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10.29 균형을 이루는 성도의 삶 골1:3-8

성도 여러분! 사람은 무엇이든지 균형이 잡힌 삶을 살아야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돈만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행복한 삶이 아닙니다. 돈도 좋은 일에 적당히 쓸 줄 알아야 균형 잡힌 삶이 됩니다. 운동이 좋다고 하루종일 운동만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휴식도 취해야 균형 잡힌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은 벌기 싫어하며 돈 쓰기만 좋아한다면 그것도 균형 잡힌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좋다고 집안 일은 팽개치고 놀러 만 다닌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가정에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어떤 일이든 균형이 잡힌 삶을 살아야 행복한 인생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생활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잘못된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신앙 생활에도 알 것은 알고 할 것은 잘 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균형 잡힌 신앙인인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인정해 주시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들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왜 골로새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는 것일까요? 그들이 사도 바울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줘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사도 바울에게 특별한 일을 해 주었기에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를 한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만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골로새 성도들이 균형 잡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균형 잡힌 신앙 생활을 해야 진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균형 잡힌 모습이 될 때 또한 목회자도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왕 신앙 생활하려면 하나님도 기쁘시게 해야 하며 목회자도 기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목회자가 그 성도를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성도라고 생각 하시나요? 목사가 여러분 자신을 위해 늘 기도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침마다 저는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 가며 한명 한명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떨 것 같나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마다 사도 바울 같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것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아니면 마음 아파하며 기도할 것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이왕이면 목사가 감사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지금 2017년도가 끝나가는 10월의 마지막 주일 예배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올 한해를 어떤 모습으로 끝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하며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올 한해가 다 가기 전에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까요? 마음에 소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는 성도가 된다면 하나님도 기뻐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균형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먼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교회에 다니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믿음을 가지라는 말인데 성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성도의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사실은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믿음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믿음이 무엇인지 대답을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란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많이 내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많이 도와 주는 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는 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말한 모든 것들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외형적인 모습입니다.

이게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면 이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교회에 잘 나오고 하나님께 예배도 잘 드립니다.

믿음이 좋으면 헌금도 하나님께 많이 드립니다.

믿음이 좋으면 다른 사람을 도와 줍니다. 믿음이 좋으면 기도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것들 중에 어떤 것이 믿음이 좋은 행동이고 어떤 것이 믿음이 작은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신앙 생활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런 것들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여기에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만약 이 이 진짜 살아 있는 꽃이라면 반드시 향기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꽃이고 꽃에서 향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믿음이 있기에 나오는 여러 가지 믿음의 행동들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믿음이 무엇일까요? 어느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갖도록 도와 주소서라고 간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너희에게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리라.”

믿음이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믿음이 크거나 작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믿고 신뢰한다고 모든 사람을 다 똑 같이 신뢰하게 되던가요? 어떤 사람은 조금 신뢰합니다. 어떤 사람은 반 정도 신뢰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신뢰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되 나의 구원자이심을 신뢰하는 믿음이 바로 구원 받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기초가 바로 구원 받는 믿음입니다. 구원 받는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의 믿음은 종교적인 믿음입니다.

구원 받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아담의 죄로 인해 죄인이 되어 영원한 지옥에 갈 팔자였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내 죄를 용서해 주셨기에 이제 영원한 천국에 가서 살 수 있는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게 됩니다. 이게 바로 구원 받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믿음을 가진 사람의 그 다음 단계는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렵고 힘든 일도 주님께 기도하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순종한다고 했을까요? 사람에게는 이런 기적을 일으킬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력자이시기에 그런 일을 능히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그 믿음을 통하여 산을 옮겨 주시는 기적을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은 우상숭배의 땅인 우르아 갈대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75세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100세 때 비로서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00세에 낳은 아들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나요? 비록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죽인다 해도 하나님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칼로 자기의 독생자 이삭을 죽이려고 내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런 믿음과 확신이 없었다면 절대 그런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기의 눈으로 보고 자기의 손으로 만져보고 실상을 파악한 다음에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도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그 예수님의 손바닥이나 옆구리를 내 손가락으로 직접 찔러 보고 만져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불신앙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봐야만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눈에 실제로 보여지기 전에는 믿지를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며 살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구원 받는 믿음이 확실하게 있나요?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게 없으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불신자입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 다음에 구원 받은 믿음은 불씨가 되어 큰 불을 일으켜야 합니다. 구원 받는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바로 구구단과 같은 것입니다. 구구단은 아주 쉽지만 모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구원 받는 믿음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이 구원 받는 믿음을 가지고 삶에서 믿음의 응용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곳에서든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노라 하지만 늘 실패자와 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입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될 일도 안됩니다. 입이 먼저 긍정적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도 긍정적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어느날 자기 아들이 간질병에 걸려서 고생을 하자 그 아버지가 예수님께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  뭐라고 간구했나요? 예수님, 당신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갔는데 그들이 능히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주님이 무엇인가 할 수 있거든 내 아들을 좀 살려 주세요? 이때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부정적인 입술과 마음을 먼저 고쳐 주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능력만 생각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나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말도 하고 기도도 하시며 행동으로 옮기기를 바랍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열매입니다.

