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6.11.27 예수님을 만나면 요9:1-9

혹시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 경험이 있나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모양 이꼴로 살지? 아니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병에 걸려서 이렇게 고생을 하며 살고 있지?”

아니면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서 자신이 한 번이라도 이런 말을 해 보거나 아니면 생각으로라도 해 본 사람이 있나요?

한국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불교의 영향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불교는 윤회설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윤회설이란 사람이 죽은 후에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는 조건은 이 세상에서 살 때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조금 나은 상태로 태어나기도 하고 이 세상에 살 때 잘못 산 사람은 아주 하찮은 지렁이와 같은 미물로도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아내를 때리며 폭력을 일삼던 남편이라면 다음 세대에 태어날 때는 매맞는 아내로 태어난다고 믿거나 악성빈혈증 환자가 된 사람은 전생에 남의 피를 많이 흘린 도살업자이었기에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착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 바로 윤회설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불교의 문화권에서 살아왔습니다. 불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시대 소수림왕 2년인 372년 경입니다. 그러니 한국 문화가 어떤 문화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불과 1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워낙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살아왔기에 기독교를 받아 들인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상 속에서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나 말이 불교적으로 묻어져 나옵니다. 지금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전생에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생각 없이 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배워왔던 불교 사상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타고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그러기에 조그만 힘들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일을 당하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 선택 받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며 살아서는 안될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이상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전생에 무엇을 했느냐를 따지는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해 그렇게 되었느냐로 따지는 사상이 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의 생각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맞은 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옵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소경이기에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때 제자들이 그 사람을 보자마자 곧장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 저 사람이 소경된 것이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저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제자들이 한 이 질문에는 이 사람이나 부모 중 어느쪽에 의해서 소경이 되었느냐는 말입니다. 결국은 둘 중 한쪽의 죄로 인해 이러한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고생하는 것도 바로 그 죄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뉘앙스를 깔고 물어 보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이 기대하는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저 사람의 부모의 죄도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것은 사람은 절대로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절대 윤회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육신적으로 한번 태어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므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오직 육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한번씩 태어납니다. 그리고 사람은 육신적으로 한번 죽에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영원한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에 다시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을 당해야 합니다. 그 영원한 죽음이 무엇인가요? 육신의 죽음을 당한 뒤 지옥으로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한번 죽으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으로 갑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절대로 다시 이 세상에 사람으로나, 동물, 또는 미생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헛된 공상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귀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종교를 믿도록 하려는 궤계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이런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잘못된 사상에 물들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소경이 된 것이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그 사람의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체적으로 불구자인 사람들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 되거나 손이나 팔 그리고 다리 중 어느 지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잘못된 시각으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 저 사람은 전생에 무슨 죄가 있기에 저렇게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죄와 연결해서만 보려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불편할까? 어떻게 도와 주어야 할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도와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의 죄 때문이냐를 따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주변에는 신체적으로 불구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실수로 사고를 당해 어려움을 얻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 총을 맞거나 폭탄으로 인해 육체의 어려움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얻은 육신의 불구자도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나의 죄로 인해 그런 어려움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로 인해 당하는 고통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의 눈은 이런 사람들을 볼 때 예수님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나요?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할렐루야! 어떤 장애이든, 어떤 고통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생긴 일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5절에 보면 예수님 자신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비록 인간들이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고 오직 예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그냥 저절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세주가 우리 마음에 빛을 춰 주시는 순간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빛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사람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평생 소경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를 고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 거지로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만나자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그의 눈에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경에게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실로암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보냄을 받았다입니다. 어쩌면 소경에게 딱 맞는 말인지 모릅니다. 소경도 예수님으로부터 연못으로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그 연못은 그 소경을 위해 이미 지어진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의 고통의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종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실로암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정상인 사람도 연못에 잘못가면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님이 그 연못으로 간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말씀에 따르려면 그만한 순종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렇치 않으면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차라리 그 사람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나는 차라리 소경으로 더 오래 살겠습니다. 그러기에 물 속에 빠져 죽는 위험한 짖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 소경은 뭐라고 했나요? 예수님의 말씀에 한 마디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소경이 그 사람 뿐이었을까요?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디메오라는 장님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도 예수님께 믿음으로 응답할 때 눈을 뜨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의 영광의 빛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저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성도 여러분!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나요? 우리가 오늘 9장을 다 읽지 않았지만 끝까지 읽어 보면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나타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거부하도록 하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이 자기의 눈을 열어 주셨다고 증거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죄인은 절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소경되었던 사람은 이렇게 그들에게 증언합니다. 그 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소경이었던 내가 지금 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이 사람이 말하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절대 죄인일 수가 없으며 그 분이 바로 자기를 구원해 준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 소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나요? 그가 소경이 되었었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통해 눈을 뜨게 되었으며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간증하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구자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불구자들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나요?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받은 사람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며 살고 있나요? 그러나 그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나요?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받은 사람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희망의 눈을 통해서(Through the Eyes of Hope)입니다. 이 책은 두 눈이 없이 태어난 아이의 부모에 대한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크리스천 부케넌인데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두 눈이 없는 장애아로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의 증상은 아주 희귀한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겨우 50명 정도만 앓는 질병입니다.

