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10.1 열매를 맺는 삶이 되자 마21:18-22

이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가을하면 우리는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나무를 생각나게 만듭니다. 빨갛게 익은 홍시가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감나무에 달려 있는 그림이 연상이 됩니다.

그뿐인가요? 가을을 생각하면 한해가 저물어 간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가울이 지나면 겨울이 다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가을은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우리 마음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는 도전을 주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무화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해서 예수님으로부터 저주 받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삶에서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할 때 저주를 받게 된다는 교훈을 주십니다. 그리고 두번째 주제는,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이 믿음의 기도를 하면 응답 받는다는 것을 교훈해 주십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첫번째 가르침에다 초점을 맞추며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열매 맺지 못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심각하게 받아 들이므로 도전을 받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주무시고 이른 아침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 가시던 중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기에 아무 것도 드시지 않았기에 예수님은 시장하셨습니다. 이때 주위를 둘러 보자 거기에는 잎이 무성한 무화가 나무가 하나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나무에게 가셔서 무화과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는 무화과 열매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열매를 맺지 않은 그 무화나무를 보시고 “지금부터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즉시 그 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이 무화과 나무의 저주 사건은 믿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열매 없는 나무는 예수님의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무화과 나무의 저주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이런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재림하셔서 모든 민족을 앞에 모으고 심판을 하실 때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맺은 열매를 내어 놓으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 열매를 내어 놓지 못하면 우리도 똑 같이 영원한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왜 크리스천들이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할까요? 그 이유는 창조주이신 우리 하나님은 목적 없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만드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하나 나름대로 목적이 있어서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각자 만들어진 목적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나중에 쓸모 없이 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 가시다가 시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에게 가셔서 열매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기자는 이렇게 덧붙여서 말합니다. 이때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니라.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철이 아니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가 나무에게 열매를 요구하셨을까요? 그리고 열매를 내어 놓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 사람들이 이 말씀에 대해 의아해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불신의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을 잘 이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이 철도 아닌 무화과 나무에게 열매를 요구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기후 상으로 6월과 9월 1년에 두 번 무화과 열매를 거둡니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의 특성은 열매를 맺히면서 잎이 나오는 나무입니다. 그러기에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나는 이미 열매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나타내 보여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 무화과 나무에게 가셨나요? 그 나무는 열매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겉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잎만 무성했지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무성해서 열매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이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열매 없는 화려함은 반드시 멸망을 초래한다는 실물 교육을 시키고자 그 나무를 마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기가 막히게 하나님을 겉으로 잘 섬기는 의식이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 같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의식이 대단했습니다. 자존심이 보통 강한 것이 아닙니다. 목에 힘을 줍니다. 눈에는 핏발이 서도록 힘을 줍니다. 목은 뻣뻣하게 굳어져 있습니다. 열심히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것을 겉으로만 보면 진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하나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왜 진정한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고 성경은 지적하는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부터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라는 것을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러기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희생제사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드리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단 한번의 제사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고 오신 어린양을 알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같이 보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건한 사람들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메시야를 거부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무성한 무화과 나무 같이 잎이 무성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이 원하실 때 내어 놓을 만한 신앙의 열매는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입으로만 그리고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같이 보였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 무화과 나무를 통해 겉만 무성하게 보이는 열매 없는 유대인들은 반드시 심판 받게 될 것이라고 이 무화과 사건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 말씀은 단지 유대인들에게만 경고하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지금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도 경고를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 속에 없기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모두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같이 보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예수님을 잘 믿다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께 칭찬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신 차려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고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지 않았나이까”라고 외칠 사람들이 나온다고 마태복음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또한 지혜롭지 못한 다섯 처녀와 같이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오시면 단장된 신부와 같이 준비하고 있다 혼인잔치에 참여해야 하는데 열매 없는 삶을 살다 밖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사람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성도들은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런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삶에서 그런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3장에 보면, 지혜로운 건축가와 어리석은 건축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혜로운 건축가는 재료를 기가 막힌 것으로 사용합니다. 금과 은 그리고 보석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건축가는 나무나 짚 그리고 풀로 집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짓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것입니다. 내 인생 내 것인데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인데 내 멋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에 따라 테스트를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테스트는 바로 불입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맺었던 모든 열매가 바로 공력인데 그 공력이 불가운데로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을 통과할 때 열매가 남아 있는 것만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 만약 열매가 불에 다 타서 없어져 버리면 증거가 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에 타지 않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겉으로만 화려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 같은 인생일까요? 그래서 나중에 불로 테스트할 때 다 타버릴 나무나 짚이나 풀로 지은 집과 같은 것일까요? 그것은 먼저 겉으로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동들을 말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일을 했다 할지라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면 나중에 다 타버리고 맙니다.

