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6.11  사랑의 수고가 나타나는 믿음 살전1:1-4

지난 주에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좋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들었습니다.
Last week, we heard that the faith of the Thessalonian believers was very good.

그래서 그들의 믿음이 좋은 첫번째 이유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So, we already learned the first reason why their faith was so good.

오늘은 그들의 믿음이 좋은 두번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것입니다.
Therefore, today we will think about the second reason why their faith was so good.

바울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 목사님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에 대해 듣고 매우 기뻐하며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When Apostle Paul, Silas, and Timothy heard about the strong faith of the Thessalonian believers, they gladly prayed to God

그들의 믿음이 어떤 것이길래 사도 바울이 그렇게  칭찬한 것일까요?
What kind of faith did they have so that the apostle Paul praised them?

여러분들도 목회자들이 기뻐하며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I hope all of you have this kind of faith so church leaders can be glad to pray for you.

사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목사님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Apostle Paul, Silas, and Timothy continually prayed for the Thessalonian believers since the leaders heard about the news of their Christian lives.

그들이 기뻐하며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의 역사때문이었습니다.
The work of faith was the first reason why they gladly prayed to God for the Thessalonian believers.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Then, what was the second reason?

그것은 사랑의 수고입니다.
It was labor of love.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Do you know what faith is?

믿음이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Faith makes us possible to believe the invisible God.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영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And faith has an important role to see the invisible God spiritually.

그러나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면 더 이상 믿음은 필요 없게 됩니다.
But when we go to heaven, we don't need faith anymore.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그를 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Because we will be with God and will serve Him all the time.

그때는 목사님들이 믿음을 가지라고 설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Then, pastors don't need to preach anymore to ask people to have faith.

저도 그때는 여러분에게 좋은 믿음을 가지라고 요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At that time, I will also not ask you to have good faith.

그러나 사랑은 믿음과 다릅니다.
But love is different than faith.

사랑은 이 세상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가서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Love is not only required while we are living in this world, but we will have it continually in heaven.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That's why the first Corinthians chapter 13 says,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그런데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서 이러한 사랑의 수고가 나타난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However, apostle Paul heard about the labor of love showing through the life of the Thessalonian believers.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척 기뻤습니다.
For this reason, apostle Paul was very happy.

사람은 환경이 좋은 상태에서는 사랑한다고 쉽게 말 할 수 있습니다.
Generally, people can easily tell other people. “We love you.”

그럴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참을 수 있습니다.
And they can be patient even though something happens.

그러나 환경이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But when people are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it is hard for them to express their love to others.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큰 어려움을 당하는 가운데 살면서도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However, though the Thessalonian believers met much suffering in their lives, they kept their faith firm.

그리고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And moreover, they practiced the love of God to other people in their lives.

성도 여러분! 사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4가지의 다른 단어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There are four different words and meanings of love in Greek.

첫째는, 에로스의 사랑이 있습니다.
The first word of love is eros.

이것은 남녀간의 육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This word refers to physical love between men and women.

두번째로, 스톨게라는 사랑이 있습니다.
The second word of love is storge.

이것은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입니다.
This word refers to parental love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세번째로, 필리아 라는 사랑이 있습니다.
The third word of love is philia.

이 사랑은 친구나 형제간의 사랑을 말합니다.
This word refers to relational love between friends or brothers.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가페라는 사랑이 있습니다.
And the last word of love is agape.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This word refers to God’s love.

사랑의 의미는 이렇게 4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The word ‘love’ has four different meanings.

그런데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가지의 사랑만 강조를 한다는 것입니다.
But nowadays, people who live in this world emphasize only one kind of love.

그 사랑이 무엇인가요?
What kind of love is it?

남녀간의 사랑인 에로스 사랑입니다.
Eros - the physical love between men and women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단지 육체적인 사랑만을 생각합니다.
So, people only think about physical love when they hear the word love.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But this is wrong.

비록 육체적인 사랑을 통해 사람이 시작되지만 아카페적인 사랑으로 끝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Though people’s lives begin with physical love, they must end with the love of agape that God is pleased.

영국에 C. S. 루이스라는 크리스천 교수가 있었습니다.
There was a Christian professor named C. S. Lewis in England.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He said this:

인간은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톨게에 의하여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장하고, 아가페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Human beings are born by physical love. They bring up with parental love. They grow up with friends or brothers’ love. Then they should complete with God’s love - agape.”

이 말이 무슨 뜻인가요?
What does this mean?

사람은 남녀간의 육체적인 사랑으로 인해 태어납니다.
All human beings are born by physical love between man and woman.