이 부부는 아이를 가졌을 때 초음파 진단을 통해 정상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아이가 아주 심각한 장애를 가졌다는 나쁜 소식 들었습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부는 하나님 아이를 사랑하라고 자신들에게 주셨다는 것을 믿었습니. 그 부부는 이렇게 간증을 합니다. 예수님은 눈은 있지만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셨고, 보지는 못하지만 믿는 사람들을 축복하셨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을 말씀하셨고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눈이 없이 태어난 크리스천 부캐넌의 부모들은 진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아이는 눈이 없었고 구개열과 언청이를 가진 상태로 태어났습니. 그러나 그 아이를 통해서 부모는 영적인 눈이 떠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런 아이를 맞아들여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고 해도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주변에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친구들 선의로 하는 이야기지만 정형화된 코멘트와 낯선 사람들의 눈초리, 심지어 SNS에서 부모들이 올린 글에서는 이런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를 낳는 것보다 이는 것이 낫다라는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거친 말로 인해 부캐넌의 부모가 받은 스트레스는 엄청났다고 합니다. 어떤 여인은 소셜 미디어에 이렇게 썼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이를 갖기 위해 그를 살려 두는 것은 이기적이다. 당신은 비참한 인생을 살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부케넌의 엄마인 레이시는이것은 세상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라고 하며 이겨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아이가 장성했을 때 그에게 이렇게 말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기에 포기할 없었. 지금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여 포기할 . 너는 하나님이 아들로 선택한 멋진 사람이야. 나는 네가 고마울 따름이야라고 말할 이라고 말했습니.

이 어린 아이는 두 눈이 없이 태어났지만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의 고통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부모의 눈을 열어서 예수님을 잘 믿도록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부모로 하여금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을 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 말씀을 잘못 이해애서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소경이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고통의 문제를 다 통틀어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문제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의 영광의 빛을 받아서 우리의 삶에서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지금 고통스러워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요? 그 고통이 고통으로만 끝나면 안됩니다. 반드시 그것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 바뀌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레나 마리아라는 자매가 있는데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고 다리 한쪽만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몸에서 움직일 있는 유일한 오른 발을 사용해서 그녀는 십자수, 요리, 피아노, 운전, 성가대 지휘 못하는 것이 습니. 그녀는3 부터 시작한 수영은 스웨덴 장애인 수영 대표로 나가 세계 장애자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을 정도입니. 어렸을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으며 스톡홀름 음악대학 현대음악과를 졸업했습니. 후부터 본격적으로 가스펠 싱어로서 활동하기 시작 습니. 그는 지금도 세계를 다니며 예수님에 대해 간증하며 찬양을 하는 멋진 사람으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쪽 발가락으로 키보드를 얼마나 잘 치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혼자서 밥도 만들고 티도 끓여 먹으며 살아갑니다.

그녀는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증을 하고 다닙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만이 구원의 반석이시며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영광의 빛이 그에게 비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주님의 인도함에 순종하며 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핸디캡인가요? 어떤 것이 여러분의 불구인가요? 육신적인 불구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일이 바로 불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핸디캡인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 그냥 놔두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내가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내어 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힘들어 하는 그 부분을 딛고 일어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