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11.19 감사를 할 수 있으려면 시136:10-16

어느 날, 나이 드신 여자 한 이 링컨 대통령의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그 부인이 포장된 바구니 하나 팔에 들고 는 것을 발견하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부인, 제가 무얼 도와드릴까요?” 그러자 그 부인은 바구니를 내려놓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 제가 오늘 대통령님을 찾아온 것은 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러 찾아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대통령 각하께서 빵을 무척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각하를 위해 제가 손수 구운 빵을 드리며 감사하고 싶어서  찾아니다.” 링컨 대통령부인의 말을 듣자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링컨은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습니다. “선하신 부인, 부인의 사려 깊고 욕심 없는 행동이 를 감동시켰습니다. 가 대통령이 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내 집무실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찾아온 목적은 모두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도와 달라고 찾아오지 않고 감사하다고 저를 찾아온 분은 부인이 첫 번째 손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도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매일 하나님 보좌에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요구와 간청들은 무진장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적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링컨을 찾아왔던 그 부인과 같은 사람인가요? 아니면 감사는 커녕 무엇인가 늘 달라고만 요청하는 사람인가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중에 ‘감사’라는 말보다 위대하고 복된 단어는 없다고 합니다. 특히 크리스천이라면 더더욱 하나님께 감사 늘 넘쳐나야 합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때로는 힘들고, 어렵고, 손해 보고, 괴로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늘 입에서 감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감사는 곧 찬양으로 변하게 됩니다.

시편을 읽다 보면 단어들 중에 특별하게 많이 나오는 단어 두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 감사하라’와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시 103:1).” 이렇듯 ‘찬양하라’와 ‘감사하라’는 단어가 시편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에는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9~20절에“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며 감사에 대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입술은 항상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고통을 많이 겪고 시련의 폭풍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참된 감사가 나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모르는 사람들은 감사의 깊이와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을 잘 모릅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 절망에서 다시 인생을 찾은 사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겼다가 회복된 사람들에게 참된 눈물이 있고 기쁨의 감사가 나옵니다. 진정한 감사는 고통 후에 있고, 은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시편150편 중에서 반정도를 썼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생각하자 감사 흘러 넘쳤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을 쭉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감사를 하라고 하시는데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가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한 일곱 구절을 같이 읽으면서 특별한 것을 발견해 보시길 바랍니다.

10절에서,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11절에서,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12절에서,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이에게 감사하라.

13절에서,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14절에서,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15절에서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려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16절에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리고 그외에도 우리에게 이런 위대하신 일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시고 있나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셨는가를 보고 깨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해 주신 것을 아는 만큼 감사를 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해 주신 것을 기억하시며 사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기억하며 살 때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어버리는 순간부터 불평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룰 때까지 그곳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이라는 나라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민을 갔을 때 애굽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땅인 고센땅에 정착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4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나님은 장정들만 60만명이 되도록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 계획을 이루시려는 나라로 만드시려고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도록 모세라는 지도자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이라는 나라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으로 사용했는데 그들이 가버리면 애굽에는 큰 인력 손실이 날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그들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에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시면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보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10가지 중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을 내리시므로 바로와 그의 백성들이 두손 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백성들의 환송을 받으며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애굽을 나왔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10가지의 위대한 재앙을 보면서 어떻게 했나요?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짱!이라고 하며 얼마나 입으로 말했나요. 그러나 그들은 차츰 하나님이 해 주신 일들을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입에서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 그들이 또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가다 보니 앞에 홍해라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그들은 또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께 원망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갈라서 마른땅 같이 건너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기적을 보자 또 다시 하나님께 할렐루야! 하며 감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그 손길을 기억하고 있을 동안까지는 감사를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를 할 때가 언제였나요?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해 주신 위대한 일을 기억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저와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 해 주신 일을 기억할 때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을 잊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어떤 존재였는가를 잘 아는 사람이 될 때 감사가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갈 신분이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용서해 주셨기에 죄용서 받고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왜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자꾸 불평불만을 하게 되나요? 이 기본적인 감사의 이유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한 바리새인이 자기 집에 식사를 하자고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들어가 앉으셨는데 갑자기 한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는 그것으로 예수님의 발에 붓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때 옆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예수님을 초대했던 바리새인이 마음에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선지자였더라면 이 여자가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터인데…그러면 저런 여자를 물리쳤을 터인데…그런데 그냥 이렇게 있다는 것은 혹시 이 사람이 선지자가 아닌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 바리새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시몬아, 빚진 사람이 두명이 있는데 그 중에 한명은 50 데나리온을 빚졌고, 다른 한 사람은 500 데나리온을 빚졌는데 그들이 갚을 것이 없어서 그것을 탕감해 주었다면 어떤 사람이 더 그 빚주는 사람을 사랑하겠느냐? 이때 바리새인이 대답을 합니다. 그거야 물론 더 많은 것을 빚진 자가 더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이때 예수님이 네 판단이 옳도다. 너는 내가 이 집에 들어올 때 발 닦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자기의 눈물로 내 발을 씻어 주었다. 너는 내게 입도 맞추지 않았지만 저 여인은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나에게 싸구려 감람유도 내 발에 붓지 않았지만 저 여인은 내 발에 옥합을 부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이 여인의 죄가 용서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적게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여인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누구라고 알고 있었나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그여자는 비싸고 좋은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더 사랑한다는 말은 더 감사를 했다라고 표현해도 됩니다. 사랑하는 자가 감사를 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또한 사랑합니다. 이것은 둘다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만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있나요? 아직도 감사가 나오지 않나요? 감사의 조건이 있어야 감사가 나오지 감사를 뭣 때문에 하냐라는 생각이 드나요? 그런 사람은 아직 하나님이 주신 구원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셔야 감사하다고 생각한다면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그 마음 때문에 늘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감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때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그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어떤 상태였는지 여러분은 아시나요? 그들이 편안하게 신앙 생활할 때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감사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예수를 믿자 온갖 핍박이 그들에게 찾아 왔습니다. 단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부당하게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이때 바울은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성도들을 향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상태에서 그들이 감사할 수 있었을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가운데서 감사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런 어려운 가운데서, 아무런 감사할 조건이 없는 것 같은 그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 시켜 주셨다는 구원의 감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나오지 않나요? 이런 저런 이유로 주님으로부터 자꾸 멀어지고 있지는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구원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에게 해 주신 구원의 손길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가 나오지 않게 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철저하게 불교 신자였던 어떤 분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 믿고 교회에 출석한지 7개월 되었을 때 그는 이제까지 자기가 무엇인가를 행함으로 의롭게 되므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종교에서 벗어나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자신이 운영하는 흑염소집 식당에서 요리를 하다 실수로 인해 오른쪽 손목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족그 교회 목사님은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기독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은 뻔합니다. 그래서 모두 걱정을 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것과는 정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사고를 당한 그가 이렇게 또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잘못된 친구들로부터 어지도록 하기 위해 이런 일을 겪게 하신 것 같다고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두 손으로 죄를 지므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한 손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라고 한 것이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는 멋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이런 사람은 구원 받은 기쁨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자기가 당한 삶의 위기를 신앙성장의 계기로 삼고 장부정리를 하기 위해 왼손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한 후 정상인 사람처럼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구원 받은 기쁨이 삶의 위기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기쁨을 느끼며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구원 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나요? 삶 속에서 힘이 들어도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나를 구원시켜 주셨다는 구원의 감격이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이런 감사가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언제 감사를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것들을 볼 수 있어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조건을 찾으려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볼까요? 시간상 몇 가지만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건강셨기에 오늘 예배에 나 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병원에 한번 가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병원 침대에 누워서 고통을 받고 있는지 파킹할 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제 아내가 알고 있는 렉싱톤에 큰 부자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농장을 크게 하므로 돈을 물쓰듯이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똑바로 혼자 서 있지 못하고 자꾸 넘어지는 병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병명을 알아보니 당뇨로 인해 오는 합병증이라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나요. 먹지도 못하고 혼자 서 있지 못하는데 재산이 무슨 도움이 되나요? 지금 건강이 있음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니 이것만 해도 감사의 조건으로 충분합니다. 아멘.

