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9.10 조용한 가운데 만나 주시는 하나님 왕상19:9-16

지금부터 9년 전인 2008년 9월 달에는 허리케인 아잌이(Ike) 텍사스 지역으로 지나가면서 미국에서 사용하는 개스의 20%를 담당하는 공장에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로 인해 갑자기 기름값이 폭등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개스 스태이션으로 몰려 들었지만 돈이 있어도 차에 기름을 넣지 못하므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모습들로 장사진을 이룬적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미국 전역에 개스 파동이 일어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제 겨우 안정이 되는가 싶은데 또 다시 허리케인 Harvey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텍사스에서 공급되는 개스가 차단이 되므로 여기 저기서 개스값이 폭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러움이 한번씩 지나갈 때마다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어렵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살림에 더 큰 짐이 지워지므로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쇼핑을 가면 가격들이 모두 올랐습니다. 전에는 $50정도면 되던 쇼핑이 이제는 $80-$100 정도 들어 갑니다.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마음을 다짐해 보다가도 다시 지쳐서 자포자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어려움을 당하며 사는 우리의 심정은 마치 엘리야가 어려움을 당하여 좌절되고 낙심 되어 로뎀나무 아래 앉아 있던 그 심정과 같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자 좌절과 낙심이 되어 하나님께 자기를 죽여 달라고 애원합니다. 엘리야가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을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불로 응답 받아 대 승리를 거둔 사람입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잠시뿐이었습니다. 바알을 섬기던 이사벨이 엘리야에게 보복을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해 왔기 때문입니다.

 

내일 이맘 때쯤이면 바알 선지자들과 같은 모습으로 너도 죽을 것이라는 경고장을 보낸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사벨로부터 그 경고장을 받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을 쳤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 목숨을 내 놓고 힘겨운 대결을 막 치룬 후였습니다. 이제 대 승리를 거두어서 마음 놓고 하나님을 편안하게 섬기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그를 두렵게 하는 일이 터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남쪽으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로뎀나무 그늘 아래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의 소원대로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쉬게 하시고 또 다시 물과 떡을 공급해 주시므로 엘리야가 힘을 얻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호렙 산까지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거기서 만나 주셨습니다. 완전히 죽음의 공포로 지쳐 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다시 힘을 주셔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때로는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지치고 용기를 잃을 때가 있습니다. 힘들어서 엘리야 처럼 축 늘어져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스스로 자포자기하여 쓰러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 달려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아주 쉬우면서도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굴속에 있던 엘리야 선지자를 밖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밖에 서 있자 갑자기 강한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그 바람은 폭풍 만큼이나 강했을 것입니다. 이때 엘리야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자이시기에 분명 이런 강한 폭풍 속에 임재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임재를 크게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폭풍속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강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온 땅이 소란스럽게 흔들립니다. 엘리야가 공포를 느낄 정도로 강한 지진이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일본을 방문 했을 때 지진을 경험했는데 말로만 듣던 지진을 진짜 몸으로 체험을 했습니다. 물론 6-7도 정도의 강도의 지진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런 지진이었다면 건물이 다 무너지고 그래서 우리 부부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4도 강도의 지진이라서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하나님이 일본이 겪는 고통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번 방문 때 경험을 해 보라고 기회를 허락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에게 나타났던 지진은 아마 이번에 멕시코에서 일어났던 지진 만큼이나 강한(8.1도) 강도의 지진이 아니었나 추측을 해 봅니다. 이렇게 강한 지진이 일어나서 온 세계가 다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하나님이 그속에 나타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했지만 또 실패를 했습니다.

 

