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9.3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 대상 4:9-10

사람은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이 잘 되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더 좋은 직장을 갖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자녀를 잘 키워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을 소원하며 꿈에 부풀어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병든 사람은 건강하길 바라는 소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좋아지기를 수언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원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야베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었는데 이런 것이었습니다.

“원컨데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야베스는 마음에 늘 소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소원을 말한 것을 통해 그가 몹시 가난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또한 그의 인생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강한 손이 지켜 주시므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달라는 소원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베스의 소원을 다 들으시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지금 이 시간, 여러분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며 네가 원하는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봐라. 그러면 들어 주겠다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말하실건가요? 사업이 잘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여러분의 자녀가 잘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믿음을 더 커지는 것인가요? 사람마다 간절하게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야베스의 소원을 다 들어 주신 것 같이 여러분의 소원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길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시편 10편17절에 의하면.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겸손이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겸손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저 사람 참 겸손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겸손이 무엇인가요? 나는 별볼일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입으로 말하는 것일까요?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일까요?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겸손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겸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겸손이란 어떤 것일까요? 겸손이란 자신의 신분이 누구인가를 올바로 알고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나를 창조해 주신 창조자이시며 그 분이 공급해 주시지 않는다면 단 몇 분도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겸손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와 같은 마음의 자세를 가지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요15:5).

성도 여러분!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포도가지는 포도나무가 공급해 주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가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가지는 뿌리에서 공급해 주고 포도 원줄기에서 공급해 주는 영양분을 공급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포도 나무로부터 공급이 끊기면 가지는 금방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이 공급을 끊어버리시면 죽어버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자세로 사는 것이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특히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죄인들입니다. 그러기에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죄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 생명은 오직 예수님만이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급해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하면 죄인들은 모두 죽은 상태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시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허덕이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나의 죄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의 부활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 들이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의 학문과 권세와 물질을 많이 가지고 떵떵거리며 산다 해도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며 교만한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런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의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은 이루어주십니다.

