낮아질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능력의 손길을 체험하려면 이렇게 겸손해져야 합니다. 왕의 신하 같이 자기의 자존심을 버리고 낮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삶속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어 주신다 해도 하나님이 해 주신 손길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겸손할 때 하나님이 해 주신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먼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예수님께 찾아 온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 아들을 살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의 삶에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사람을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이던가요?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 입니다. 그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공통점은 한결같이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소설 ‘빙점’이라는 책을 읽어 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책은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라는 작가가 쓴 책입니다. 1964년 7월 6일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의 날입니다. 왜냐하면 그날 그녀가 응모한 소설 '빙점'이 입선 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이날은 무진장 기쁜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신문사에서 당선 되었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남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그 기쁜식을 들은 그날도 보통 날과 똑같은 시간에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장 이층 방으로 그녀를 데리고 올라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더니 하나님께 먼저 감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자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보, 천만 엔의 상금을 받고 유명하게 되면 인간이 바보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합시다.” 그녀는 그때의 그 기도를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위대한 일 앞에서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녀가 처음으로 느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하나님 앞에 무뤂꿇고 기도할 때 누가 이 위대한 일을 이루어 주셨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삶에서 젛은 일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성도 여러분! 좋은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어주셨다는 것을 보고 영광 돌리는 사람은 진짜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셔서 이루어 주셨을 때 그것을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언제 많이 쓰러지나요? 좋은 일이 생길 때일까요? 아니면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일까요? 인생의 위기는 사실 어려울 때보다 오히려 모든 일이 잘 될 때 옵니다.

사람들이 위험한 길에서 넘어지는 경우는 오히려 적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평탄한 길에서 잘 넘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방심하기 때문입니다.

미우라 아야꼬는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약 남편이 자기의 소설이 당선 되었다는 소릴 듣고 일찍 집으로 돌아와서 "야, 당신 진짜 대단해. 거액의 돈도 공짜로 생겼으니 우선 나가서 외식부터하고 봅시다. 그리고 멋진 곳에 가서 와인이나 한 잔 하며 축하 파티를 열고 돌아 옵시다!"라고 말했다면 그녀는 그렇게 커다란 기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기도하며 자신을 겸손으로 추스리자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 감사가 나왔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 주셔서 누리게 되면 그것 때문에 마음이 변질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치 자기의 능력으로 이룬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우쭐해져서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면 교만의 구덩이로 빠지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그 일을 이루도록 해 주신 하나님을 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약 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이스라엘 왕들이나 유다 왕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읽기를 바랍니다. 왕들을 보면 한결같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도와서 주변에 있는 나라들을 쳐서 두렵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 평강이 있고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시길 바랍니다. 모두 변질 된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쪽으로 타라하든지 아니면 자신을 드러내는 자만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평강을 누리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도 진짜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던 왕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제 죽을 터이니 유언을 남기고 집을 정리하고 죽을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게 간절히 기도하며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 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후 그는 또 교만해졌습니다.

그가 병에서 회복되었다는 축하의 사절단이 바벨론에서 오자 그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다 공개해서 그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성전의 창고에 있는 금은 보화와 그리고 자기의 재산 모든 것을 다 자랑하며 보여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한 것일까요? 자기의 능력이 어떤가를 그들에게 보여 주며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것을 그는 잊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잘되면 그것이 자기의 능력으로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잊어 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나중에 바벨론이 유다를 함락할 때 그가 자랑하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잘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해 주신 모든 손길을 볼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미우라 아야꼬와 그녀의 남편이 하나님이 해 주신 손길 앞에서 겸손해 지자 30여 권이 넘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하나님이 해 주신 일들을 보며 감사하며 살고 있나요? 하나님의 은혜는 많이 받고 살고 있으면서도 늘 배고프고 굶주려 있는 사람은 없나요? 혹시 하나님은 내 삶 속에서 아무것도 해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나요? 만약 그런 마음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한번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겸손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왕의 신하가 예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며 겸손해진 것처럼 겸손해지므로 하나님이 해 주신 능력의 손길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하신 손길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찾아온 것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가려고 온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 아들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와 같이 가려고 하시지 않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그래 내가 너와 함께 가마!”라는 말을 기대했는데 예수님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참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더니.” 할렐루야!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완전하게 붙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도 의심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님께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내가 집으로 돌아 가면 아들이 살아 난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자 여기 종이 위에다 그렇게 되리라는 보증 싸인이라도 해 주시죠.” 왜냐하면 그는 아직 예수님이 자기 아들을 고쳐 준 것을 눈으로 확인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어갔을 만도 한데 그는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저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며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왕의 신하의 이야기를 우리가 남의 이야기로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왕의 신하 같은 믿음으로 순종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는 그런 믿음과 순종을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믿음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구약 성경에 아람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아람에서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아무리 물질과 권세와 명예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문둥병 환자에게는 그것이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에게 그 사실을 고하고 선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갑니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그곳에 가면 병을 고쳐 줄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담그고 나오라는 말만 하는 것입니다. 그는 화가 났습니다. 내가 누군데 이렇게 나를 대우하느냐고 하며 노발대발합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때 종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더한 일을 하라고 해도 병이 낫기 위해서는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요단강 물에 들어가서 일곱번 씻고 나오라는데 왜 그것을 못한단 말입니까? 그 분의 말에 순종하세요. 이때 나아만은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자존심을 내려 놓고 말씀에 순종하고 요단강 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일곱번 담그고 나오자 그의 몸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내 생각은 이런데 이렇게 해 줘야 기적이 일어나지라고 할 때는 안 일어납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해서 행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을 보면 그저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순종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깁슨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된 깁슨에게 부자가 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깁슨은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첫째,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그러자 “그 정도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깁슨은 웃으면서 “맞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아직 그걸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순종으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귀신들도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인가요? 행동으로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하며 찬양합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32km 나 되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도중에서 종들이 나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당신의 아들이 살아 났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언제 나았는지 종들에게 물어 봅니다. 정확하게 예수님이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라고 말씀한 그 시간이었음을 확인 했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온가족을 그리고 집에 살고 있는 모든 종들을 믿음의 길로 이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루하루의 삶을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있나요? 여러분은 기도한 후 응답을 받고 나면 그저 당연한 것처럼 슬쩍 넘어가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은 없나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직접 개입하셔서 하나씩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는 오늘 왕의 신하의 모습을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해 주신 손길을 보며 감사하며 판양하는 성도가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