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7.16 은혜받아 쓰임 받자 막15:21-27

여러분이나 제가 인생을 아가 보면 자원해서 하는 일들도 있지만 그러나 억지로 마지 못해 해야 할 때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군대는 지원하는 사람을 받아 주고 그들에게 월급과 모든 혜택을 주면서 군대 생활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대한 민국은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나라를 위해 2년 동안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법입니다. 그러기에 자원해서 가라고 하면 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억지로라도 가야 합니다. 그럴 때 나라가 지켜집니다. 또한 학생은 공부하기 싫어도 학교에 가야 합니다. 시험을 보기 싫어도 시험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앞날이 보장됩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일하러 가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가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오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나와야 신앙이 유지됩니다. 억지로라도 성경을 읽어야 믿음이 자랍니다.  

구약의 선지자 요나를 보니 그는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성에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니 멸망받지 않도록 회개하라“고 말씀을 선포하라는 메시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가 었습니다. 그래서 도망쳤지만 물고기 뱃속에 삼일 동안 감금되어 있다가 다시 돌아와 억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진해서 쁨으로 할때 보다 마지못해 억지로 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들은 예전에 하나님을 모르며 살았던 죄성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보다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익숙해져 있기에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는 신앙인들은 늘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셨던 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늘 순종하며 살았던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요? 그 분은 우리가 말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중에 제2위격인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서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을 보면 그 분은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이십니다. 그 분이 아니면 이 세상에 있는 어떤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우주 만물이 예수님에 의해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런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주 작은 물건 하나만 만들고 나면 너무 신기하고 자랑스러워서 어쩔줄을 몰라합니다. 그래서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주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지금도 그것을 자기의 뜻대로 운행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가요?

그런데 그렇게 위대 하신 예수님께서 이땅에 왜 오셨을까요? 그 분이 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같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죄인들이 지옥에 가서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은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제거해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내가 왜 이런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며 죽어야 합니까?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라고 하셨다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빚진 것이 있나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인간들을 위해 죽어 주셔야 할 아무런 의무나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하시고자 순종하시러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므로 인간들이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많은 인간들을 위해 살인 강도들이나 흉악범들 처형할 사용하는 십자가를 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가야바의 법정에서 밤새도록 고문을 받으시며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새벽녁에는 빌라도 법정에서 무시무시한 가죽 채찍으로 수도 없이 많이 맞으셨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흉악한 죄나 반역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그런 일을 하면 이렇게 끔찍한 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보여 주 위해 채찍으로 죽도록 때린 후에, 자신이 달려 죽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까지 도록 했던 것입니다.

제가 20대 중반 이었을 때 교회에서 부활절 연극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주인공인 예수님의 역할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X4인치 되는 큰 나무 2개를 사서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 뒤에서부터 어께에 메고 앞 강단까지 끌고갔습니다. 군병들은 쉬지 않고 채찍으로 때립니다. 그러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보다 더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으로 올라 가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밤새도록 채찍으로 맞으신 다음에 말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이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라틴어로 예수님이 가신 슬픔의 ’ ‘고통의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던 , 몇번씩 쓰러지셨습니다. 그때마다 들은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은 더 이상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땅에 쓰러지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해 끝까지 포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영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순종하신 덕분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순종을 원하십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하나님의 뜻이기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며 축복의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순종을 닮아서 늘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순종할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손길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불순종하는 것보다 억지로라도 순종하고자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억지라도 순종하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이 더 이상 십자가를 질 수 없게 되자 로마 군병은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지목해서 그 십자가를 지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뽑힌 사람이 바로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군병들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갈 사람을 찾고 있을 때 시골에서 올라 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시몬이 그곳을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 왜 그가 그곳을 지나갔을까요? 성경이 정확하게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 않지만 아마 그때가 유월절이였기에 예루살렘으로 유월절을 지키러 온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가 구레네라는 곳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구레네란 지역이 어디에 있는 곳일까요? 지금의 집트 옆에 있는 리비아라는 아프리카에 있는 작은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길 올라가는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기에 그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영문을 몰라 그곳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왔기에 예루살렘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는지 잘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자 그곳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그곳에서 군병들에게 강제로 붙잡힌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그가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억지로 같이 가게 했다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고 외치는 군중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면 성경은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그곳지나가다 이유도 모른채 군병들에게 강제로 붙잡힌 것입니다.