여기서 예배 드리고 있는 여러분들도 각자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나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소원을 간구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겸손해집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까요? 하나님만을 기쁨으로 삼으며 사는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시편 37:4절에서,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으로만 기뻐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기쁨을 누리며 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을 성취하는 것으로 기쁨을 누리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으로 기쁨을 누리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명예를 얻는 것으로 기쁨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여호와로 인하여 기쁨을 누리려는 사람들은 그런 것으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보다 더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삶에서도 활기가 넘칩니다. 이런 사람은 생활속에서도 기쁨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에 예수님으로 인해 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삶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을 높이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으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상관 없습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성막을 다윗 성으로 메어 오려고 삼만 명을 뽑았습니다. 하나님의 꿰는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기에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궤를 자기가 살고 있는 성으로 모시고 온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는 너무 기뻐서 궤를 메고 오는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떼어 놀 때마다 소를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팔을 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윗도 너무 좋아서 춤을 췄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춤추는 동안 바지 끈이 풀려 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춘것입니다. 백성들 앞에서 왕의 바지가 내려 갔으니 얼마나 창피한 노릇인가요? 이런 다윗을 아내 미갈이 창문으로 내다보다가 흉을 보았습니다. 이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다가 일어난 일이기에 나는 절대 창피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보다 더 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이라면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하나님으로 기뻐하다 바지자락이 내려가 망신 당한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체면차리며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고 다윗을 흉보았던 미갈은 평생동안 아기를 낳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태의 문을 닫으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평소에 한 가지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소원은 왕권을 영원히 보장 받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의 소원은 그의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다윗이 가장 원했던 소원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배하며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주의 궁정에서 하루를 사는 것이 다른 곳에서 천 날 사는 것 보다 낫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의 장막에서 호화롭게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비록 사울 왕에 의해 쫓겨 다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는 40년이란 세월 동안 왕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축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그는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는 성전을 짓도록  모든 재료를 다 준비 해 놓고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솔로몬이 그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으로 기뻐하며 만족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기쁨을 추구하기 보다 세상에서 주는 일시적인 기쁨만을 누려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돈이 주는 기쁨이나, 명예가 주는 기쁨, 그리고 세상이 주는 기쁨은 순간적인 것이지 영원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것 저것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므로 그런것을 통해 기쁨을 누려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고 싶은가? 그러면 이발을 하라. 한 주간을 기쁘게 살고 싶은가? 그러면 차를 사라. 한 달을 기쁘게 살고 싶은가? 결혼을 하라. 한 해를 기쁘게 살고 싶은가? 새 집을 지어라." 맞습니다. 머리를 깍고, 자동차를 사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새 집을 사는 것은 분명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쁨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주는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하루, 어떤 것은 한 주, 어떤 것은 한 달, 어떤 것은 일 년 정도 밖에는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모두 그 기쁨에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진정한 기쁨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기쁨을 찾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해도 식지 않는 기쁨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생겨난 기쁨'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진정한 기쁨과 행복, 그리고 만족을 누리게 해 줍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진정한 만족을 누리며 살려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옳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만족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분으로 만족하며 살 때 비로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소원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잠 16:9).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도 이루어주십니다. 악한 세상의 아버지라 할지라도 자식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주지 않습니다. 악한 아버지라 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합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떨까요? 우리가 달라고 할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가장 큰 본분은 하나님 한 분만을 기뻐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다 아시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기뻐하고 그 분만을 신뢰하며 사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소원을 성취하시길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아무리 소원을 많이 품고 있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소원이야 만이 올바른 소원 성취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소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소원을 이루며 삽니다. 그러나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도리어 그들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어릴 때 품었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구태여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있나요?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사람의 소원 성취는 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므로 그 영혼은 예수님을 믿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믿음의 소원을 아뢰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는 마음의 소원을 믿음으로 아뢰어 응답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에스더 왕비는 자기의 목숨을 내어 놓고 유대인들이 구원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소원을 품었습니다.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에스더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폭풍이 치는 캄캄한 바다 위에서 생사의 기로를 경험했던 베드로를 보세요. 그는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 오실 때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나로 하여금 물위를 걸어오라고 하세요!라는 마음의 소원을 가졌습니다. 다른 제자들이라고 물 위로 걷고 싶어하는 소원이 없었을까요? 다른 제자들도 마음 속으로는 다 물위로 걸어 보고픈 소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물위로 걸어 본 사람은 오직 베드로 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물위로 걷고 싶다는 소원만 가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라 하면 자기는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물위를 걷는 최초의 인간이었으며 마지막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방법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기에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마음의 소원을 믿음으로 아뢴 사람은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됩니다.

어떤 교회에서 일본에 한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본에 있는 교회는 개척 교회이지만 그 교회의 집사님이신 하시모토 부부가 선교사님의 자동차와 사택비, 그리고 사례비를 모두 담당할터이니 선교사님만 파송해 달라는 조건으로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 교회는 4년 동안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하시모토 집사 부부는 수십 억원을 들여 건물을 매입하고 예배당을 봉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인 집사부부에게서 이런 멋진 신앙이 생겼는지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했습니다. 하시모토집사님의 아내는 한국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어린 딸이 유치원에 다닐 때 쓴 일기를 아버지가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그 일기에 큰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 딸이 쓴 일기장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선생님이 나의 소원이란 제목으로 글짓기를 해오라고 하셨다.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 엄마의 소원이기도 하다. ‘엄마는 기도할 때마다 일본에 와 있는 동포를 위해 예배당 하나만 갖게 해주세요’라고 늘 기도한다. 나의 소원도 엄마를 위해 예배당 하나만 주세요” 이다. 이 일기를 읽은 아빠는 내가 반드시 딸의 소원을 들어 주마! 라고 마음에 약속을 하고 4년 만에 예배당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한 것입니다. 어린 딸 아이의 마음에서 나온 믿음의 소원을 하나님이 그녀의 아버지를 통해 이루도록 역사해 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고 마음의 소원을 아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그 분께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아뢰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의 소원이 있나요? 그 마음의 소원을 믿음이 받쳐주고 있나요? 사람들은 그냥 생각만 하고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줄 압니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생각하는 것을 믿음이 뒷바침 할 때 하나님이 이루어주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그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올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인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직장의 문제, 물질의 문제, 신앙의 문제, 그리고 개인의 문제 등을 하나님께 올려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