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4.8.27 용기 주는 사람 딤후1:15-18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다양한 모습들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며 사는지 관찰을 해 보면 두 종류로 사람들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의미를 더해 주고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웃에게 무언가를 베풀기를 좋아하고, 이웃의 무거운 짐을 함께 져 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환영을 받는 유익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좋은 일이 일어나고 행복합니다.

성경의 인물들 중에 이런 멋진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우리는 요셉을 대표로 꼽을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지만 요셉이 있는 곳에는 어느곳이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일이 일어났던 것을 봅니다. 보디발의 집이 요셉으로 인해 복을 얻었습니다. 보디발이 보니 하나님이 요셉과 같이 하신 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집의 모든 재산을 다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또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하나님이 요셉에게 함께 하시자 감옥의 옥사장까지 복을 받는 것을 봅니다. 또한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전국을 다스릴 때는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복을 누리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가 가는 곳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웃을 도와 주지 못합니다. 무거운 짐을 가볍게 덜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짐을 지워서 무겁게 만드는 사람들 입니다. 이웃을 낙심시키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유익은 커녕 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입니다.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은 초대교회 성도였는데 그는 교회에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헤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이오라는 장로가 순회 전도자들을 귀하게 잘 대접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시기하고 질투를 해서 순회 전도자들을 맞아들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당시는 순회 전도자들이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그들을 맞이해서 대접을 하고 후원을 해 주므로 그 전도 사업을 계속하도록 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와 같은 사람은 자기 자신도 그런 착한 일을 하지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는 것까지도 방해를 하며 괴롭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주변의 사람들이 해를 당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또한 어느 유형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나요? 물론 첫 번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멋지고 위대한 사람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요?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그의 이름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단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만 나옵니다. 그는 에베소 교회 성도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사람을 대단히 멋진 사람으로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아주 간절히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이었길래 사도 바울이 이렇게 그를 칭찬하며 기뻐하는 것일까요?

오네시보로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데 쓰임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를 찾아와 용기와 기쁨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쓴 서신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 바울은 62년 경에 로마에 처음 갔을 때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2년 후에 무죄로 풀려 나오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 나오자 사도 바울은 4차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 그는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가 복음을 전하며 다니다 67년 경에 다시 네로 황제의 핍박으로 인해 붙잡혀서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때 그는 첫번째 감옥에 갇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사도 바울은 셋방을 얻어서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서 마음껏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두 번째 감옥에 갇혔을 때는 일반 죄수들처럼 쇠사슬에 묶여 차가운 감옥에 갇혀 고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친구들도 이제 바울을 찾아가 만나기가 힘든 상황이 된것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이제 자기의 사명이 다 끝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살 날도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감옥에 갇히고 나니 사도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사도 바울을 배반하고 서서히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까지 바울의 곁에 남아 있던 사람은 오직 누가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놓인 사도 바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마 몹시 쓸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던 사도 바울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었던 사람이 바로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입니다. 오네시보로는 사도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격려했다는 말은 그에게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한 번만 찾아와 기쁨을 준것이 아니라 자주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자주 사도 바울을 찾아왔으며 그의 마음에 웃음을 짓도록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가 웃으며 살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나요? 그는 복음을 전하러 다니며 모진 핍박과 고난을 겪으며 늘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보로는 이렇게 힘들어 하던 사도 바울에게 기쁨을 앉겨 준것입니다.

오네시보로가 사도 바울을 만나면 어떻게 했는지 기록은 없어서 잘 모르지만 그를 만나면 바울은 용기를 얻고 기쁨을 얻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만날 때마다 엔돌핀이 샘솟듯 솟아오르고 영혼과 마음이 풍성해지고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저도 이번 한국 방문 때 임종선 집사 가정과 박세규 집사 가정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임종선 집사 가정은 교회를 재가 개척하고 얼마 안되어 만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여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기쁨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들이 같이 영혼 구원을 놓고 기도했던 김학성 형제님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기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한 박세규 집사님 가정도 만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신앙생활 하 때 제자훈련까지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한국으로 귀국하여 광운대학교에서 화학공학과 부교수로 있습니다.  그 집사님도 지금 학교에서 모범을 보이는 교수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교수님들과 성경공부도 하고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교회에서 개척 교회를 세우려 하는데 이곳에서 신앙생활하던 경험이 있기에 개척교회를 하는데 두려움이 없이 자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두 가정을 주님 안에서 만나니 너무 기뻤습니다.

