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11.26 육신적인 용기와 영적인 용기 삼상17:41-49
Physical courage vs. spiritual courage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용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How do you define courage?

용기 있는 사람이란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일까요?
Is a courageous person someone who never experiences fear?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Many people define courage in this way.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해도,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전혀 마음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Despite facing difficulties and hardships, those who are courageous are considered to be fearless, but is this truly the case?

만약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닐것입니다.
If a person like that really existed, that person is not truly human.

아마 돌이나 철로 만들어진 동상일 것입니다.
It is an imaginary figure made out of stone or iron.

용기란 위험한 일을 만났을 때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A courageous person does not mean that he does not have any fear.

진정한 용기란 두려 가운데서도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것을 용기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용기가 있는 사람이란 두려움 중에 두려움을 이기며 앞으로 나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Courage is defined as the ability to push forward in the face of fear, and so a courageous person overcomes fear and pushes forward.

그런데 용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용기와 영적인 용기 입니다.
However, there are two types of courage. There is physical courage, and there is spiritual courage.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용기입니다.
These two are vastly different from each other.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두 가지의 다른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In today’s passage, we are able to see two people with two different versions of courage.

육신적인 용기를 가졌던 사람은 골리앗이라는 거인입니다.
The giant Goliath had physical courage.

그는 보통 사람보다 두배 정도 더 큰 신체적인 조건을 이용해서 교만하게 굴었습니다.
Using his physical advantages (including being twice the size of others), he proudly made his presence known.

그는 자기 이외에는 더 강한 자가 없다고 까불었습니다.
He claimed that there was no one stronger than he was.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과 무기를 자랑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도 모욕했습니다.
He took confidence in his strength and abilities and fully despised God and His people – the Israelite people.

그러나 육신적인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However, there are limitations to physical courage,

그러한 것을 많이 가졌다고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and we should not take confidence in our physical abilities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자신을 책임져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because ultimately, we can’t take responsibility for what we are able to do.

왜 그럴까요?
Why is that?

육신적인 용기는 신앙의 힘에서 나오는 용기가 아니라 인간의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Because physical courage does not come from faith. It comes from human pride.

육신의 허영을 만족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How many people risk their own lives in order to seek out the pleasure of one’s physical abilities?

1859년 여름, 한 곡예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설치해 놓은 밧줄 위를 걸어서 미국에서 캐나다로 건너가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In the summer of 1859, an exciting event took place across America from Canada by hanging on a rope set up by an acrobat at Niagara Falls.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줄타기 곡예를 벌인 주인공은 프랑스 출신의 곡예사 찰스 브론디입니다.
Charles Blondin, an acrobat from France, is the main character. 

그는 공중에 설치해 놓은 밧줄위에서 온갖 위험한 동자을 해내며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He stood on a rope set up in the air, performing all kinds of dangerous movements and gaining a frenzied popularity in Europe and America in the nineteenth century. 

그는 열광적인 관중들의 성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밧줄위로 걸어가기와 자전거를 타고 건너가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As a reward for the enthusiastic crowd, Blondin freely went up and down Niagara Falls in a variety of ways, including crossing with a heavy stick and riding on a bicycle.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도 사실 육신적인 용기가 없으면 하지 못합니다.
It’s true that if they did not have physical courage, they would not be able to do something like this.

작은 배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는 행위도 사실 육신적인 용기가 없으면 하지 못합니다.
If you don’t have physical courage, you couldn’t cross Niagara Falls in a small boat.

뉴욕에 있는 높은 빌딩 사이에 밧줄을 매어 놓고 줄 위로 건너는 것도 사실 육신적인 용기가 없으면 하지 못합니다.
If you don’t have physical courage, you wouldn’t be able to walk on a tightrope across New York City skyscrapers.

요즘 많은 사람들이 높은 다리 위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번지 점프를 합니다. 그래서 스릴을 즐깁니다.
These days, there’s a trend of people trying to jump off of tall bridges and experiencing the thrill of falling.

그것도 육신적인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You also must have physical courage.

왜 그럴가요? 이러한 일들도 자기 생명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일들이기에 용기가 필요합니다.
you are risking your own life in order to experience these things.

그러나 이러한 무모한 행동들은 우리의 신체적 조건을 이용해서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입니다.
These actions demonstrate a desire to present one’s abilities and display them for others to see.

