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3.5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막5장22-24,35-43

오늘 본문에는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는 어려운 일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12살 먹은 딸이 있었는데 지금 막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병으로 인해 죽어가는지는 성경이 말하지 않기에 모릅니다. 그러나 아주 중병이기에 촉각을 다투는 병이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의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기의 딸을 살려 달라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요청대로 집으로 가셔서 딸을 살려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어려움을 만나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 주님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요청하기 보다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쪽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고 문제도 시원하게 해결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으신 우리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가 어떤 것이든지 선하게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회당장이 어떤 문제를 만났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 받는지 를 보면서 우리도 배우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일, 그리고 순간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며 살아갑니다. 믿는 자들이라고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이 세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려운 일들을 만나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날 때 해결하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주님께 요청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청할 때 어떠한 자세로 요청해야 할까요?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요청해야합니다. 믿는 자들이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자기의 능력으로 해결 하려고 하지말고 예수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회당장인 야이로를 보세요. 그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가 만난 문제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12살 먹은 딸이 죽어갑니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이인가요? 그런데 그 딸이 자기 눈 앞에서 죽어갑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까요? 아마 심장이 찢어지는것 같을 것입니다. 이쯤되면 누가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를까요? 다양한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장 야이로의 머리에는 제일 먼저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맞아. 내가 그 분께 요청한다면 분명 내 딸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거야!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자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이 어려움을 만날 때 예수님께 요청하려면 겸손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회당장 야이로를 보세요.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회당장 하면 회당의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는 우두머리입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집회를 인도하고 회당의 건물을 책임지고 유지하고 운영하는 총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모든 질서를 유지할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율법의 낭독이나 설교를 할 수 있도록 사람을 지명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그 당시 이스라엘의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우를 받고 있었나요? 그들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로서 이름도 없는 선생쯤으로 취급했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며 무시했습니다. 물론 회당장도 역시 개인의 차원을 떠나 회당장이라는 직위를 가진 자로서는 예수님을 환영하며 반길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야이로가 예수님께 찾아온다는 것은 그의 동료들에게나 친구들에게 적대감과 비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이것을 볼 때 얼만큼 그가 예수님을 신뢰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야이로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공개 된다면 회당장의 자리도 빼앗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이러한 위험을 안고 예수님을 만나러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믿었으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낮췄기 때문입니다. 야이로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예수님을 만나고자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문제를 주님께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딸의 죽음의 문제도 해결 받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얼만큼 예수님께 결사적으로 요청하나요? 야이로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음속에 겸손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겉으로 보면 아주 강하게 보입니다. 겉으로는 용기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 깊은 곳에는 용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교만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의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자기 자신을 존귀한 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이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 말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해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아람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는 용감한 장군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나아만입니다(왕하5). 나아만 장군은 권세도 있었으며 물질과 명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문둥병자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문둥병을 고치려고 의원도 만나보고 병원도 찾아가 보았지만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늘 그 병으로 인해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과 전쟁했을 때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잡아와서 종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으로 근심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인님이 우리  나라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기만 한다면 그 병을 고칠 수 있을 텐데....”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당장 가서 왕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왕은 빨리 가서 엘리사를 만나 병을 고치고 오라고 선물을 주며 이스라엘로 보냅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기대와 소망을 품고 이스라엘로 갑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엘리사를 만나러 갈 때 겸손한 마음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으시대며 갔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있었으며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를 만나러 오는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내린 처방 법이 무엇이었나요? 엘리사는 나가서 그를 만나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종에게 이렇게 시켰습니다. 요단강 물에 가서 일곱 번 물에 담그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엘리사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기분이 상했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기에게 나와서 환영해 주며 특별한 방법으로 치료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이렇게 하니 기분이 나빴습니다. 자기 같이 위대한 수리아 장군이 오면 예의를 갖추어서 환영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아만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교만이 머리를 쳐들었습니다. 나아만은 교만한 마음으로 이렇게 화를 내며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요단강에 목욕하러 온 줄 아느냐? 이런 곳에서 목욕을 할 바에야 차라리 우리 나라에 있는 더 아름답고 훌륭한 강에서 목욕을 하지 내가 미쳤다고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느냐? 한마디로 나아만은 자존심을 내세웠습니다.

