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4.30 은혜 받고 순종하는 자가 되자 막1:40-45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문둥병자들이 모여 사는 움막이 더러 있었습니다.
When I was a little boy, there was an isolated place that some lepers lived together.

가끔 그들은 길로 나와서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Sometimes they came out on the road to find some food to eat.

그런데 문둥병이 무엇인가요? 그 병은 피부병의 일종입니다.
What is leprosy? That is a kind of skin disease. 

그런데 나병은 악성 피부병이 포함되어 있는 병입니다.
But the leprosy contains a malignant skin disease.  

이병은 이유없이 감각이 없어지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At the beginning, the leprosy can’t sense anything; therefore the person who has this disease can’t feel any pain.

처음에는 피부에 핑크의 점들이 생기기 시작하여 점점 갈색으로 변해갑니다.
At first, pink dots appear on the skin, and then they turn brown gradually.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몸 전체로 퍼지면서 외모가 찌그러지며 망가집니다. 나중에는 얼굴을 알아 보지 못할 정도로 떨어져 나가고 뒤틀리는 병입니다.
This symptom spreads throughout the whole body, and then later, the appearance of the person is distorted and broken. Therefore, the face can’t be recognized.

이 병은 전염성이 있기에 구약 시대에는 나병 환자라고 판단이 되면 그는 가족으로부터 떠나야 했습니다.
In the Old Testament time, this disease was contagious, so once it turned out that someone was a leprosy patient, and he should leave the family at once.

그리고 이들은 일단 문둥 병자라는 판정이 나면 사람같이 대우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사람들은 세균에 전염이 될까봐 두려워서 그들 곁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And once, when a priest judged them as a leper, they would not be treated as a human being. And people didn’t want to go near them because they were afraid to be affected from germs.

그러기에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이 누구든지 피부에 문제가 생기면 그를 아주 정밀히 조사를 합니다. 그래서 문둥병이라고 판정이 나면 그 사람을 동네 밖으로 내 보냈습니다.
Therefore, in the Old Testament period, a priest would carefully observe anyone who had a skin disease. And they sent them out of village when it proved to be leprosy.

제가 살던 동네에도 이런 문둥병자들이 모여 사는 움막이 있었습니다.
There was a hut where some lepers lived in the neighborhood where I lived.

우리 동네는 아니고 학교와 동네 사이에 있는 어느 장소에 그들이 모여 살았던 것입니다.
Actually, it was not in our village, but somewhere between the school and the neighborhood.

그때 저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At that time, I was only in the first grade of elementary school. 

학교가 멀기에 동네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Our school was far away from the village, so we went to school together with other children.

그런데 어느날 문둥병자 두명이 길을 걸어오는 것입니다.
However, one day two lepers were walking toward us on the road.

그때 한 학생이 문둥병자라고 그들을 놀린 것입니다.
At that time, one of students among us made fun of them by calling them leper.

그러자 그들은 화가나서 우리를 죽이겠다고 좇아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른이고 우리는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죽어라 도망을 쳤습니다.
Then they were angry and were chasing us to catch us. But they were adults and we were children. We had to run as fast as possible with all our strength not to be caught by them.

그 당시 이런 소문이 있었습니다.
At that time, there was a rumor.

문둥병자가 아이들의 간을 꺼내 먹으면 문둥병이 낫는다는 소문입니다.
The rumor was that if the leper ate the liver of children, their diseases would be healed.

그러니 그들에게 잡히면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So, could you imagine how afraid we were! If we were caught by them, we would die.

저도 어린 나이에 죽어라 뛰었습니다.
I was a little boy, but I ran and ran away with all my strength.

어떻게 도망을 쳤는지 그리고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I could not remember how I ran away from them and arrived at home.

그러나 잡히지 않고 집에까지 왔습니다.
But I was at home without being caught.

저는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서 3일 동안 끙끙앓고 일어났습니다.
I collapsed as soon as I got home. And I lost my mind for three days while in bed.

그러기에 저는 문둥병자하면 늘 이 생각이 떠오릅니다. 문둥병자에 대한 좋은 기억은 아닙니다.
Therefore, when I think of the leper, I always recall this incident. It is not a good memory of the leper.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문둥병자가 나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 나병환자가 찾아왔습니다.
There was a leper in today’s passage. The leper came to meet Jesus.

사실 나병환자는 정상적인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Actually the lepers should not come near Jesus because there was law that prohibited doing that.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찾아온 것입니다.
Nevertheless, he came to Jesus with courage.

그리고 그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And he begged to Jesus on his knees.

그리고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하며 자기를 깨끗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And the leper said, “If you are willing, you can make me clean.” He requested Jesus to heal him.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그 사람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We can see the man's faith in his word and action.

그는 그냥 예수님께 자기를 고쳐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He didn’t just ask Jesus to heal him.

