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10.15 낙망하지 않고 기도하려면 눅18:1-8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위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만큼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호흡을 해야 살 수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를 해야 신앙적 삶을 제대로 유지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사무엘 선지자는 “내 평생에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라고 결단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늘 쉬지 않고 기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 생활을 제대로 유지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이세상에 오셨을 때 피곤한 육체를 이끄시고 쉬지않고 기도하시므로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중요성을 안다고 말하지만 기도를 하다 중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도한 것이 즉각적으로 응답이 오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쥔다면 좋은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문제가 즉각적으로 해결이 된다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기도한 것이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면 재미가 있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해도 사생결단하며 기도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기도란 때로 금방 응답이 되기도 하지만 응답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를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방법대로 하므로 기도에 응답 받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덯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나요?

먼저, 기도할 때 끈질기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이야기를 통하여 기도의 응답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쉽게 낙심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도할 때 기도의 응답을 반드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어느 도시에 하나님이나 사람을 무시하는 무례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살고 있는 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과부란 힘이 없습니다. 남편이 있어야 달려 들어서 일을 처리할 때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과부와 고아들은 약한 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과부가 억울해서 자기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재판장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관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이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재판관이 무엇이 두려워 가난한 과부의 간청을 들어줄까요? 그것은 어림없는 일입니다. 돈 많은 사람이 왔다면 돈 때문이라도 들어 주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힘 없는 과부이니 들어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찾아와 몇 번이고 간청하는 과부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쉬지 않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너무 자주 찾아오기에 괴로울 지경입니다. 너무 자주 찾아와서 밤에 잠을 자는데 굼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견디다 못한 재판관은 이렇게 생각 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저 과부의 간청을 빨리 들어주므로 내가 자유함을 얻어야 겠다”라고 하며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게 악한 재판장이라도 과부가 귀찮아서 그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사랑이 넘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밤낯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한다면 그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을 쉽게 말한다면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한두 번 기도한 후 응답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이 올 때까지 낙심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 생활이란 인내를 요구합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인내가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인내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독교의 성자하면 어거스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방탕아가 되어 술과 여자로 세월을 낭비하는 아주 엉망진창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주색잡기에 빠져있는 아들을 놓고 밤 낯 쉬지 않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1년도 아닙니다. 10년도 아닙니다. 아들이 회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장장 30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물론 그녀의 마음에도 낙심이 찾아 왔을 것입니다. 이 아들이 과연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30년 동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그 아들이 방탕한 생활에서 돌아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냥 예수만 믿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를 정립하는 위대한 신학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맷돌은 천천히 돌려야 곡식이 부드럽게 갈립니다. 급하다고 빨리 돌리면 가루가 거칠어집니다. 큰 강물은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도 빨리 흘러갑니다. 그러나 도랑물은 빨리 흐르는 것 같아도 더디 흐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많이 지체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시간은 지체하거나 머무르지 아니하고 정하신 때를 향해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되돌아온 반송소포가 많다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기도 성도들이 하나님이 보내 주신 기도의 응답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중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취인 불명”이라는 응답의 소포가 되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엘리야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3년 6개월 동안 하늘 문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을 때 그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합니다. 엘리야는 얼굴을 두 무릎사이에 묻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지 사환에게 가서 보고 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종이 몇번이나 달려가서 바다 쪽을 바라 보았나요? 일곱 번입니다. 엘리야는 중단하지 않고 언덕에 올라가 바다를 살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일곱 번째 언덕으로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 보던 사환이 달려와서 대답을 합니다.