그리고 태어난 후에는 부모의 사랑으로 양육을 받게 됩니다.
Then they are raised by love of parents.

그리고 자라면서 형제나 친구들의 사랑으로 맺어집니다.
And they grow up with love of brothers or friends.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사랑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But we should not remain with just these three loves.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We should be the person who can practice the love of agape - that is God’s love.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 아가페적인 사랑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However, the labor of love was shown in the life of the Thessalonian believers.

아가페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They served God with that love, and they also loved other people with it.

그렇다면 아가페의 사랑이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So then, how should the love of agape be shown?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아가페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We can learn the love of agape from the teaching of Jesus Christ.

어느날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One day a certain lawyer came to Jesus and asked him a question.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이때 예수님이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At this time, Jesus replied him, "What is written in the law?"

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10:25-27).
First,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Seco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Jesus told us that we should love the Lord with our whole being.

그리고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And also we should love our neighbor as we love ourselves.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런 사랑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Because God loves us with this kind of love.

그러기에 그러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Therefore, God wants us to love other people with all our heart.

예수님이 그 율법사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시자 그 율법사가 예수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The lawyer asked Jesus again when Jesus replied his question.

그렇다면 내 이웃이 누구인가요?
Then, who is my neighbor?

이때 예수님은 그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At this point, Jesus told him the story of a Good Samaritan.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A man was going down from Jerusalem to Jericho and he fell into the hands of robbers.

강도들이 그 사람의 옷을 빼앗고 거반 죽도록 때리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They stripped him of his clothes and they beat him half dead and went away.

이때 제사장이 그 옆으로 지나갔고, 레위인도 지나갔지만 그들은 강도 만난자를 도와 주지 않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At that time, a priest and a Levite passed beside the man who was robbed, but they just passed without helping him.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곳을 지나가다 강도 만난자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But when a Samaritan passed there, he saw the man who was robbed, and he took pity on him.

그래서 그 사마리아인은 그에게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서 치료해 주었습니다.
So the Samaritan came to him and put wine and oil on the wounded place.

그리고 자기의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갔습니다.
And he took him to an inn on his own donkey.

그리고 그곳에서 치료를 해준 후 주막 주인에게 잘 돌봐 달라고 부탁을 하고 떠나 갔습니다.
And the Samaritan asked an innkeeper to look after him, and he left there.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질문을 합니다.
Jesus asked the lawyer a question.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그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냐?”
Who do you think the neighbor of the robbed man is?

이때 율법사는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The lawyer replied that the Samaritan was.

그러자 너도 가서 이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And Jesus told him that you should do like this to other people.

성도 여러분! 강도 만난자를 도와 준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Helping a robbed man is not easy to do.

왜냐하면 이런 일을 하면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Because difficult things might be happened when we try to help.

또한 그런 사람을 도와 주다가 자기의 것을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Also we might lose our own things when we try to help others.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한 수고와 노력과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Because loving others requires labor, effort, and sacrifice.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자를 보자 불쌍히 여겨서 자기의 것으로 그 사람을 도와 주었습니다.
But the Samaritan helped the robbed man when he saw the man and took pity on him.

이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수고인 것입니다.
This is the labor of love that God wants us to do.

성도 여러분! 이와같이 사랑의 수고에는 반드시 사랑의 노력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So, the labor of love should follow the efforts of love.

사랑의 수고는 희생없이 그냥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Labor of love does not just produce itself without sacrifice.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의 수고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God also loves us with this kind of love.

그러기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Therefore, God could send us His only son, Jesus Christ.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희생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And Jesus was crucified and sacrificed for us.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같은 죄인들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We can be saved because of Jesus’ sacrifice, and we enjoy the blessings of God.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을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While Jesus was in this world, he never used his supernatural power to be comfortable himself. 

예수님이 명령만 하시면 수천 명의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If Jesus commanded angels to come, several thousand angels could come and serve him.

그들을 사용해서 예수님을 때리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던 군병들의 손을 마비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Jesus could stop the soldiers who beat him and those who put a crown of thorns on his head. 

예수님을 십자가에 던 군병들을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Jesus could kill the soldiers who put him on the cross.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But Jesus didn't do such a thing.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너무 많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Because Jesus loves us so much.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면 반드시 그 모든 희생을 치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Jesus had to pass through complete sacrifice by dying on the cross in order to save us from our sins.

이게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현입니다.
This is the expression of Jesus’ love for us.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런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And Jesus wants us to practice this love to other people in our lives.


