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2.5 예수님의 겸손을 닮자 막1:9-11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겸손의 문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신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교만의 문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옵니다. , 이 시간 우리 자신이 겸손한 사람인지 아니면 교만한 사람인지 테스트를 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하는 이 말에 과연 나는 어떤 것에 속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첫째, 나는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산다.  
두번째,
나는 교만하다고 생각한다. 
세번째,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네번째,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어떤 쪽의 사람인가요?

첫번째로, 나는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두번째로, 나는 교만하다고 생각하 사는 사람은 대단히 겸손한 사람입니다.
세번째로,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최고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 사는 사람은 구제불능의 교만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모두 다 나는 늘 교만하다고 생각하며 살므로 대단히 겸손한 사람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말로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프랑스에가면 유명한 대학 중에 쏠비라는 대학이 있습니다. 그 대학교에서 가르치던 라비스라는 박사님이 있었는데 분이 50년 동안 교수로 활약하신 것에 대해 축하하기 위해서 학교 측에서 기념식 어주었다고 합니다. 기념식많은 사람들 참석하여 성대하게 치뤄졌습니다. 그날 자기를 위해 이런 행사를 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답사를 하기 위해 라비스 박사님이 강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 가서 어떤 분들이 와서 자기를 축하해 주는지 보려고 청중들을 쭉 둘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아 있는 자리에 프랑스의 대통령인 카레 대통령이 학생들과 함께 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라비스 박사는 그것을 보고 너무 황송하여 단상 밑으로 뛰어 내려 가서 그 대통령을 단상 위로 셔 오려고 했습니다. 런데 그 대통령은 끝까지 거절하며 단상에 올라가기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대통령이 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영광스런 기념식 자리에 온 것은 대통령 자격으로 것이 닙니다. 나는 교수님께 배운 제자의 한 사람으로 축하드리러 제자의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때 단상으로 올라간 라비스 박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겸손하신 대통령을 모시고 있기에 우리 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부강한 나라가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진짜 대단하지 않나요? 이런 겸손한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할것 없이 특별한 대우를 받기 원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직책이나 직분을 가지면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가 높임을 받고 대단한 존재같이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며 살 수 있는 겸손을 가졌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받는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는 자들은 모두 이런 겸손한 마음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겸손을 다 닮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을 보면,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의 죽으심이라”(2:5-7).

이게 바로 예수님의 겸손입니다. 하늘의 보좌에서 계셔야 할 왕이 인간들이 입고 있는 육신 즉 죄인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이 죽어야 할 그 자리에서 대신 죽으시므로 죄인들이 구원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도 주님 같이 겸손한 사람들이 다 됩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한 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고 지나갑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이 뭐 그리 큰 일이냐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으셔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진해서 갈릴리 지역에서 요단강까지 가십니다. 그리고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기 위해 나가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예수님이 요한에게 나아오시고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다른 공관복음서를 보면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어떻게 반응을 보였는지 설명해 줍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오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예수님께 나가서 세례를 받아도 부족할 터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나 한테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느냐고 적극적으로 반대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3:15).

이 말씀을 들은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왕좌를 놔두시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 땅에 오실 때는 자신이 가진 모든 권세와 영광과 명예를 다 내려 놓고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면 절대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자기 자신을 모든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대속죄물로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계시던 하나님의 주권과 왕권과 능력과 명예를 다 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야 죄인들을 위해 죽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죄인들을 위해 죽으실 수 있도록 아주 낮은 모습으로 오신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고 자신이 죽는데까지 순종할 때 그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기에 요한 앞에서 무뤂을 꿇고 세례를 받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겸손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야만 했을까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쳤던 메시지를 들어보면 요한이 세례를 준 목적이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왜 세례를 받으셔야 하셨는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3:11). 여기서 세례 요한은 자기가 세례를 주는 목적이 인간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셔야 했을까요? 요한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증거를 합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 이가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였노라”(1:34).

왜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셔야 했다고 하나요? 우리가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이기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회개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받으신 것입니다. 세례란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팡파레와 같은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분이라는 말은 그 분이 구원자라는 말씀입니다. 죄인들이 구원 받으려면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목적입니다. 이 분이 바로 온 인류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야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시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 앞에 무뤂 꿇고 세례를 받으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무뤂 끓는 것은 별로 꺼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낮은 사람 앞에서 머리를 숙이거나 무뤂을 꿇는 것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보다 높은 사람이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 굽실거립니다. 아부도 합니다. 그러나 절대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는 머리를 숙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보다 낮은 사람에게는 굴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들의 심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예수님보다 더 높은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 분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기의 뜻대로 주장하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는 왕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도 예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만든 사람 앞에 엎드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도저히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낮아지시고 행동으로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나요? 그 만큼 예수님은 인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당하고 있는 죄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아멘. 어떤 모습을 닮아야 할까요? 예수님의 겸손을 닮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위 아래를 따집니다. 저 사람과 상대할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를 따집니다. 그리고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냐 아니냐를 따집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따집니다. 그래서 나에게 유익이 되면 사귀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겸손해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해 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은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예수님 같이 낮아질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존심이 강하면 낮아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기회도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저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이 저 사람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인지 알고 싶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저 사람이 소경된 것은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신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으시고 진흙을 만들어 그 눈에 발라 주시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소경은 말씀대로 실로암에 가서 씻고 눈이 회복되어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보니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눈을 온전히 뜨고 동네를 걸어다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깜짝 놀라서 당신이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사람인가요?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기가 그 사람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그 사람들은 눈뜬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로 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눈 뜬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그 사람이 대답하길, 예수라는 사람이 내 눈에 진흙을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그렇게 하였더니 내눈이 떠졌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 중에 서로 논쟁이 붙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에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고 배척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어떻게 죄인으로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논쟁을 합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사람을 다시 부릅니다. 그리고 또 묻는 것입니다. “네가 어떻게 눈이 떠지게 되었느냐?” 예수라는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했는데 너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이때 그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그는 선지자이니이다 라고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은 그에게 이렇게 강요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영광 돌려라.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죄인인 줄 아노라. 이때 소경되었다가 눈을 뜬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를 믿지 못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직접 경험한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만약 그들이 그 말을 들고 믿었다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일까요?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교만했기에 소경이 되었다가 눈을 뜬 사람의 신앙간증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소경되었던 사람을 무시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증거한 간증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에게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는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부모를 불러다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소경되었던 사람을 불러다 또 물어 봅니다. 이때 소경 되었던 사람이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참 이상한 일이네요. 어떻게 죄인이 나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태어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절대 눈을 뜨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소경되었던 사람이 이렇게 바리새인들에게 증거를 하자 바리새인들이 듣기 싫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태어나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라고 하면서 그를 좇아내 버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낮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옵니다. 하나님 말씀이 믿어집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붙잡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바리새인들은 교만했습니다. 자기들이 최고라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장님이었다가 눈뜬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기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소경되었다가 눈을 뜬 사람의 말 같은 것은 들을 가치도 없다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들을 수 없는 귀와 마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교만하면 귀가 막히고 마음이 닫힙니다. 반면 겸손하면 귀도 열리고 마음도 열립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내 마음은 교만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지금 나는 만왕의 왕이시면서도 자기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얼마나 닮고자 노력하며 살고 있는지? 지금 나는 주님을 얼마나 겸손하게 섬기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깁시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도들을 서로 기며 삽시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겸손하게 섬기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