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6.10.30 항상 기뻐하며 살려면 살전 5:16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부담스러워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들일까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믿는 자들은 부담스러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서 “항상”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언제나 변함없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려운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가요? 목사님, 기뻐해야 할 건덕지가 있어야 기뻐하지 무엇을 가지고 기뻐하나요? 매일 눈만 뜨면 어려운 일이 터지고, 힘든 일만 일어나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나요? 그런 속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믿는 우리를 향해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는 우리의 환경이나 처지에 따라서 기뻐하며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처한 하루하루의 삶이 어떤지 다 알고 계십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진짜 기쁨을 누며 살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이곳에는 늘 슬픔과 고통이 우리를 따라 다닌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우리의 마음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기에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아멘. 그러기에 여기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평안한 가운데 있을 때에만 기뻐하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에 있을 때에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 소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 놓일 때에라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를 향해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도 바울이 그의 삶에서 늘 좋은 일만 일어났기에 기뻐하며 살았나요? 그가 늘 평안한 환경 가운데서 살았기에 기뻐하며 살았나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를 향해 항상 기뻐하라고 말 했을까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늘 긴장과 초조속에 살았던 삶입니다. 언제 한번 느긋하게 평안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순간이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살았는지 그의 서신을 읽다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평안한 가운데 살았던 때가 감옥에 갇혀 있는 때였습니다. 그의 삶은 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살았습니다. 늘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동족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며 두둘겨 맞는 일도 밥먹듯이 했습니다. 그 외에도 그는 바다의 위험이나 강의 위험을 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항상 기뻐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데 사도 바울을 보면 그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을 때에는 만족하지 못하며 살았던 삶이었습다. 그는 젊었습니다. 그는 가말리엘의 수석 제자였으니 얼마나 독똑했을가요. 그는 권세도 있었습니다. 명예도 있었습니다. 물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죽이고 감옥에 가두는 일을 하며 만족을 누려 보려고 무척 애를 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할 때에는 그의 마음에는 진짜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마음에 만족을 채워 보려고 더 강한  폭행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의 마음에는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나자 그의 마음 속에는 이전에 없던 기쁨이 차고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채워지지 않던 기쁨이 그의 마음에 가득차는 것입니다. 그는 예전에 자기 만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삶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이전에는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그 예수를 믿으므로 핍박을 받는 삶이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한번은 그가 빌립보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점을 치며 주인에게 돈을 벌어주던 귀신들린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과 실라를 따라 다니며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내좇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화가 몹시 났습니다. 그 귀신들린 여종 때문에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귀신을 좇아내니 자기 사업이 망한 것입니다. 돈을 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몹시 화가 난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관원에거 끌고 가서 죽도록 매를 맞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매를 맞고 춥고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 이쯤 되면 어떤 말이 그들의 입에서 나와야 정상일까요? 괜히 예수 믿어서 이런 일을 당하네. 내가 좋은 일하고도 매를 맞다니 진짜 예수 못믿겠네. 예수 믿어서 손해봤다. 이제 이곳에서 풀려 나가면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도 하지 말자. 아마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나요? 기쁨이 넘쳐서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아니 불평불만을 하며 억울하다고 화를 내야 할터인데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하며 기도를 한것입니다. 이게 어디에서 나오는 기쁨일까요? 이런 기쁨은 절대 세상이 주지 못합니다. 오직 주님안에 있는 기쁨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쓴 서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책을 옥중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빌립보서 4장1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이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어떠한 형편에 놓였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어디에 있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나요? “주 안에서”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누구 안에서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하셨나요? 예수 안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하지만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깐입니다.