먼저 그는 예수님의 의도를 물었습니다.
First, he asked the intention of Jesus.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그는 이미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By his saying it this way, we can assume that he already knew the power of Jesus Christ.

예수님이 자기를 고쳐 주시고자 원하시면 그 일이 당장 이루어질 것이라는 아주 훌륭한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He had a wonderful faith. He believed that if Jesus Christ wanted him to be healed, it would be done right away.

그가 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의 믿음대로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When Jesus heard what he had said, Jesus had pity on him.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We should learn a very important lesson from what Jesus said here.

그것이 무엇인가요?
What is it?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와 주기 위해서, 꼭 가져야 할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In order for us to help others, we should have compassionated heart towards others.
 

어떤 일을 하든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Whatever you do, you must start from your compassion and then you will get good results.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라는 단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말인데 예수님이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The word “compassion or pity” here is from the Greek word “splagchnizomai.” This word is used when Jesus expressed when he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umans who were under bad circumstances.

우리도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We should resemble the heart of Jesus who has pity.

예수님은 우리가 그런 마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He wants us to be like him.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해 누가복음 10장에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Therefore, Jesus told us the story of “the Good Samaritan” in Luke chapter 10.

어느날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갑니다.
One day, a certain man was going down from Jerusalem to Jericho.

그가 가는 도중에 강도를 만난 것입니다.
On his way to Jericho, he fell into the hands of robbers.

그래서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와 옷을 빼앗겼습니다.
So they stripped him of his clothes and took all that he had.

그리고 강도들은 그를 때려서 거의 죽은 상태로 놓고 가버렸습니다.
And the robbers beat him up and left him a half dead and ran away.

그래서 그는 길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Therefore, he was dying on the road.

그때 마침 한 제사장이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At that time, one priest passed by the dying man.

그러나 그는 그를 보고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However, he saw the dying man, but he passed by on the other side.

그 다음에 한 레위인이 지나갔습니다.
The next person was a Levite, and he was passing by the man.

그도 그 사람을 보고 그냥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And he also saw him, but he passed by on the other side.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Next, a Samaritan passed by the dying man.

그런데 그는 강도 만난자를 보자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But when he saw the man, the Samaritan took pity on him who was robbed.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로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Therefore, he went to the man and poured oil and wine on his wounded body to cure him.

그리고 그를 자기의 나귀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살려 주었습니다.
And he took him on his donkey to an inn. And he looked after him.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단어가 바로 불쌍히 여겼다는 말입니다.
Here is the word that Jesus used: “Pity.”

사마리아 사람이 그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도와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The Good Samaritan had pity on the robbed man, so he could help him.

예수님은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Jesus Christ wants us to have this kind of heart so that we are able to help others.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인심이 각박해집니다.
People, who live in this world, are changing to have a lesser and lesser pitiful heart.

이제 내가 가진 것이 없으면 죽어야 하는 세상이 되어갑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We can’t survive in this world without having our own materials. We don’t even know who lives next to us.

그 정도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We are living in a world that does not care about others.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But we must have a pitiful heart for others.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을 보면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When we see the people who do not believe in Jesus Christ, we should take pity on them.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We should have a desire to share the Gospel with them.

내 가족이, 내 친구가,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영적인 문제입니다.
If you don't feel any pity on anyone who doesn't believe Jesus among one of your family, your friends, or your neighbors, it is a big spiritual problem for you.

우리의 영적인 신경에 병이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It is the evidence that your spiritual nerves are sick.
 
성도 여러분! 문둥병은 육신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므로 그 사람의 육신을 죽입니다. 
Leprosy is a disease that slowly kills the body because it makes the physical sense dull.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무디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영적으로 감각이 없어집니다. 
Therefore, when our spiritual senses become dull, then do you think what happens?
They become spiritually numb.
 
그러면 우리는 육신적인 일만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Then we will live in only focusing on physical things.
그러기에 우리는 늘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So we must always be awake both physically and spiritually.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So we must obey God's Word in our lives.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그 나병 환자를 보시자 그를 불쌍하게 여기셨습니다.
When Jesus saw the leper, Jesus took pity on him.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나병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살지도 못합니다.
Because they were born as humans, but they could not live with their family because of leprosy.

또한 그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존귀한 사람입니다.
Also God made them honorable human beings.

그 권리를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They should have rights to live as what God created, but they couldn't.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사 그의 삶이 행복해 지도록 하려고 그를 고쳐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Therefore, Jesus took pity on him and he healed him from the leprosy to be happy with his life.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믿음대로 고쳐 주시기 위해,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So Jesus performed healing on him according to his faith, Jesus said, “I am willing, be clean.”

그러자 즉시로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났습니다. 할렐루야!
Then the leprosy left the man at once.

