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11.5 죽는 순간까지 승리하는 성도 대하16:7-14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을 배신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본 경험이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배신을 주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배신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 정도로 덤덤해져 가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신 속에  태어나서 배신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배신을 주거나 당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아사라는 왕이 나옵니다. 이 왕은 남왕국의 왕으로서 히스기야 왕을 비롯하여 요시야 왕과 같이 위대한 종교 개혁을 일으킨 멋진 왕입니다.

종교 개혁이란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모든 제도와 환경을 바꾸어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환경을 바꾸어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신앙으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했습니다. 그는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앴습니다. 주상을 훼파하고 아세라 상을 찍었습니다. 잘못된 우상을 섬기던 것을 다 제거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했습니다. 아사 왕이 바로 이런 위대한 일을 한 사람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므로 나라에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모든 것이 잘 되는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아사왕은 시작을 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끝에 가서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교만한 마음으로 살다가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시작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작은 잘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러나 끝까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 시작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끝도 중요합니다. 누구나 처음에 시작은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마무리도 산뜻하게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달리기를 하는 선수는 처음에 죽을똥 말똥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인 지점까지 잘 달려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처음에 신앙 생활을 시작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끝을 잘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신앙 생활할 때는 열심을 내서 봉사도 합니다. 그리고 헌신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축 쳐져서 질질 끌려 다니다 결국 도중하차 하므로 아예 교회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한번도 교회를 가보지 않은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듭니다. 진짜 별종이라서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성격이 괴팍해서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교회를 다녀 본 경험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왕년에 교회에서 열심내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중단하고 교회도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밖에서 교회가 이러니 저러니 하며 비판하고 욕하는 사람들로 변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신앙 생활을 끝까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로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성장하고 있는 성도인가요? 아니면 처음 신앙은 팔아 먹고 점점 뒤로 후퇴하고 있는 신앙인가요?

아사왕이 바로 후퇴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실패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자만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도전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신앙 생활에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죽을 때까지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끝까지 하나님만 신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 놓인다 해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도는 절대 실패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사 왕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사가 처음 왕이 되었을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르호보암 왕과 아버지 아비야 왕이 제거하지 않고 두었던 우상들을 그는 모두 제거했습니다. 솔로몬 왕이 이웃 나라들의 공주들을 데리고와 왕비로 삼고 첩으로 삼았던 여자들이 가지고 온 모든 우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사 왕은 그런 것들을 모조리 다 부수고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는 우상만 제거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구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백성들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하물며 자기 어머니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자 태후의 위를 폐위 시켜 버릴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종교개혁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아니면 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아사 왕은 완전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에게 태평성대를 누리도록 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싸움이 없는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여러 해 동안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전쟁이 있는 곳은 힘듭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시리아 같은 나라는 지금도 평화가 없습니다. 그들의 삶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곳에는 분쟁과 싸움이 쉬지 않고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평화가 깨집니다. 불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평화를 누리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이런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가정에 평화가 깨지나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기에 분쟁이 싹트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경제적으로 풍부한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는 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릴 때 정신 바싹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사 왕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방심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게 되자 아사왕의 마음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은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 마음이 교만해지는 본성이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만 의지하던 마음이 변하여 다른 것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제껏 누리던 모든 것이 내가 잘해서 그런 것 같이 생각이 들어갑니다. 자기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풍성을 누린다고 착각합니다.

아사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서서히 하나님을 의지하던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를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웃 나라의 무기와 군사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무엇인가 잘된다고 생각하는 그때 믿음의 시험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못하도록 환경이 어지럽혀 집니다. 이럴 때 어떤 신앙의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함을 계속 받느냐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느냐가 결정됩니다. 뭔가 잘 되는 것 같은 때에 찾아 오는 시험을 빨리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되는 환경속에 살던 아사 왕에게도 그런 시험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군대를 끌고 유다를 치러 온 것입니다. 이때 아사 왕은 두번 생각해 보지도 않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창고에 쌓아 두었던 은과 금, 그리고 왕궁에 있던 은과 금을 다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보물을 아람 왕에게 보내며 자기를 도와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빨리 와서 이스라엘 왕을 막아 달라고 뇌물을 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신성모독입니다. 이웃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하나님의 창고를 털어서 바친 것은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자 하나님은 선견자를 아사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만약 왕이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이스라엘 왕 바아사 뿐 아니라 아람 왕까지도 왕이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사 왕은 전에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군사 백만과 병거 삼백 승을 이끌고 유다를 치러 올라 왔을 때 아사 왕은 싸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때 아사 왕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부르짖었는지 아세요?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 줄이 없사오니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때 하나님은 아사 왕과 유다 사람으로 하여금 백만이나 되는 구스 사람들을 완전히 진멸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살아서 도망간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사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대 승리를 거두게 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이번에도 아사 왕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면 분명 이스라엘 왕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아사 왕의 마음에는 교만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이웃 나라를 의지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신앙의 실패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의지할 때 실패가 찾아옵니다. 타 버리면 없어질 물질을 의지하면 안됩니다. 물질은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날아가 버리면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버립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아무 것도 없어 오직 주님만 의지하다가 물질의 풍요로움이 생기면 차츰 물질을 의지하게 됩니다. 

높은 지위나 권력도 하루 아침에 별이 떨어지듯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요즘 미국 고위 관직을 가졌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파면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권력을 가졌었지만 잘못 저지른 죄로 인해 구속되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그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지 못합니다.