지금 저 멀리 바다에 사람의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입니다!”(왕상18:44). 엘리야 선지자는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응답이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면서 낙심치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끝까지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내가 네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기도의 제목을 놓고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과부와 같이 당장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인내하며 기도하는 성도가 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지금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요? 그 기도 제목 놓고 과연 얼마나 기도 하셨나요? 혹시 두세 번 하고 응답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나요? 저는 여러분 모두 쉽게 낙심하지 말고 응답 될 때까지 기도하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간절히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구약 시대에 엘리야 선지자는 이러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합이라는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그가 악한 이세벨이라는 아내와 합심하여 어찌나 우상을 섬기는지 믿는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면 핍박을 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를 다 부수어 버렸습니다.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모두 산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목회를 하던 엘리야 선지자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아합과 이사벨의 악함에 맞서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을까요! 엘리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온 땅이 가뭄으로 인하여 바싹 말랐습니다. 그리고 3년 반이 지나자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갈멜산에서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 가려 내는 대결을 벌렸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불을 받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런 후 엘리야는 간절한 심정으로 또 하나님께 비가 오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소낙비를 그 땅에 내려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엘리야란 사람은 선지자였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특별히 응답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아니기에 응답해 주시지 않을 겁니다. 이런 핑계를 대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피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미리 대답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반 동안 비가 아니 오고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기에 기도에 응답 받은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이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면 좋고 응답해 주시지 않아도 상관 없다는 마음으로 하면 안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는 사람은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구해주지 않는다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외치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어느 신학생이 군복무를 위해 입대했을 때 경험했던 이야기 입니. 그는 주일이 되었을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는 드려야 하는데 환경적으로 허용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근무로 인해 교회에 없다는 것을 알고 필사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하나님, 누군가가 저를 교회에 있도록 시간에 저에게로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그런데 바로 그때에 의무적으로 기독교인들 중에 예배에 참석하도록 차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교회에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군인들 중에서 주기도문을 외울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외워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주기도문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매주일마다 의무적으로 교회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문구를 외우고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 속해 있는 환경속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믿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낙심ㅎㅏ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들도 삶 속에서 이러한 일들을 늘 경험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며 살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이야기를 마치시면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러한 간절한 믿음으로 기도하는 과부와 같은 믿음을 예수님이 이세상에 다시 오실 때 찾아 볼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점점 세월이 지나 갈수록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들을 찾아 보기 힘들어 진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세상을 가만히 보면 구태여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합니다. 돈만 있으면 얼마나 편리한 세상입니까. 돈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세상같이 보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으며 산다는 것은 고리타분하게 느낍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만 있으면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달콤한 생각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돈만 가지면 될 것이라는 돈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부추기며 유혹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세상이 주는 쾌락을 쫓아 하나님을 떠나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줄 것 같이 유혹하지만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고 할까요?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지나요?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믿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말라 죽겠다고 아우성을 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셨나요? 모세가 가지고 있던 것은 오직 지팡이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 지팡이는 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목동이 사용하던 나무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께 따졌을 것입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나요? 쇠로 쳐도 깨지지 않을 바위 덩어리를 나무 지팡이로 치라고 하시나요?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 하시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했나요?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무 지팡이로도 큰 바위를 깨뜨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지팡이로 반석을 치자 물이 철철 넘쳐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어떠한 일이든 할 수 있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스 그래이스라는 사람이 “내 인생을 바꾼 가족 사랑”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녀는 그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다섯 살짜리 딸이 아빠에게 다가와 다소 괴로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빠, 너무 더운데 수영장에 가면 안돼?” 아빠는 딸에게 “나중에 가자꾸나”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딸 아이가 자꾸 “왜 오늘은 안 돼?” 하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아빠는 수영장에 갈 돈이 없어서 못간다고 하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딸아이는 아빠의 말을 듣자 마자 나는 하나님한테 부탁할 거야!” 라고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딸을 보자 아빠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딸 아이의 방문 앞에 서서 딸이 무엇을 하는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여기는 오늘 너무너무 더워요. 진짜 너무너무 더워요. 그래서 나는 수영장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아빠는 돈이 없어서 저를 데려갈 수 없대요. 그러니 제발 하나님이 어떻게 좀 해 주실래요? 고맙습니다. 하나님. 아멘.”

기도를 마친 아이는 자기 방으로 달려가서 수영복을 입는 것입니다. 목에다 수건을 두르고 현관을 향해 걸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밖에 나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건지 기다릴 거야!” 딸아이는 무릎에 팔꿈치를 붙이고 손에 턱을 받친 자세로 현관 앞 계단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집에 있는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이웃집에 사는 부인이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친해지면 좋겠어요. 우리가 지금 컨트리클럽으로 수영하러 가려고 하는데 함께 가면 어떨까요? 저희에게 무료로 수영할 수 있는 티켓이 있거든요.” 이때 그 딸의 아빠는 얼른 대답했습니다. “좋지요! 그런데 언제쯤 가실 계획인가요? 저희가 준비할 시간이 좀 필요한데요….” 그러자 이웃집 부인이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우리도 아직 준비가 전혀 안 됐거든요. 사실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수영장에 갈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가고 싶어서 전화 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는 나이가 상관 없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상관 없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는 남자나 여자가 상관 없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때와 장소가 상관 없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기도할 때는 기도의 응답을 받기 원해서 합니다. 그러나 기도에 응답 받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에 끈기가 없어서 포기 하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에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에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믿음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기도 하므로 우리가 기도한 것들을 응답 받으며 살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