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6.18 소망의 인내를 갖자 살전1: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신앙생활이란 하루하루 사는 동안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졌기에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어려움을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인내하며 승리하며 살 수 있는 원동력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확실한 소망으로 삼고 살 때 가능한 것입니다.

로마서 8:18절을 보면,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현재의 고난을  참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우리는 이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부한 세상의 학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도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려움이 한번 오면 모두 푹푹 쓰러집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다 잃어 버립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 세상의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소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커다란 산과 같은 문제들을 얼마나 자주 만나게 되나요? 우리가 하루하루 살다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만난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얼마나 자주 만나게 되나요? 그러나 그러한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영원한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를 품으면 그 생명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승리하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고자 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런 생명의 능력을 어떻게 공급받을 수 있나요? 먼저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죄인으로서 아무런 소망이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에 정확하게 입력이 되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의로움을 의지하며 사는 자는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인 것입니다.

요한15:12절에서 이렇게 증거를 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아들이 누구인가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생명이 바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영원한 생명을 품고 사는 사람만다가오 어려움들을 이기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목사님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던 세 번째 이유에 대해 배우려고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기뻐하며 기도했던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런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으로 인해 인내하며 살았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인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인내를 단지 참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인내란 참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인내란 단순하게 참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내를 하되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자세로 인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겨우겨우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이겨내는 것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는 핍박과 환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메시지는 믿음 생활이 그저 편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예수 믿으면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면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예수님을 믿어도 어려움이 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완전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보세요.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좋았나요? 그런데 그들에게 핍박이 왔던 것입니다. 그 핍박도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는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은 삶에서 어려움이 와도 그 어려움을 믿음으로 굳건하게 참으며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잘못된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교회다니면 모든 것이 다 잘되어야 하는데 왜 나는 안그런가요?” 그런 생각을 하면 시험이 듭니다. 나는 교회를 다니는데 내가 원하는대로 왜 안되나요?” 이런 생각을 가지면 좌절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어도 때로는 어려움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이는 사람만이 승리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예수를 얼마나 잘 믿었나요? 믿음이 좋았던 사람들도 삶에서 핍박을 당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믿음을 지킨 사람이 진짜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환란과 어려움은 그 사람의 믿음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통과한 후에야 그 사람의 진짜 믿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을 보세요. 그들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그들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인내하 기다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려고 노력했나요? 그런데 아무 죄도 없이 다윗은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10년 넘도록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소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 받으므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려고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므로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며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내는 지도자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벳과 사가랴가를 보세요. 그들은 나이가 들어 늙을 때까지 무자식으로 외롭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기다릴 때 세례 요한이라는 멋진 아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인내하며 기다리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수천년을 기다리셔야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차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구원 계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고 이렇게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며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인내라는 통로를 통과할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참고 기다릴 때 운명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기다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운명론적인 기다림이란 무엇인가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그냥 기다리는 것입니다. 체념하며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냥 자포자기하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참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인내하기를 원하십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런 인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런 인내를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그들의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냥 무조건 인내하려고 하면 잘 안됩니다. 우리가 인내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우리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내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10절을 보면,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마음속에 소망을 품고 있으면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한국에서 이은신 반장님이 이곳에 잠간 방문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공항에 가서 픽엎해 오면서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1년 동안 혼자 사느라고 힘들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하자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그러나 내가 이렇게 할 때 가족이 미국에서 잘 살 수 있다는 소망을 품으니 힘들어도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가족들이 앞으로 잘 될 것이라는 소망을 품을 때 힘들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 기뻐서 싱글벙글 웃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이런 소망을 품을 때 힘들어도 인내하며 참고 기쁘게 살아 갈 수 있다면, 하물며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소망 보다 더 크고 좋은 소망이 앞에 놓여 있기에 더 인내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망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가서 같이 살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때를 바라보며 산다면 힘들고 어려움도 끝까지 참고 인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너무 크고 위대하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천국에 대한 기다림은 성도들로 하여금 인내를 만들어 내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건물 입구에서 는 할머니 한 분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많고 차림도 허름했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밝아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한번은 건물 주인이 그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에게는 늘 좋은 일만 생기는가 보지요? 왜냐하면 항상 표정이 밝아 보입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아닙니다. 만약 제 정을 트럭에 담는다면 아마 100대 분량도 더 입니다." 그 건물 주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그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가 있나요?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나요?" 그 할머니는 그 건물 주인에게 복한 의 비결을 들려주었습니다. "내게 특별한 비결이 하나 있지요. 어려움이 나에게 찾아오면 예수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셨던 삼일을 생각하면서 삼일 동안 기다립니다. 그러면 삼일이 지나면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답니다." 삼일이 지나면 그 어려움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다시 용기를 내서 달려가게 되지요. 이게 바로 나의 비결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큰 문제들도 주님께 기도하며 사흘만 참고 견디면 그 문제가 아주 작은 문제로 변한다는 사실을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 주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 가서 산다는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 보며 살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을 기다리는 영원한 소망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어느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놀았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 말했습니다. 하루살이가 물었습니다. "내일이 뭔데?" 그러자 메뚜기가 "캄캄한 밤이 지나면 밝은 날이 올텐데 그게 내일이야."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말을 듣고도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이 메뚜기는 개구리와 함께 놀았습니다. 개구리는 "날씨가 추워지니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 말했습니다. 그러자 메뚜기가 물었습니다. "내년이 뭔데?" 그러자 개구리가 설명을 합니다. “내년이란 추운 겨울이 끝난 후 날이 따뜻해지려고 오는 거야." 그러나 메뚜기는 개구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육신이 죽은에도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영생이 뭔데?"라고 말합니다. 영생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날 얻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영생에 대한 소망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그냥 끝나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내세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러한 소망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나요?

그런데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비극은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 많이 벌어 잘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에게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미래가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좋고 내일보다 모래가 좋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소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생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사실을 지식적으로만 인정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요?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으면 안됩니다. 사실을 확신하며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기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은 마음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단지 이 세상에서 잘먹고 즐기는 것만이 소망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단지 예수를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마음에 예수님을 소망 삼지 않고 이 세상의 것만 소망으로 삼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천국으로 가실 때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할 소망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있나요? 소망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나요? 아닙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이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실 영원한 소망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 소망을 우리는 바라며 달려가야 합니다. 지금 힘든 일이 있나요? 주님이 오실 그날을 생각하며 인내의 소망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할 수 없이 자포자기 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주님을 의지하므로 소망가운데 승리하며 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