영국 격언에 이런 재미있는 격언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소나 미장원에 가라.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차를 사라. 한달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일년을 행복하려면 새집을 지어라. 중국에도 이런 격언이 있기는 한데 조금 다릅니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여행을 가라. 일년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이런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있을까 연구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늘 행복은 잠간이고 또 다시 행복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을 찾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사람이 평생을 기쁨 속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을 많이 벌어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 그러면 행복할까요? 얼마나 있으면 행복할까요?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많이라는 생각으로 끝이 없이 욕심을 내게 되어 있어서 늘 불행합니다. 그러기에 평생을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예수님을 믿어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그 원동력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는 자들이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원동력은 돈을 풍성하게 갖고 유복한 생활을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원동력은 우리에게 구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사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십니다. 우리는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이기에 기뻐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삶을 확실하게 얻었다는 것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빼앗길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것을 소유한 기쁨이 우리 마음에 넘칠 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외칩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51:12). 다윗은 주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신 그 구원의 기쁨을 회복 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기쁨에 의해 기쁨이 생기지 않으면 기쁨의 원동력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썼습니다. 그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잠간 한 눈을 팔았습니다. 세상이 주는 육신의 기쁨으로 살려고 하다 실패를 한 것입니다. 그는 육체의 만족을 누리려고 우리아의 아내를 데려다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육체의 정욕으로 기쁨을 누리려다 그는 진짜 자기 속에 있는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그는 주님이 주시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영원히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지만 영원한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의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고 매달렸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도 항상 기뻐하며 살라고 권면을 합니다. 이 서신을 써서 보낼 때 데살로니가에 사는 성도들의 환경은 어땠을까요? 평안하고 좋은 일만 일어나는 환경이었을까요? 그래서 기뻐하라고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그 이유 때문에 몸시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고통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는 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전해 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진짜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그들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만 만족을 삼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만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 모진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 안에서 기뻐하며 살고 있나요? 내가 지금 주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의 것으로 기뻐하며 살고 있는지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분은 어려움이 오면 주님을 의지하며 그것을 끝까지 해쳐 나가고자 기도하며 살고 있나요? 그리고 주님으로 기뻐하며 구원의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나요? 그러면 주님안에서 기뻐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약 돈이 조금 생기면 그것 때문에 기쁨을 얻는 다거나, 아니면 자녀들이 무엇인가 이루는 것을 보거나 손자 손녀들이 무엇을 하는 것을 볼 때 기쁨이 넘치거나, 아니면 환경적으로 좋은 일이 생길 때만 기쁨이 있는 사람이 있나요? 물론 이런것으로부터 기쁨을 누리면 안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쁨의 근원을 이런 것들에게만 둔다면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젊음과 외모도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그러기에 얼굴을 수술하는 사람은 만족이 없기에 계속 끊임없이 하고 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기에 자꾸 더 고치므로 기쁨을 누려 보려는 것입니다. 명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명예를 가지고 있다 해도 작은 실수를 하나 하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버립니다.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를 보세요. 그는 약 3주전에는 힐러리와 거의 비슷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5년도에 그가 여자들에게 모욕적인 말은 한것이 밝혀지자 그것 때문에 여자들에게 욕을 먹고 그의 인기가 곤두박질 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하면 금방 마음이 변합니다. 이게 바로 세상의 인심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이가 먹으면 오직 귀엽고 예쁜 손자 손녀들이 그들의 기쁨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쁘고 귀엽던 손주들이 커가면서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귀엽던 아이들도 나중에 실망을 안겨 줍니다.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품안에 자식이지 조금 크면 자기들이 혼자 컸다고 하며 부모를 무시합니다. 특히 미국에 와서 사는 한국 부모들은 그런 소외감을 많이 느낍니다. 배신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 엄마가 최고 인줄 알고 자랍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는 부모의 보호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교에 가서 지식을 배우다 보면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먹고 살기 바뻐서 영어를 배울 시간이 없습니다. 열심히 벌어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부모들은 후퇴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부모를 보면 무식하다고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부모에게 자기들의 이야기도 집에 와서 잘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오직 자식이 소망이고 기쁨이었던 부모의 마음에는 실망과 좌절과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에 세상이 주는 기쁨은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대는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불평불만이 가득하여 전부 다 폭발직전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남자도 여자도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이제 한국에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한 해에 13천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37분 마다 한명씩 자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살자가 이정도라면 죽지 못해 억지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가요? 기쁨은 고사하고 아예 사는 자체를 힘들어 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항상 기뻐하라 말씀하십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경우에든지 기뻐하라는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런 환경속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을까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만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항상 기뻐하며 살려면 첫째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기쁨은 주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 때 진정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쁨의 근원을 물질이나 환경에서 찾지만 그런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기쁨의 근원은 예수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단지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믿음이 아니라 마음으로 내려와서 느껴지고 그것이 삶의 기초가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냥 믿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사람의 생각과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정말 용서 받은 사람으로 살고, 정말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정말 천국의 시민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실망을 주어도 믿음으로 극복하기에 마음속 깊이 있는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환경이 된다 해도 기쁨을 유지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기 위해서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맡기라니까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맡기는 삶일까요? 하나님께 맡기며 사는 삶이란 하나님이 하라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 있고,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져야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기쁨을 잃어버리고 계속 근심과 한숨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린아이들이 누리는 평안함과 기쁨을 이해할 있나요? 아이들이 누리는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모든 문제를 부모님께 맡기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이들이 그런 삶이 아니라면 아마 근심 걱정에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주는 대로 먹고, 주는 대로 입고, 가라면 가고,  놀라면 놀고, 잠을 자라면 잡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믿는 자들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이런 마음이 될 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기쁨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어떤 경우에도 기뻐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내가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한다 했으며내가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친다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도 삶의 모든 문제들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길 때 그러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기쁨을 누리며 항상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