명예도 잠간이지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선출된 사람들은 웃지만 떨어진 사람들은 얼굴이 울상이 됩니다. 이제껏 권력과 명예를 누리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떨어져 나갑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난감하고 침통합니다. 보기에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그런것 의지해 봐야 하루 아침에 떨어지면 추풍낙엽이 되어 버립니다. 의지할 것이 못됩니다.

가수들이나 연예인들을 보세요. 그들은 우리가 화면을 통해 볼 때만 화려하고 멋져보이지만 그들은 그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들이 사는 인생을 보면 너무 불쌍합니다. 가수들은 말이 가수지 사실 밤마다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부르지 않으면 돈 벌지 못합니다. 밤새껏 밤무대에서 노래 부르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 낮에 잠을 잡니다.

또한 이 세상의 학벌이 자랑스럽고 자기를 영원히 지켜 줄 것 같지만 그것도 별거 아닙니다. 세상의 지식을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은 미련한 자라고 책망하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겸손하게 사용할 때 유익한 것이 되지만 하나님을 떠난 것들은 모두 허무한 것들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눈은 신실한 자들에게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눈으로 감찰 하시므로 우리의 인생을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아사왕이 무엇을 의지했나요? 환경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누리게 된 환경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는 이웃 나라와 무기를 의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있나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고 있나요? 그런 성도만이 끝까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너무 커서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그 만큼 의지하지 않기에 환경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느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것은 없나요? 너무 쉽게 나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라고 말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려고 하는데 방해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거해야 할 우상인 것입니다.

만약 그런 것을 제거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에 방해를 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를 실패자로 만들 것입니다.

사야 40: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은 자만이 지치지 않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므로 끝까지 신앙 생활을 승리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끝까지 신앙의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망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것 없이 다른 사람에게 구속받거나 간섭 받기를 싫어하는 마음으로 태어납니다. 그러기에 아이들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못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죄성을 가진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이 잘못했을 때에 책망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우리 자신이 바로 이런 모습이기에 책망을 더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 살면서도 책망받기를 싫어하게 되면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책망을 달게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책망 받기를 원치 않게 됩니다. 내가 벌어 내가 먹고 사는데 왜 참견하냐고 하며 싫어합니다.

아사 왕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태평성대를 누리자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찾아갔습니다. 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이웃 나라를 의지했느냐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때 아사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었나요? 아닙니다. 그는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선견자의 책망을 듣고 분노가 났습니다. 분명 그는 책망을 들을 때 빨리 무릎을 꿇고 회개했어야 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만약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은 아사 왕을 용서해 주시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 왕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 멋진 이름이 그에게 붙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다윗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되면 빨리 돌이켜서 회개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밧세바를 간음하고 난 후 나단 선지자가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호통을 치자 다윗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넙쭉 엎드려서 자기가 죄를 범했다고 자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죄를 지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죽음을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제 우리가 구원 받나요? 내가 죄인이라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을 때 용서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아사왕은 책망을 들을 때 분노를 냈습니다.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는 아람 왕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이스라엘을 이겼는데 그게 뭐가 잘못됐냐고 분노를 낸 것입니다. 아사 왕은 자기가 승리로 끝난 것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승리만 하면 되지 꼭 하나님을 의지해서 승리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로 하여금 회개 보다 분노를 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성경 말씀을 읽다 책망을 들을 때가 있나요? 혹시 오 목사가 설교를 선포할 때 여러분의 잘못이 지적 당하는 때가 있나요? 저는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준비해서 선포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양쪽 날 달린 칼이 되어 여러분의 심령까지 살피고 찌르므로 잘못된 부분을 치료하시는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그럴 때 어떤 반응이 여러분의 마음에 일어나나요? 저 목사님이 우리 집안 일을 어떻게 저렇게 잘 아시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아시고 말씀하시나? 누가 우리의 이야기를 엿들었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공부 할 때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 당하고 책망받게 될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나요? 분노가 일어나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나를 책망하신다고 생각하며 회개를 하시나요?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사왕 같이 분노를 내며 책망을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겸손하게 책망을 받아 들이고 회개하며 고치는 방법입니다. 분노를 낼 경우 신앙의 실패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쓰라리지만 회개하며 책망을 받아 들인다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손길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무디 목사님이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전도대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도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에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무디 목사님이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보는데 머릿기사에 ‘교만한 전도자 무디’라는 기사가 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날 기자들이 무디 목사님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했는데 사정이 있어서 거절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기자들이 런 기사를 쓴 것입니다. 그 기사를 본 무디 목사님의 스태프들은 무진장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무디 목사님, 이 말도 안 되는 기사입니다. 이것은 바로 인격살인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무디 목사는 가만히 그 기사를 읽더니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는구먼. 나는 이 기사보다 훨씬 더 교만한 사람인데, 이만하면 잘 써줬는데? 그리고 무디 목사님은 여러분, 이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겸손하라고 말씀하시는 신호입니다. 좀 더 겸손하기 위해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디모데후서 3장16절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로 사는 것인지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잘 못했을 때는 아주 심할 정도로 책망도 하십니다. 그리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며 의롭게 사는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이게 바로 성경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교훈 받고 책망 받으며 살 때 끝까지 승리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만나는 그 순간까지 신앙으로 승리하며 사는 성도가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