성도 여러분! 남은 2017년도도 여러분의 삶에서 믿음이 용솟음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까지 제자리에 앉아 잠자던 신앙을 깨우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행운만 바라는 신앙이 아니라 이제 열심을 다해서 말씀을 붙잡고 살고자 결단하시길 축원합니다. 이제 열심히 기도하고자 하는 믿음의 행동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열심을 다해 예배에 참석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열심히 전도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모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을 칭찬하며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을까요? 그들이 이런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믿음의 성도가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는 성도가 되고자 결단 내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왜 사도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 기도를 했을까요? 그들에게는 사랑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이 없는 세상은 마치 황량한 사막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자식과 부모간에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어 있고 친구와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인간은 그 사랑을 상실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세에 사랑이 식어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징조가 무엇이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나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좋아 한다고 디모데후서 3장에서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시지만 사람들은 점점 인격체가 아닌 비 인격체를 사랑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말세의 징조인 것입니다.

엇그제 뉴스를 보니 지난 10월25일날 사우디 아라비아라는 나라에서는 여자로 만들어진 로보트인 소피아에게 사우디 아라비아의 시민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 인간이 아닌 로보트에게도 시민권을 줍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이 로보트를 물건을 배달하는 일이나 노약자를 보호하는 일을 위해 사용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 미친 사람들은 로보트와 결혼한다고 는 사람들도 머지 않아 나올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제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격체보다 비인격체를 사랑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나는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비인격체인 전화를 가지고 노는 시간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보다 더 많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세요. 성경 읽는 시간은 없다고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그러나 전화를 가지고 노는 시간은 몇 시간씩 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비인격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을 할 줄 압니다. 골로새서 교인들을 보세요. 그들은 하나님을 먼저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흘러 넘쳤던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랑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도록 했으며 그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다리를 놔주는 역활을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사랑을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직접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같은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 로마 군병들에게 모진 모욕과 치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조롱과 야유를 다 받으시며 처참하게 죽으신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나요?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께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먼저 성도끼리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사랑하지만 더 아끼며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우리 교회에 방문자가 오면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보며 감동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으로 가득찰 때 여기 있는 각자 각자가 행복해질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균형 있는 성도가 되는 두 번째 조건입니다. 첫째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의 사랑 장에서는 방언도 하고 천사의 말을 할 줄 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만 요란한 구리와 꽹과리라고 했습니다. 예언을 할 줄 안다고 하고 능력이 있어서 산을 움직인다고 하는 사람도 사랑이 없으면 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는 쓰레기 같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믿음도 있고 사랑도 있는 성도가 되어 균형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성도라면 진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소망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느냐가 다릅니다. 소망이라고 다 소망이 아닙니다. 진짜 소망이 있는가 하면 잠간 있다 사라지는 소망이 있습니다. 부귀 영화를 꿈꾸는 소망을 가지고 살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이 세상에는 우리에게 줄 영원한 소망이 없습니다. 영원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품은 자는 이 세상의 것을 부러워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기 때문입니다. 혹시 예수를 믿지만 아직도 마음 속에 만족감이 없는 분이 있나요? 아직도 이 세상의 것을 손에 쥐어야 만족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은 아직 하나님이 주시는 참 소망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참 소망을 가진 사람은 비록 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렵다 해도 절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이곳에 사는 것은 잠간이고 영원한 천국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이런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사도 바울에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에바브라라는 목사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듣고 신앙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며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그때는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렵고 힘든 핍박과 환란이 와도 그들은 무릎 꿇지 않고 예수님을 믿으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때 테니스 선수로서 세계의 정상을 차지했던 사람이었으나 자살을 시도했던 보리스 백커라는 사람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윔블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했습니다. 우승자들 중 나는 가장 나이 어린 선수였을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부자였습니다.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불행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평화와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살을 하려고 줄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있는 명성과 돈을 다 소유했지만 왜 이런 공허감을 느낄까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소설을 쓴 한 작가는 소년 시절에 알았어야 했던 것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무슨 대답을 했을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는 “최고의 정상에 도달해 봐야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라고 대답니다.

정상에 올랐던 테니스 선수에게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불만스럽고, 자살하고 싶어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 주 하나님은 인간을 오직 그분을 통하여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희망을 갖고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만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때 채워지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성공을 했든 안 했든, 권세를 가졌든 가지지 못했건,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상관 없이 누구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마음 속에 진짜 소망을 품고 살고 있나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소망이 무엇인가요? 그 소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소망이 마음속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 앞에 2017년도가 약 2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머지 시간들을 다룰 수 있는 메니저들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다룰 메니저입니다. 나머지 시간들이 여러분의 손에 들려져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음, 사랑, 소망 이 모든 것을 다 갖추므로 균형 있는 성숙한 성도가 다 되고자 결단 내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