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4.9 주님께 쓰임 받는자가 되자 막11:1-10

몇년 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판문점을 통해 처음으로 이북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검은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판문점을 지나 이북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 퍼레이드는 텔레비전을 통해 온종일 중계가 되었습니다. 노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탄 자동차의 행렬이 이북을 향해 들어가자 이북에 사는 수많은 동포들이 나와 길 좌우편에 서서 대통령을 환영한다고 손을 열심히 흔들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여기저기 거리마다 다양한 현수막을 걸어놓고 환영한다는 표시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온 우주의 왕이십니다. 지구와 달 그리고 천지의 모든 우주 만물을 만드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렇게 위대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화려한 마차를 타시고 들어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마차는 고사하고 말이라도 타시고 들어가셨어야 하는데 그는 가장 초라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가 종려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이 3년 동안의 공생애를 다 마치시고 최종적으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온 인류를 구원하러 가시는 것이기에 이날을 우리는 승리의 입성이라고도 부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만왕의 왕시면서도 가장 초라한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쓰임 받았던 나귀와 그 주인 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사는 축복된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그렇다면 믿는 자들이 어떻게 할 때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주님께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주님께 쓰임 받고 싶다고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쓰시려고 불러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사용해 주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며 실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특별해서 쓰임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불러주셔야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 쓰임 받았던 나귀를 한번 보세요. 예수님은 벳바게라는 동네에 있었던 나귀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는 그 나귀 한마리 밖에 없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 나귀만을 끌고 오라고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나귀를 많이 사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나귀를 사용해서 짐을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집집마다 나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나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지적해 주신 그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 둘을 건너 마을로 보내십니다. 어느 곳에 가면 거기에 한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나귀를 끌고 오너라. 그런데 나귀 주인이 왜 그 나귀를 푸느냐고 물으면 주가 스시겠다하라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정확하게 어떤 집에 어떤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수많은 나귀들 중에 바로 그 나귀가 예수님께 쓰임 받기 위해 뽑힌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된 축복인가요? 그 나귀는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데 쓰임 받도록 선택받은 나귀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 나귀는 예수님께서 부르시기 전까지는 말뚝에 매여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를 불러 주시지 않았다면 평생 그 말뚝에 매여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일생동안 무거운 짐만 지다 죽었을 것입니다. 채찍을 맞아가며 살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귀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그 나귀는 예수님이 자기를 불러주신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도 모른채 끌려 온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태우고 인류를 구원하는 길에 동참하는 임무를 담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의 구원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보잘것 없는 나귀를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보잘것 없는 저와 여러분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불러 주시지 않으면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한번 성경을 자세히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자들을 어떻게 부르셔서 사용하시는지...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해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너무 어려서 하나님의 음성인 줄도 모를 정도로 작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부르셔서 사용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호렙산 떨기나무 아래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은 말이 어눌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변명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두려워하던 겁쟁이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키는 지도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포자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며 하나님을 거역하던 바울을 다메색 도상에서 부르셔서 이방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내가 이정도로 쓰임 받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하며 부름 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부름 받을 때는 자신들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며 부름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멋진 도구들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예례미야가 하나님께 부름 받았을 때 그는 뭐라고 하나님께 고백을 했나요? “슬프도소이다. 주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도 알지 못하나이다”(1:6).

예례미야가 부름을 받을 때 얼마나 자신이 초라하게 보였던지 자기를 어린아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가 하나님게 부름을 받을 때 입술이 부정한자라고 고백을 합니다(6:5). 그러기에 자신은 하나님께 도저히 쓰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라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사용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쓰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이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하나님의 종들을 불러서 사용하신 것 같이 오늘도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동참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주의 나라를 위해 일할 일군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다양한 일꾼들을 부르십니다. 교회에서 장로나 권사나 집사로 부르십니다. 주일학교 교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 충성하도록 부르십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며 영광을 돌리기 위한 하나님의 부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능력이 있기에 이런 일에 쓰임 받는 것이라고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귀한 직분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그일에 불러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겸손히 그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을 다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잘것 없던 나귀를 부르셔서 사용하실 때 나귀도 예수님의 귀한 영광을 나누어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믿는 우리도 주님이 전적으로 나를 불러 주셨기에 주님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어떤 직분을 위해 교회안에서 부름을 받았는지 그 직분에 대해 감사하며 열심히 충성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믿는 자들이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을까요?

순종할 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순종하지 못하면 주님은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재능이 많은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그렇다고 그들이 다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나요? 아닙니다. 오직 부름을 받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쓰임 받게 됩니다.