독일의
지방에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었습니다.
In Germany, there was a terrible crime happened in a countryside.

지스로 고들스키라는 청년이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불량배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A young man named Jislo Godlski gathered his friends and created a gang organization.

그리고 외딴 지역을 돌아다니며 강도짓을습니다.
And they wandered the rural areas and committed crimes.

들은 농장에서 9명이나 죽이는죄를 저질렀습니다.
They killed nine people on a farm.

그 농장에는 가장인 하멜만 씨를 포함해 10명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Mr. Hamelman owned this farm and 10 people lived in there.

강도들은 모든 사람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멜만씨는 불행 다행으로 4발의 총을 맞고도 목숨을 건졌습니다.
Gangsters tried to kill all 10 people, but fortunately Hamelman survived though he was shot with 4 bullets.

고들스키는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Godlski was arrested and was sentenced life in prison.

그러나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20 만에 모범수로 석방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However, during the jail time, he deeply repented what he had done in the past, so after 20 years later he was given the opportunity to be released.

그런데 그가 감옥에서 나가도 같이 살 수 있는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에서는 그의 석방을 보류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But the government planned to postpone his release because he didn't have any family members living with him.

그런데 소식을 하멜만 씨가 들은 것입니다.
However, Mr. Hamelman heard this news.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를 책임지겠다고 하며 고들스키를 석방시켜 달라고 탄원서를 냈습니다.
So Mr. Hamelman sent a petition to the government. “If Godlski would be released then I would be responsible for him.”

탄원서의 마지막에서 하멜만 씨는 자신이 고들스키를 용서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At the end of the petition, Hamelman wrote about why he should forgive Godlski:

“예수님께서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내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Jesus Christ died on the cross for my sins and forgave me.”

비록 저희 가족은 그 사람으로 인해 모두 죽음을 당했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천국에 가 있습니다.
Although he had killed all my family, my family went to heaven. 

그런데 제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So I don't have any reason for me not to forgive him.”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Jesus told us that we should forgive others seventy times seven.

그런데 그렇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Then where does the power of forgiveness come from?

그것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It comes from love.

그런데 이런 사랑의 힘은 절대 우리의 힘으로는 없습니다.
However, our own strength cannot produce this powerful love.

오직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Only the love given by Jesus is possible for us to love others.

이 사랑으로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Only with this love we can forgive others.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God wants us to practice this love in our Christian lives.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그리고 아직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이러한 사랑을 나누어주길 원하십니다.
To family, friends, neighbors and people who don't yet know Jesus Christ, God wants us to share this love with them.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장입니다.
The first Corinthians 13 is the love chapter.

아무리 지식이 많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No matter how much knowledge we have, we are nothing without love.

또한 아무리 자식을 도와 주고 가족과 친구를 물질로 도와 준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가르쳐 줍니다.
We try to help our children and we also try to help our family and friends with all our money, but if we do these things without love, there is no benefit for us.

성도 여러분! 사랑이란 오래 참아야 합니다.
Love is patient.

사랑이란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Love is kind, and it does not envy.

사랑이란 자랑하지도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Love doesn't boast, and love is not proud.

사랑이란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합니다.
Love is not rude.

또한 사랑이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Also, love is not self-seeking.

그리고 성내지 말아야 합니다.
Love is not easily angered.

또한 사랑이란 악한 것을 생각치 말아야 합니다.
Also love doesn't think of evil.

또한 진리를 기뻐해야 합니다.
And love rejoices with truth.

이게 바로 사랑의 모습입니다.
This is the image of love.

지금 이러한 사랑의 모습들 중에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있나요?
Now which of these forms of love do you have?

또한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부족한가요?
Which ones are you lacking?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이런 사랑은 수고 없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One thing that we should know is that love is never done without labor.

수고가 무엇인가요?
What is labor?

희생을 말합니다.
It is sacrifice.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노동을 하듯이 사랑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도 그러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Love works the same way as physical labor by producing a result, and so we should try hard to love others.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러한 사랑의 수고를 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The Thessalonian believers worked hard with this love, so they showed their love to others.

또한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아 교인들로부터 그 기쁜 소식을 듣고 기뻐한 것입니다.
That’s the reason why apostle Paul was happy because he heard this good news from the Thessalonian believers.

그런데 이러한 사랑은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야 생깁니다.
But this love can be only produced by when we fall in love with Jesus.

그래야 이런 사랑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And we can get strength of love.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러한 사랑의 수고가 넘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Let’s become this kind of saint - those who are overflowing the labor of love.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듭시다.
And let’s make our church one that God is pleased.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