헌금을 할 때도 남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 주는 것도 남에게 칭찬 들으려고 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기 위해 합니다. 봉사를 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기 원해서 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지만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이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세상에서 사람들로부터 상급을 다 받았기에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광을 다 취해 버리면 하늘 나라에서 얻을 상급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기에 남에게 칭찬 듣기 위해 선한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유대인들 중에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특별한 사람 같이 보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길 거리에서 기도를 합니다. 잔치에 참석해도 상좌에 앉으려고 노력합니다. 도와 주는 것도 사람들이 보는데서 도와 줍니다. 무엇이든지 칭찬을 받기 위해서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마치 열매 없는 무성한 잎만 가진 무화과 나무와 같다고 책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억지로 하는 일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열매가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해서 하지 않는 일은 별로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구원시켜 주셔서 감사하고, 이 세상 사는 동안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감사해서 기꺼이 충성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열매로 맺어집니다. 그러나 죽지 못해 억지로 하거나, 마지 못해 하거나, 의무적으로 하는 일은 하기는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공력도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기에 해야 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가 하니까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하라고 하니 기쁘게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롯을 보니 아브라함을 따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롯이 위대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이 하니까 따라 하고 남이 안 하니까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 중심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는 일이어야 타지 않는 공력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타지 않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선한 행실이 다 금과 은과 보석의 열매들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는 자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열매 맺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은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면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아주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하면 귀한 열매가 됩니다.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이런 일을 하지 못합니다. 구약의 사울 왕을 보세요.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전쟁에서 이기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나요? 아닙니다. 처음으로 그가 한 일은 자기의 이름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진짜 겸손하지 않으면 이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나타내고자 결단할 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선한 일을 하되 도로 받고자 하지 않는 마음으로 하는 일들이 바로 열매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라.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 갚음을 받겠음이니라”(눅14:13-14). 도움을 받은 자가 되 갚기를 기대하기 보다 하나님이 갚아 줄 것을 생각하며 하는 일들은 모두 열매를 맺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줄 때는 그 사람이 나에게 다시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방법은 선한 일을 할 때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쌓아 두는 물질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가 됩니다. 이 세상에 쌓아 두는 것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다 타 버립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 예수님의 계좌에 넣어 둔 물질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늘에 쌓아 둘 수 있나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리는 물질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모든 것이 다 하늘에 쌓아집니다. 성도들이 하늘에 쌓는 물질을 통해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데 사용하십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것을 먹고 마시든 모두 주님의 나라를 위해 할 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가 됩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주님의 나라와 연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서 먹고 내가 좋아서 마시면 안됩니다.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은 건강한 육체를 얻어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의 육체나 쾌락을 즐기기 위해 먹고 마십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육체는 다 주님의 소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육체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주님을 위해 쓰임 받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도 다 주님을 위해 하고자 할 때 나쁜 음식이나 나쁜 습관으로 인해 자신을 해치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열매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들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진짜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는 일들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룬다 해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는다면 마지막 때 다 타 버리고 말게 됩니다. 다행히도 구원 받은 자라면 롯과 같이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후회해도 때는 늦게 됩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많은 능력을 많이 주셨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하여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모든 것이 열매로 맺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면 모든 것이 다 허사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도 끝까지 해야 합니다. 끝까지 충성해야 열매로 이어집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한번은 전쟁에 져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른 군사들은 모두 달아나 버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도망을 가면서 말 안장에 무거운 짐을 실 하나에게 끌고 가게 했니다. 사병은 그 명령을 충성스럽게 실행했습니다. 전쟁에 지므로 도망가는 길이기에 말은 제대로 먹지도 못해 그만 가다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병사는 말 잔등 위의 무거운 짐을 자기 등에 지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고 걸어서 드디어 목적지까지 도착했습니다. 다른 병사들은 다 도망을 갔고 오직 알렉산더 대왕과 그 병사 하나만이 남았던 것입니다. 그때 알렉산더 대왕이 그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이제껏 네 등에 메고 온 물건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러자 병사는 ‘모릅니다.’ 그가 무겁게 지고 온 것은 금덩어리였습니다. 그 후 알렉산더 대왕은 위기를 모면하고 전쟁에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되찾고 부귀영화를 다시 회복했을 때 그 병사를 불렀습니다. 왕은 그 병사를 칭찬하고 그 병사가 짊어지고 왔던 짐을 전부 주었습니다. 금덩이가 담긴 짐이었습니다. 끝까지 충성한 자에게는 보상이 있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을 위해 열매 맺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초점 맞춰진 인생이 아니라 주님께 초점 맞춰진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어 이 세상 사는 동안이나 천국에서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열매 맺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