둘째, 이 아침에도 우리에게 믿음 주셔서 예배의 소중함을 알게 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도 그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놀고 먹고 잠자느라 이 시간에도 예배 장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올 수 있다는 이 한가지의 이유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믿음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에 이런 축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셋째, 우리가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태어난 나라가 다른 나라였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특히 이북이나 모슬렘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힘들게 살아야 했을까요?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그리고 좋은 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지난 20101119일 조선일보 기사에 이런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북한에 자식을 두고 중국으로 탈북한 어느 여성과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저는 전직 교사였습니다. 청진의 한 인민학교에서 25년간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학교에 안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배가 고파서 버틸 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오후 수업은 아예 없습니다. 제 딸도 중학교 3학년 때 그만 두었습니다. 아이들만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도 그랬습니다. 교사로서의 제 월급으로는 쌀1kg 밖에 살 수 없었습니다. 저는 6년 전에 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장마당에서 시레기 죽에 국수를 넣어 팔았습니다. 그런 후, 중국에 와서 제일 놀란 것은 밤에 나가면 어디서나 번적번쩍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 세상이 이렇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떠나온 청진에서는 7시부터 10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조선중앙방송에서 대중교양을 하는 시간대였습니다. 북한에 있을 땐 명절이 돼야만 돼지고기 1kg을 사먹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고깃국을 먹다가도 자식들을 생각하면 입이 떡떡 막힙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여성의 고백을 통해서 보면 우리가 누리며 사는 많은 것들이 다 감사할 제목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복을 느끼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받고 누리는 복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찬송가 429장을 보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는 가사가 나옵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이 주신 복을 셀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복을 세어 보시길 바랍니다.

넷째로, 감사할 이유는, 여러분에게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잠언서 17장17절을 보면,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친구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관계도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짜 위급한 일이 생길 때는 그래도 형제와 가족이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외롭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때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가족을 주신것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다섯 번째로, 여러분이 하루하루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 있음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힘들어 하나요? 그러나 우리는 하루하루 먹을 것이 있기에 얼마나 감사하나요. 우리는 있을 때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는 경험을 할 때 비로서 그것에 대한 귀중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가 나옵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도 별로 감사를 느끼지 못하고 마실 때가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나 허리케인이 지나가서 물을 공급받지 못하게 될 때 비로서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늘 공급해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그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의 조건을 찾으려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러한 조건들에 대해 먼저 감사를 하는 습관을 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다른 것들도 감사하며 사는 사람으로 변화 될 것입니다.

이런 멋진 말이 있습니다.
반딧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별빛을 주십니다.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십니다.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햇빛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사 주일로 보내는 감사주일입니다. 감사주일이라고 하니까 일년에 한번만 감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날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일년 내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가 오늘 그 감사를 표현하는 날로 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 내내 내 맘대로 살다 이 하루만 나와서 예배드리는 날이 아닙니다. 일주일 내내 주님 뜻안에서 열심히 감사하며 살다 주일날 나와서 그것에 대한 감사를 예배로 표현하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저는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모두 주님이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가 마음에 늘 남아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속에 주신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므로 감사가 끊이지 않는 축복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