나아만은 자기의 권세와 존귀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교만으로 인해 마음에 분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를 내며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때 그와 함께 왔던 종들이 나아만에게 이렇게 충고를 합니다. ‘장군이여, 저 선지자님이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치료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정도도 못하나요? 장군님, 자존심을 내려놓고 시키는 대로 해 보세요.’ 그때 나아만은 종들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요단강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물에 일곱 번을 담그고 나오자 그의 문둥병은 깨끗하게 치료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문제를 만날 때 예수님을 필사적으로 만나고자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야이로는 자신이 회당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만나러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겸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능력으로 딸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가요? 살아가면서 문제를 만날 때 이런 마음으로 주님께 요청하고 있나요? 저는 여러분들이 문제를 만날 때마다 회당장 야이로와 같이 겸손한 마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요청한 모든 일들이다 해결 받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잃지 말라는 말은 믿음이 약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어가자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예수님께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는 예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정중히 자기의 딸을 고쳐 달라고 도움을 구하자 예수님은 그의 요청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함께 가십니다. 예수님이 집에 가시기만 하면 자기 딸이 병으로부터 완전히 치료 받고 건강을 회복하리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시각을 다투는 일입니다. 그의 마음은 조급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방해를 합니다. 그 여인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살짝 만졌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혈루병이 그 즉시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마음은 조급합니다. 빨리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가셨으면 좋으련만 그 와중에 예수님은 그 여인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까지 칭찬해 주십니다. 이때 회당장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불안합니다. 초조합니다.

저는 회당장의 심정이 어떠한지 조금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탈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자다가 갑자기 한 밤중에 아파서 소스라치게 웁니다. 그러면 우리 부부는 한밤중에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아이는 울고 있는데 의사는 오지 않습니다. 이때 마음은 너무 초조했습니다. 마치 1초가  1시간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혈루증 여인을 치료하시고 대화하시는 동안 자기의 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집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이미 당신의 딸은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집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이제 장례식  준비나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났으니 예수님이 와도 당신의 딸은 살릴 수 없으니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회당장도 자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가시기만 하면 딸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딸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믿음이 흔들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위의 환경이 그의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몰아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빈정됩니다. 

이때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갈등을 하고 있는 야이로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한다할지라도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이 말씀의 의미는 “야이로야! 네가 나를 만나러 올 때 너는 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지라도 네가 가지고 있었던 그 믿음을 계속 지키고 있거라!”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우리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강한 믿음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만나면 그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인 야이로도 충격의 말을 듣자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믿음이 흔들리지 말고 처음 가졌던 믿음을 굳게 붙잡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그 말씀을 듣고 야이로는 처음 믿음을 다시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만을 믿고 살지만 때로는 환경이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환경이 어지럽혀지고 어려운 일들이 발생합니다. 이럴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럴 때 예수님이 야이로에게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힘 입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믿음을 끝까지 지키므로 예수님께 요청한 문제들을 다 해결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문제를 해결 받기위해서, 반대를 극복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때로 고독한 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을 믿으며 그 분만을 의지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야이로도 믿음을 가지고 주님만을 의지하려고 할 때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했습니다. 야이로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친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의지하며 그 분께 우리의 문제를 의탁하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빈정됩니다. 꼭 그렇게 믿어야 하느냐고 말합니다. 어떤 때는 가장 가까운 집안 식구의 반대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부부간에 반대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가장 가까운 친구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이런 반대에 부딪히다 보면 믿음이 약해져 주저앉게 됩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믿는 자들이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할 때 오는 반대를 반드시 믿음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때로는 거세게 옵니다. 적당히 신앙 생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밀고 나갈 때 죽은 딸을 살리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야이로가 반대에 져서 포기했다면 야이로의 딸은 살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딸을 위해 슬프게 대신 울어주는 훤화꾼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딸이 죽어서 얼마나 슬프냐는 위로의 말만 귀가 아프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그 모든 반대의 목소리를 이겼습니다. 그리고 죽었던 자기 딸도 능히 살릴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을 믿으므로 딸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문제가 여러분들의 앞에 놓여 있나요? 아직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가요? 삶에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 있나요? 다른 사람들과의 풀리지 않는 말 못할 고민을 가지고 있나요? 예수님께 가지고 가시길 바랍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신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믿음으로 문제를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모든 무거운 인생의 문제를 다 주님께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여러분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므로 기쁨이 넘치는 삶이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