우리는 나병이 나았다고 말을 합니다.
We say the leprosy was healed.

그런데 마가는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났다고 표현을 합니다.
But Mark expressed the leprosy left from him.

이것은 예수님이 명령하시자 병이 떠나서 그를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한다는 것으로 본것입니다.
The leprosy departed from him when Jesus issued the command. Therefore the leprosy was no longer bothering him anymore.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명령하시면 병이 떠납니다.
That's right. If Jesus Issues a command, the sickness must leave.

사실 의사들이 병을 완전히 고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So in fact, it is not true that doctors treat diseases completely. 

정확하게 말해서 그 병은 그 사람에게서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닙니다.
To be precise, the disease is not completely healed.

의사들은 약물로서 그 병이 더 이상 몸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억제 시켜 놓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Doctors just try to keep the disease from further activity in the body by giving various medications. 

그러기에 현대 의학은 병이 그 환자로부터 완전히 떠나도록 하지 못합니다.
Therefore, modern medicine doesn't allow disease to be completely healed in the patient.

그러나 예수님은 의사들과 다릅니다.
But Jesus Christ is different from human doctors.

예수님은 그 병에게 명령을 내리시면 완전히 떠납니다.
When Jesus Christ commands, the disease must leave from the sick person immediately.

그러므로 그 사람이 완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So he is fully recovered. This is the power of Jesus.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Jesus healed Peter's mother-in-law’s high fever.

그리고 예수님이 귀신에게 떠나기를 명령하시자 간질병도 나았습니다.
And when he ordered the demon to leave a demon-possessed man, the epilepsy was healed.

오늘 말씀에 나온 나병 환자도 고침 받기에 불가능해 보입니다.
The leprosy that was in today’s passage seemed impossible to be healed.

어떻게 완전히 망가져서 형체도 알아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정상적으로 회복이 될 수 있을까요?
How was it possible to recover and be normal because his face and body were destroyed by the leprosy?  

그러나 예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면 그 일이 가능합니다.
It was possible when Jesus Christ took pity on him.

성도 여러분! 이게 바로 예수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This is the evidence that Jesus is not a normal person like us.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Jesus is the Son of God.

그리고 인간들의 죄의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 구원자로 오신 분이십니다.
And He came to this world as our Savior to heal our diseases of sin.

그리고 그 능력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So he showed his power through the miracles to teach us who he was.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며 그 분을 확실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Therefore, we should see Him and know Him and trust Him.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으며 살고 계신가요?
Are you receiving the grace of Jesus in your life continually?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았습니다.
All of us have received the eternal life from Jesus.

그리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And we live under the guidance of Jesus.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If so, we must obey Jesus' word.

오늘의 주인공인 나병 환자는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자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The leper from today’s passage was cleansed when Jesus took pity on him.

이때 예수님은 그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증거를 보여 주라고 했습니다.
Then Jesus asked him to go to a priest to show the evidence that he was healed completely.

이게 바로 나병에서 회복된 사람에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It was the only thing that Jesus wanted him to do after cleansing from his leprosy.

예수님은 그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Jesus didn't ask him to do difficult things.

단지 문둥병자가 정상으로 회복되면 해야할 규례였습니다.
It was the ordinance when the leper was restored normally.

그러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So he should obey what Jesus asked him to do.

그런데 그가 어떻게 했나요?
But what did he do?

그는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니면서 소문을 냈습니다.
He announced what Jesus did for him to the others, though Jesus told him not to tell anyone.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에 방해를 했습니다.
Therefore, Jesus’ ministry was disturbed.

성도 여러분! 은혜받은 사람은 은혜를 순종으로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Those, who received the grace of God, must express in obedience.

기적을 체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It is important to experience the miracle of God.

그러나 그 은혜를 예수님께 순종으로 표현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But expressing God’s grace by obeying Jesus is more important.

그 사람이 소문을 내므로 예수님이 잠간동안 사역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The man told the others about Jesus so Jesus could not minister for a while in public.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로부터 자기들을 구해 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At that time, the Israelites were waiting for the messiah who could save them from the Romans.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기적에 대한 소문이 나면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진짜 구원의 계획이 잘못된 쪽으로 가게 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But, if they heard the news that Jesus healed leprosy, they would expect him to be their king who could save them from the Romans, if then, Jesus’ real plan for salvation would go to the wrong direction.

그래서 예수님은 소문을 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Therefore, Jesus did not want let other people know about it.

이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We must realize how important obedience is through seeing what this man did.

예수님이 하라면 힘들어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지 말라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We must do what Jesus tells us to do though it is hard to obey. We must stop disobeying no matter how much we want to do it.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과 불기둥을 따라 살았던 모습같이 살아야 합니다.
We must learn from the people of Israel, when they followed the cloud and the pillar away from Egypt.

구름이 떠오르면 그들은 따라 갔습니다.
When the cloud went up, they followed.