 

목회자들의 기쁨은 신앙생활을 잘하는 제자들을 만날 때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만나서 맛있는것 사먹는것이 기쁨이 아닙니다. 주님안에서 승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그냥 기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은 두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만 만나면 마음에 상처를 받고 화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또 다시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만나면 왠지 기쁨과 용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두 종류의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과 사귀기를 원하시나요? 그야, 물론 물을 필요도 없이 기쁨과 용기를 주는 사람과 사귀고 싶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오네시보로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이 대단한 것은 사도 바울이 좋은 환경에 있을 때 그에게 다가 가서 용기와 기쁨을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어려움에 처하자 모두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사도 바울이 어려움을 더 많이 당할 때 열심히 그를 찾아가서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움에 처하면 왜 사람들이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일까요?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과 사귀면 자신이 창피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손해가 올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것을 손해 볼까봐서 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보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자 그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왜 감옥에 다시 갇히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을 만나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이럴 때 사도 바울의 옆으로 더 가까이 갔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그 자리, 그런 것에도 상관하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정말 참된 친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진정한 복을 내려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은 항상 진실한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는 외롭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였습니다. 예수님의 주변에 얼마나 부자들이 많았나요? 얼마나 대단한 권세를 잡고 살던 자들이 많았나요? 얼마나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았나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과 친구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소외되고 멸시 당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이게 바로 온전한 사랑입니다. 이게 바로 진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대단하기에 선택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불쌍하기에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자들이기에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해 주셨다고 하셨나요? 그들이 거대한 나라라서 그랬나요? 아닙니다. 그들이 작고, 힘이 없고, 보잘것 없기에 그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부족한 자들을 찾아오시고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게 바로 우리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과 마음인 것입니다.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레나 루즈벨트 여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녀는 20세 때 루즈벨트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 당시 루즈벨트는 젊고, 패기가 있었으며, 장래가 보장되는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관절염에 걸리게 되어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는 불행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루즈벨트는 할 수 없이 쇠붙이를 다리에 대고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즈벨트가 엘레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불구자가 되었는데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하오?" 그러자 엘레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럼 내가 그동안 당신의 다리만 사랑하며 살아 온 줄 아셨나요? 내가 사랑한 것은 당신의 인격과 당신의 삶이에요." 그녀의 말은 루즈벨트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루즈벨트는 자기의 다리를 못쓰게 되자 심한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힘들어 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 루즈벨트는 자기 아내가 한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힘을내어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932년에 다리가 불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어 4선까지 대통령의 직무를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번까지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불구의 남편에게 용기와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엘레나 그녀야 말로 어려움 가운데 처한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 줄줄 알았던 훌륭한 여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살 소망을 안겨 주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서 구원시키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약한자 보다 강한자 들을 더 좋아합니다. 병든 자들보다 건강한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강한 자보다 약한 자를 더 귀히 여기십니다. 부자들 보다는 가난한 자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 보다 어리석은 자들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자들을 찾아 오셔서 구원의 손길을 펴 주셨던 것입니다.

왜 세리와 창녀들이 예수님을 따랐나요? 예수님은 그들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이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며 살던 사람들이었나요? 세리들이나 창녀들은 사람 대우도 받지 못하고 무시 당하며 살던 자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찾아가셨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으며 또한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세상 사람들이 무시해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약하고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참 소망이 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용기와 기쁨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나온 주인공인 오네시보로도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닮았기에 그도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멋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좌절되고 용기를 잃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며 기쁨을 주므로 예수님을 나타내 보여 주는 멋진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기쁨과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