지진이 지나간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엘리야 앞에 불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불 가운데 임재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 가운데에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강한 폭풍이 지나갔을 때도, 그리고 강한 지진과 불이 지나갔을 때도 하나님은 임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난 후 사방은 조용해 졌습니다. 적막이 흘렀습니다. 그때야 비로서 미세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임재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엘리야의 신분이 누구인지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또한 엘리야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낙심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던 엘리야는 이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므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살 용기가 없으니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썼던 엘리야를 하나님은 만나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새 힘을 주시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으면 모든 것이 잘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능력자 이시기에 나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에 당연히 모든 것이 잘 풀려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은 능력자 이십니다. 그 분의 능력으로 우리가 사는 우주가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그 분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될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어려움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에 의심을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예수 믿는것을 별볼일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점점 뒤로 후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곤두박질쳐서 회복이 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나요? 가장 큰 이유는 죄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죄인입니다. 죄인들은 죄로 인해 이 세상에서 허덕이며 삽니다. 그러다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죄인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를 믿을 때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까지는 마귀의 종의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은 사람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히 기쁨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13절에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라고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마귀의 권세 아래서 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해결 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사는 사람은 예수 믿고 나서 힘든 일이 찾아오면 예수 믿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가 완전히 회복된 곳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임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때, 그 때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는 이 세상에 악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더 이상 슬픔이 없습니다. 더 이상 근심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업을 하느라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직장 다니느라 힘들어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우리의 삶에서 고통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만이 존재하는 평화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때로 힘든 일을 만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완전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악인들이 함께 사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늘 악한 자들을 부추겨서 악을 창출해 내므로 고통의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다 못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예수님을 대적하며 죽이려고 한적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악한 헤롯을 통해 태어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파도를 일으켜 주므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도 어려운 일을 늘 만나셨습니다. 우리에게만 힘든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도 어려운 일이 늘 생겼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는 어려움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려면 서로 경쟁하며 살아야 하기에 사람들 사이에 늘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형제와 형제들 사이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도 늘 평화가 깨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서로 죽이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이곳은 죄악이 들어와 평화가 깨진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그런 세상 속에서 살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잘해도 나쁜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잘못하므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며 사는 사람과 믿지 않고 사는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살려고 발버둥칩니다. 자기의 재간으로 살려다 보니 낙심되고 좌절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혼동이 생깁니다. 그래서 좌절되고 낙심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 해 주시길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산다 할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때로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것을 감당하도록 지혜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낙심되는 일이 생길 때도 주님이 우리의 손을 붙잡고 가시기에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비록 힘든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른 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도 때로는 엘리야와 같이 낙심과 좌절이 찾아 올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다시 힘을 얻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엘리야를 보세요. 그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자 다시 힘을 얻어서 달려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좌절되고 낙심 될 때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요란한 천둥 번개와 같은 속에서 임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때로는 불가운데서 임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나 사람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엘리야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을 보니 폭풍이 치는것 같이 요란한 가운데 임재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지진과 같이 혼란스러운 환경에 임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불 가운데도 임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용할 때 임재하셔서 엘리야를 만나 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오늘 날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는 방법도 이런 방법으로 만나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언제 여러분의 마음에 깨달음을 주시던가요? 여러분이 정신 없이 이리뛰고 저리뛸 때 찾아오셔서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던가요? 우리가 세상 속에 깊이 파묻혀 정신을 빼앗길 때 찾아 오셔서 말씀해 주시던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상태 속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복잡한 일들을 다 내려 놓고 조용한 시간을 만들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때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인도함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침묵의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조용히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바쁘고 분주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용하게 있을 수 있는 짬이 조금도 없이 삽니다. 한 마디로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고 있습니다. 가진 것은 더 많아 졌고 우리를 돕는 다양한 전자 제품들은 늘어나서 편리하게는 살고 있지만 마음의 여유는 더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바쁘고 분주한 환경 속에 살다 보면 조용하게 침묵을 지키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분주하게 살지 않으면 이상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또 다시 이것 저것 분주하게 일을 만들어 좇아 다닙니다. 이렇게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잠시 조용한 시간을 만들어 주님과 교제를 한다는 것은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돌아 볼 여유가 없게 스케쥴을 짜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침묵의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침 오전 8시 50분발 기차가 역에 도착해서 승객들은 대기실에서 나가 기차를 탔으며 기차는 곧 떠났습니다. 역장이 기차가 출발한 것을 확인하고 출입문을 닫았습니다. 바로 그때 한 신사가 급히 달려와서 역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기차를 타려고 25달러 짜리 티켓을 샀는데 오늘 늦어서 그 기차를 놓쳐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역장이 그 신사의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 안심하시고 저 안에 들어가셔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신사는 역장의 친절한 말을 듣고 역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안에는 큰 책상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수많은 전도책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책들은 매우 정돈이 잘되어 있었고 사람의 눈길을 끌만큼 훌륭했습니다. 그방은 아주 조용 했습니다. 그러자 마음도 차분해 졌습니다. 그러자 그 신사는 자리에 앉아 거기에 있는 책을 집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역장이 플랫폼에 서 있는데, 기차가 도착하자 한 신사가 내리더니 역장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역장님,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아, 물론 기억합니다. 당신은 얼마 전에 기차를 놓쳐서 곤란을 겪었던 분이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 때 저는 기차를 놓쳐서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날 아침에 나는 기차를 놓친 대신 나의 구원자를 발견했습니다. 그 전까지 나는 사업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나는 당신의 방에서 조용히 그 분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의 마음 속에 말씀하실 수 있도록 잠시 세상의 바쁜 스케쥴에서 떠나 조용한 시간을 만들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임재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말을 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시 46:10에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우리가 가만히 있을 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이리뛰고 저리뛰느라 분주한 마음을 중단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만물의 통치자이시며 재판장이신 그 분에게 듣고자 하는 마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능력자 이시며 내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동동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탁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너무 분주하고 시끄럽고 잡음이 많이 들리는 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우리의 마음에 말씀해 주시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실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알고 앞을 향해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불안한 사회와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우리의 앞날이 불확실합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자연재해인 홍수와 지진과 산불의 재난은 이제 점점 더 마지막 때가 다가왔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운영하는 가계도 불안합니다. 직장도 불안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자랄 것인지도 장담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의 건강도 우리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더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바쁘게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용기를 얻어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먼저,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물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지금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다 보면 세상의 물결에 휘말려 떠내려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을 즐거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목적의 인생을 살려면 내가 지금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내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목적이 분명히 마음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기뻐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말씀을 떠나서는 역사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읽는 자의 마음 속에 깨달음을 주시고 어떻게 살 것인지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들려 주시는 음성은 더더욱 듣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열심히 읽을 때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울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거울을 만들면서부터 인간의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울에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얼굴과 비교하므로 시기와 질투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울이 갖는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거울은 우리의 생활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울이 사물을 솔직하게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꼭 지녀야 할 거울이 있습니다. 그 거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어떤지 가장 솔직하게 비춰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고 개선해 나가는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옳바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매일 하나님 앞에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므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