 

물론 군병들이 구레네 시몬을 선택한 것을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기에 합당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 체격이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그곳을 지나가다 붙잡혀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절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끌려와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을 돕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지고 가던 그 고통의 십자가를 나누어 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구레네 시몬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자기는 아무 죄도 없이 다른 사람이 지고 가던 무거운 십자가를 대신진다는 것은 어쩌면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영광의 십자가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가 아무 영문도 모르고 그 십자가를 억지로 지었다 해도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는 주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지시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레네 시몬의 죄를 위한 십자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그 십자가를 잠이나마 나누어 진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같이 동참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누어지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그 일에는 동참할 수 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수님이 지고 가시던 십자가를 대신 지도록 선택 받아 쓰임 받았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모여 구경하던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을 위해 쓰임 받은 사람은 오직 구레네 시몬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구레네 시몬은 그 동네에 사는 사람도 아니었습니. 그렇다고 그가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유대 나라에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단지 그곳을 방문하러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예수님이 지시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으로 선택 받았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선택해 준 사람이 아니면 그런 일에 쓰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는 것도 주님께서 선택해 주셔야 가능합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나요?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여러분을 선택해 주셔서 구원시켜 주셨다는 것은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역사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신학교를 갈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친구가 신학교에 가면서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학교에 가는 일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된다는 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저를 미국으로 이민 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미국에 와서 예수를 더 열심히 믿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은 저에게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오도록 하시고 목사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볼 때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제가 미국으로 오지 않으면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을 것 같기에 이곳 미국까지 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의 생각을 깨뜨리시고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저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였던 것입니다.

 

저만 그런가요?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가 있었기에 미국이라는 땅에 오도록 하시고 이곳에서 예수를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레네 시몬도 만약 자기 고향에 그냥 있었다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예루살렘 방문하도록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 그때에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소동이 일어날 때 그가 그곳에서 기웃 거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이 힘이 없어 쓰러지게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군병들이 그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는 사람을 찾을 때 구레네 시몬이 눈에 띄게 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에 맞춰진 계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이 지고 가시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일을 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섭리를 받아들이며 사는 자가 행복합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를 강제로라도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되었나요?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은총의 십자가를 나눠지는 축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12명의 제자들 속에 들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70인의 제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군병들에게 붙잡혀서 강제로 십자가를 졌지만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입은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강제로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은 그후에 어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을까요? 그는 아프리카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진지 거의 30년이 훨씬 지난 후에 사도 바울의 서신에 보면 그의 이름이 나옵니다. 로마서 1613절을 보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지고 가시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는 십자가를 진 후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루포는 사도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협력하는 충성된 신앙인으로 자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의 아내인 루포의 어머니는 사도 바울을 열심히 섬기며 사역을 도와 주는 멋진 성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그녀를 나의 어머니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불렀다는 것은 보통 충성스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이런 멋진 가정을 세우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억지로 지었던 구레네 시몬은 어떤 사람으로 변화 되었을까요?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거기에 그의 이름이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의 제직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거기에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니게르라는 말은 흑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으로 추측합니다. 그는 십자가를 진 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자기도 멋진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도 모두 예수 믿는 가정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같이 위대한 사도 인정해 주는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그의 두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는 그 아버지 시몬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믿음의 사람들로 변화된 비결이 무엇일까요?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나마 주님의 십자가를 지었던 결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든 주님의 십자가를 한 귀퉁이라도 잡고 가면 복됩니다. 주님이 그것을 은혜로 갚아 주십니다. 때로는 억지로지는 십자가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 십자가라면 그것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나 마지못해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요나처럼 니느웨에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터이니 멸망당하지 않도록 회개하라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다가 받은 사람 이 있지만 중에 사람을 소개하면, 순천 순동교회에 박병선 안수집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몹시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아내에게 끌려서 교회에 는데 처음 교회 새로 신축한 예배당 빈자리를 니 텅비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약속을 한 것입니다.

는 그렇게 한 후에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약속을 했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음 날부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의원으로 출마를 한 때였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선거운동을 뒷전으로 미뤄 두고 전도에 열심을 낸것입니다. 그런데 쉬울 것만 같았던 전도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도 교회에 나오라는 말에는 따라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끝까지 전도하리라 결심하고 열심히 전도한 결과 그해 1 만에 무려 700명을 전도한 것입니다. 그가 약속한 대로 그가 예배당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그가 바로 진돗개 전도왕 박병선 안수집사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억지로 십자가인가요? 그러나 억지로라도 십자가 졌더니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게 해주셨고 압도적으로 순천시의회 의원이 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 20 가지가 넘는 복을 누리도록 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는 방방곡곡 세계를 다니며 전도에 대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진 결과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십자가를 지고 가야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이 될까요? 이 말을 오해 없이 들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고가야 한다니까 죄인들을 죄로부터 구원시킬 수 있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것으로 오해 해서는 안됩니다. 죄인을 구원시킬 수 있는 구원의 십자가는 오직 우리 예수님만 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십자가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을 잘 섬기려고 할 때 오는 여러가지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자신만이 져야 하는 십자가가 다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모두 있습니다. 어떤이에게는 남편이, 아내가, 어떤이에게는 자식이, 어떤 이에게는 물질이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분이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맡겨진 사명이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신앙생활하며 이 세상을 살아갈 다양한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럴 때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회피하면 안됩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지고 가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힘들다고 내동댕이치면 안됩니다. 힘들어도 지고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도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각자 주님이 맡겨 주신 작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럴 때 구레네 시몬처럼 온 가족이, 그리고 자손들이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을 누린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이 이런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언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했나요?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질 때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