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7.23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창4:1-12

보스톤 지역에서 목회를 하시는 골든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이 어느 사무실에서 열심히 설교를 준비하다가 피곤해서 그만 의자에 앉은 책상에 엎드려 깜박 잠이 었는데 그 상태로 꿈을 꾸게 되었습니. 목사라서 꿈을 꾸어도 교회에 대한 꿈을 꾸는가 봅니다. 그 날도 꿈속에서 주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앉아 있었습니. 그런데 교인들 가운데 30 정도 되는 낯선 남자가 앉아 있는데 그 사람에게 웬지 모르게 자꾸 시선이 렸다고 합니. 그래서 그는 예배가 끝난 낯선 사람을 만나 보고 싶었습니. 그래서 교인들과 안수를 나누고 빨리 교회 밖으로 갔지만 낯선 사람이 보이지 는 것입니. 그래서 목사님은 안내위원들에게 낯선 사람을 보았냐고 물어보았습니. 그랬더니 안내위원이 대답하길, 사람요. 알고 말구요. 사람은 예수라고 하는 사람입니다.그 목사님은 꿈속에서 예수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더라는 것입니. 다음부터 골든 목사님은 예배를 드릴 때마다 회중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앉아 계신다는 확고한 생각으로 예배도 드리고 설교도 한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주님께 나오시나요? 그냥 수요일이 되어 나와 앉아 있다 가시나요? 그리고 주일이니까 나와야 하기에 나와서 앉아 있다 가시나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어떤 마음의 자세로 나오시나요?

예배란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와 계십니다. 그러기에 이 예배에 하나님이 와 계신다는 마음의 자세로 예배에 나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니 두 사람의 예배자가 나옵니다. 둘 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예배에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예배자를 보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의 자세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받으시고 축복해 주시는 예배자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주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왜 쫒겨났나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같이 되고 싶은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죄로 인해 죄악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좇겨난 후에 가인과 아벨이란 아들을 낳았습니다. 둘 다 장성하여서 청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며 예배도 드렸습니다. 이때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었기에 땅에서 나는 농작물로 제물 삼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 치는 사람이었기에 자기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 삼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 제물도 드리고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과 예배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물과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가인은 하나님께 화가 났습니다. 왜 자기의 제물은 받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자기 아우인 아벨을 들로 불러 내서 쳐 죽였습니다. 그는 자기 동생을 때려서 죽인 것입니다. 왜 가인이 아벨을 죽였나요?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과 예배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과 예배를 받으셨다는 이유로 죽인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에게 자기의 화풀이를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과 예배는 받지 않으셨을까요? 반면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물과 예배는 받으신 것일까요?  이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가인과 아벨로부터 예배를 받으셨던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 수도 있고 받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하나님이 가인의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셨다는 기록을 성경에 남겨 주셨기에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고 계시는지 또 받지 않으시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예배를 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간 왜 하나님이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벨이 드린 예배는 어떤 예배이기에 하나님이 받으셨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가인과 같은 예배가 아니라 아벨과 같은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인과 아벨이 드린 예배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차이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짐승의 제물을 더 좋아하시는데 가인이 동물의 제물을 드리지 않았기에 받지 않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법을 주실 때 동물의 제사를 드리므로 죄사함을 받는다고 한 그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이 죄인들을 대신 죽어 주는 제사법이 있었기에 동물의 제물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확한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4절을 보면 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가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예배자가 어떤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고 하시나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지만, 믿음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주 심하게 꾸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나요? 수없이 많은 동물의 제물을 드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이렇게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고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을 하나님께 가져 왔습니다. 그렇게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않니하노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그리고 그들이 다양한 예배로 하나님께 모였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가증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0-13).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동물의 제물을 드렸다고 해서 그 예배를 기뻐하며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동물의 제물 자체로만 기뻐하시는 분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을 그렇게 꾸짖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어떤 예배를 기뻐하시는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진실된 믿음의 마음로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진실된 믿음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무엇인가요?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올바로 알고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단지 습관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인 마음으로 나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 동안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다 보니 나중에는 형식적인 행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례껏 제물만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온 것입니다. 왜 그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지, 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양이나 염소나 소를 잡아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감지덕지하며 받으시는 분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인류를 통해 경배와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배자들은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예의와 마음을 다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전혀 하나님께 대한 존경이나 믿음도 없이 그냥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물이 화려하다 할지라도 마음이 함께 하지 않는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와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몇번 예배에 참석했느냐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성을 다해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하나님께 옳바른 예배를 많이 드린 사람은 하나님이 그 만큼 많이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옳바른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면 아무리 이곳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이 기억하시지 않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 한번의 예배를 드리더라도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의 신분이 누구인지를 아는 마음으로 예배에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의 죄 대신 십자가에 죽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죄를 용서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배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내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하며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지옥갈 인생이었는데 예수님의 보혈 때문에 교회로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축복의 인생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나와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나올 때 내 자신의 모습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주님만 보이게 됩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로 나와서 드리는 예배일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내 의로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로움을 힘입어 예배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배에 나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올 때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마음이 그냥 참석하는 마음으로 나오면 안됩니다. 참여하는 것이 의가 있다고 하는 그런 마음이 되면 안됩니다. 나오기 싫은데 할 수 없이 끌려 나오는 마음으로 예배에 임하면 안됩니다. 마치 소가 도살장에 끌려갈 때 가기 싫어서 발버둥치는 그런 마음으로 나오면 안됩니다.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올 때 그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에는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파트는 예배 장소에 나와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파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제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고자 하는 삶의 현장에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 순서순서를 통하여 열심히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함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설교를 듣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러기에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정성을 다하여 듣고자 해야 합니다. 설교란 하나님이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는 귀한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설교를 들을 때 마음을 다해 그 말씀을 깨닫고자 귀를 기울이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설교를 잘 깨닫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하여 들어야 합니다. 설교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말씀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성경책이나 찬송가를 뒤적이면 안됩니다. 다른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과 잡담을 해서도 안됩니다. 귀를 기울여 말씀을 경청하며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자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을 열심히 듣고자 바라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 자리에만 나와서 앉아 있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지만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 있으면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으로 나와서 앉아 있다 할지라도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은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만 고개를 끄떡끄떡하고 지나가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 말씀을 깨달은 것으로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들은 그 말씀이 다시 삶속에서 순종으로 나타나도록 해야 올바로 예배를 드린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들은 그 말씀을 삶의 현장속에 가지고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달은 사람이며 올바른 예배를 드린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맞는 말씀이라고 고개를 끄떡입니다. 그리고 그냥 거기서 끝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알고 행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울 왕을 통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아말렉 사람들을 다 멸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이해가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는 어떻게 했나요?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좋은 것은 다 살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무엘에게 와서 당신의 하나님을 위해 살려 두었다고 변명을 합니다. 이때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뭐라고 했나요?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성도 여러분! 사울은 하나님을 위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좋은 것을 남겨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좋은 동물을 하나님께 드린다 해도 하나님은 기뻐받지 않으실 뿐아니라 그런 제물과 예배는 받지도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왜 그럴까요?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인도 만약 하나님께 믿음으로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다면 비록 농사물로 예물을 드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예물과 예배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분노하며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잘못 드린 예배를 아벨에게 핑개를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예배드리며 사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빨리 볼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잘못을 깨닫게 되면 빨리 회개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가인과 같이 그리고 사울과 같이 자기의 고집과 아집으로 멸망할 때까지 갑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예배자인가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드리는 예배마다 하나님이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축복하시고 인도하시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