저는 가끔 세상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대단한 재능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저 재능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섬긴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재능을 단지 자기가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귀와 그 주인도 순종할 때 주님께 쓰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건너 마을로 제자 둘을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지역에 가면 나귀가 매여 있을 터이니 그 나귀를 끌고 오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주인이 묻거든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제자들이 그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진짜 주인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아무 반대도 없이 순순히 순종해서 나귀를 보내 준것입니다.

그 당시에 나귀가 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나귀는 주인에게 아주 소중한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주인의 재산목록 1호였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나귀를 내어 주었다가 죽기라도 하거나 되돌려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가 쓰시겠다는 말에 선뜻 그 나귀의 주인은 순종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주가란 무슨 뜻인가요? 영어로는 “Lord”라는 말인데 이 말은 “권위 있는 사람에 대한 칭호”입니다. 예를 든다면 노예가 자기 주인을 부를 때 이렇게 부릅니다. 성경에서는 이 주라는 말을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합니다.

나귀 주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나귀도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그는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주인이 쓰시겠다는 말에 선뜻 내어 놓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귀 주인의 멋진 믿음과 순종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가 누구인지는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순종했던 모습은 성경에 확실하게 기록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다양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그러나 아무리 재능이 많다 해도 겸손하게 순종할 때 그 재능이 쓰임 받게 됩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으면 무엇하나요?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하나님을 위해 내어 놓을 때 진짜 가치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재능이 땅에 파뭍혀 쓸모 없게 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는 순종을 하려고 할 때 자신에게 손해가 오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만약 나귀 주인 같이 순종하므로 자기의 나귀를 내어 놓는다면 그 나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도 생길 것입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올 것 같아 두렵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생각을 이기고 순종할 때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때로 믿는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을 하려고 하면 무거운 십자가를 지는것 같은 두려움도 옵니다. 때로는 물질적인 희생도 감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일에 순종하려고 할 때 육체적인 고통과 피곤함이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고난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것을 뛰어넘고 기쁨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헌신과 순종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성도 여러분! 믿는자들이 순종하기 위해서는 이사야 선지자처럼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순종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누구를 내며 누가 우리하여 갈꼬?" 말씀하시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름에, "내가 여기 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즉각적인 순종으로 응답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실 때 즉각적인 순종의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데 왜 그런지 안세요? 기회가 주어질 때 즉각적인 순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핑게를 됩니다. 그러기에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즉각적인 순종을 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소설을 쓰는 여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글을 쓰고 자기의 인기를 유지하는 일에만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랄라리 같이 하며 이름만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면을 해도 바빠서 그러니 나중에 시간 나면 하겠다고 이리저리 핑개를 되며 피해 다녔습니다. 그가 쓴 소설은 꽤 인기가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 수입으로 부동산에 투자해서 자기의 재산을 증식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갔더니 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것입니다. 자기에게 남은 삶이 3개월 밖에 되지 않는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자 그동안 살아왔던 지난 날이 헛되게 느껴지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아도, 애써 장만해 놓았던 가구들을 보아도, 심혈을 기울여 써온 원고 뭉치를 쳐다보아도 그저 눈물만 솟구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교회로 달려가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마음속에 있는 기도를 올리며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남은 3개월 동안 무엇을 해야 삶이 저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 되겠습니까? 이 한 가지만큼은 꼭 가르쳐 주세요” 애타게 기도하는 가운데 “사랑하라!”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즉시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동안 자기로 인해서 섭섭한 마음을 가졌을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그들에게 눈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또 자신의 전 재산의 상당 부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나머지는 가족들을 위한 유산으로 분배했고 유언장도 완성했습니다. 이제는 틈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또 하나님께 깊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고 생명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가서 진단을 다시 받아 본것입니다. 그랬더니 간암이라는 것은 순전히 오진이었고 휴식을 충분히 취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목사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집사님 얼마나 억울하십니까?”라고 했더니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목사님! 저는 제 생애에 있어서 가장 값진 3개월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시한부 인생의 심정으로 살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다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신 그 나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살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쓰시고자 할 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자기가 원하는대로 사는 사람인가요?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즉각적인 순종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면 죽으실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귀 보다 더 쓸모 없는 죄인이었지만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세상 풍조를 따르며 공중 권세 잡은 마귀를 쫓아 살았던 구제불능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육체의 욕심과 정욕을 위해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아니였다면 보잘것 없는 죄인의 존재로 그냥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보잘것 없던 나귀도 예수님이 불러 주실 때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하물며 위대한 인간으로 창조된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다면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번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고자 결단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사용하시고자 하실 때 아멘으로 응답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