구름이 멈추면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If the cloud stopped, they should wait there.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이고 서라하면 서야합니다. 이게 바로 순종의 삶입니다.
If God told them to go, then they went. If God told them to stop, they stopped there. This was the life of obedience.

성도 여러분!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체험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We must know that anybody can experience God’s grace.

그렇다고 내가 항상 주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Because of that, you should not think that you always live in obedience to God.

왜냐하면 오늘 치료받은 문둥병자처럼 우리도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Because we might live in the way as the man did, who was healed by Jesus.

그가 얼마나 큰 은혜의 체험을 했나요? 
How great of God’s grace did he experience?

그런데도 그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일에 방해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Yet, he didn't obey Jesus’ Word, but rather he interfered with Jesus’ ministry.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We might be the same.

은혜 받은 것을 잘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We must keep his grace in our heart.

그리고 예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And we must listen to what he tells us to do and follow his Word in our lives.

어찌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However, we must struggle to live in glory to God. This is the person who remembers the grace of God.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매일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In order to do that, we must check ourselves with the Word of God everyday.

한번 은혜 받은 것으로 계속 그렇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You should not misunderstand that you are always living in the grace of God that you received once before.

매일 내가 지금 주님의 은혜에 젖어 살고 있는지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Everyday we should look at ourselves whether we are really living in the grace of God.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And we should try to resemble Jesus’ pitiful heart.

우리가 다른 사람의 환경과 그들의 처지를 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We must take pity on the people when we see them, who are under bad circumstances.

그럴 때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Then the people will come to us.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큰 일도 이루어주십니다.
When we have compassion towards others, God will perform great things through us.

Illustration: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뉴욕 가면 일반적으로 케네디 공항에 도착합니다.
When we go to New York by airplane, we usually arrive at Kennedy Airport.

그런데 뉴욕에는 하나의 공항이 있습니다.
But in New York there is another airport.

공항은 라구아디아 공항입니다.
It is LaGuardia Airport.

본래 라구아디아라는 이름은 뉴욕 시민이 아주 사랑했던 유명한 시장의 이름입니다.
The airport is originally after the name of mayor in New York, who was loved by New York citizens.

라구아디아는 시장이 되기 전에 아주 유명한 판사였습니다.
He was a famous judge before he became a mayor of New York.

추운 겨울 어느 한번은 라구아디아 판사가 재판석상에서 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One day in cold winter, judge LaGuardia sat on his chair on his duty and he met an elderly man on trial.

노인은 추운 겨울에 가족없이 외롭게 혼자 사는 분이었습니다.
The old man hadn’t any family in the cold winter, so he lived alone.
 
그는 돈도 없고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다른 사람의 지갑에서 20불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된것입니다.
He had no money, but he was hungry. So he tried to steal $20.00 from the other person’s wallet and he was arrested, so he was on trial.

판결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판사가 노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The judge asked him that whether he wanted to say anything before the final verdict.

노인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The old man looked at the judge quietly for a while and said;

판사님, 저에게 번만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Judge, would you have pity on me at this time?”

잠시 동안 노인을 조용히 바라보던 판사는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The judge was quietly looking at the old man for a moment, and replied:

맞습니다.
“Yes, you are alright.”

노인장에게는 정말 긍휼이 필요하군요.
You really need compassion.

그러나 노인이 잘못한 20불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But you must be responsible for stealing $20.00 because that was wrong.

마침 제게 10불이 있군요.
Here I have $10.00.

제가 10불을 노인장을 대신해서 변상하겠습니다.
I will pay this for your penalty instead of you.

노인장을 춥고 배고프도록 버려 데에는 저의 책임도 크기 때문입니다.
I had a part of responsibility because I neglected you and made you hungry.

런데 10불이 필요하군요.
But we need $10.00 more for him.

여기 계신 분들도 사회에서 노인이 춥고 배고프도록 만든것에 책임이 있습니다.
I think those, who are in this place, also have some responsibility for neglecting this old man.

노인을 위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시길 바랍니다.”
I would like to invite anyone to donate money for him voluntarily.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재판관의 훌륭한 판결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자발적으로 기부를 해서 노인을 구했다고 합니다.
The people, who were there, were impressed by the judgment of LaGuardia. And they voluntarily donated money to save the old man.

뉴욕 시민들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긍휼이 많은 판사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존경받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After that, New York citizens have recognized Judge LaGuardia as a merciful judge and then he became a respected mayor later.

성도 여러분! 야고보서 2:13절에서,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십니다.
In James 2:13 says, 'He who does not do mercy will have a judgment without mercy. Compassion overcomes judgment and boasts.”

우리도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닮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We must resemble Jesus’ compassion and we must show mercy to the others.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나타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So let us shine Jesus’ name through our lives.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