이러한 일들을 통해 자기의 이름이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으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잘못된 용기들 입니다.
The physical courage that comes from the wrong desire to be recognized and known among others.

그러나 영적인 용기는 이러한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However, spiritual courage is sharply different from the physical courage.

오늘 말씀을 통해 다윗을 보세요.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See David in today’s scripture. When David was standing in front of Goliath, do you think he did not feel any fear?

아마 두려웠을 것입니다.
I’m sure he was afraid.

골리앗의 키가 얼마나 컸을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의 키는2m 93cm(11피트5인치)입니다.
Do you think how tall Goliath was? He was 11 feet 5 inches.

제 키는 1미터68 센티입니다.
I (Pastor Oh) am 5 feet 8 inches.

골리앗은 제 키 보다 2배 정도가 더 큽니다.
Goliath is twice my own height.

그러면 다윗의 키는 어느 정도 되었을까요?
Then how tall was David?

넉넉잡아 6피트라고 해 보세요.
If we were to be generous, he might have been up to 6 feet.

다윗과 골리앗을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When comparing between David and Goliath, there was a huge difference.

다윗도 골리앗을 볼 때 겉으로 위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When facing Goliath, David certainly would have felt the disadvantages that he had looking at the giant,

그러나 다윗이 그런 골리앗과 맛서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영적인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but the reason why David was able to face Goliath was because of spiritual courage.

그렇다면 다윗의 이런 영적인 용기가 어디에서 왔을까요?
Then where did David’s spiritual courage come from?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그 능력을 의지할 때 나왔습니다.
David knew God’s power and trusted in the Lord when coming to face Goliath.

물론 골리앗의 외모를 볼 때 두려웠을 것입니다.
Of course, David – seeing Goliath – would have felt fear,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 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다는 것을 믿을 때 골리앗을 향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입니다.
but when David believed that the Lord’s power was greater than Goliath’s strength, David had the courage to move forward against Goliath.

다윗이 골리앗에게 한 말을 보세요.
Look at what David said to Goliath.

골리앗, 너는 겨우 칼과 창과 단창을 의지하며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노라. 라고 하면서 다윗은 앞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David went forth and said, “You come to me with a sword and with a spear and with a javelin, but I come to you in the name of the Lord of hosts.”

그때 다윗은 진정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At this moment, David had true courage,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거인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and with God’s help, David defeated Goliath and obtained victory.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다윗과 같은 용기를 가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Bothers and sisters in Christ, I encourage you to also have this type of courage. Amen.

 

그렇다면 왜 우리가 영적인 용기를 가져야 할까요?
Then why do we need to have spiritual courage?  

영적인 용기를 가질 때 올바르게 결정을 하게 됩니다.
When we have spiritual courage, we can make the proper decisions.

만약 영적인 용기를 가지지 못하면 늘 육신적인 생각만 가지고 살게 됩니다.
Without spiritual courage, we end up living with physical worries and thoughts, and fear creeps into our lives.

그러면 두려워져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It will discourage us from making the proper decisions.

저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던 헤롯 왕이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I pity King Herod, the man who beheaded John the Baptist.

왜냐하면 그는 진정한 용기가 없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King Herod was driven by fear, and that led him to be used as a man who rebelled against the Lord.

그는 선지자 세례 요한을 잘 알았습니다.
King Herod knew who John the Baptist was.

헤롯은 요한을 의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He knew that John the Baptist was a righteous man who did what was right,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 하면서도 그를 보호 했습니다.
and so in his fear, he kept John the Baptist safe.

그래서 헤롯은 세례 요한이 충고를 할 때마다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번민을 했습니다.
King Herod, whenever he heard from John the Baptist, took the opportunity to reflect and consider what was said.

그는 세례 요한이 자기를 향해 충고를 할 때 달갑게 들었습니다.
King Herod listened closely and carefully.

그의 마음이 찔려도 충고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Even though Herod was pierced in the heart, he heard what John the Baptist had said.

그런데 그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However, this man – King Herod – was instrumental in the beheading of John the Baptist.

헤로디아의 딸이 헤롯의 생일날 춤을 추었습니다.
The daughter of
Herodia was dancing during King Herod’s birthday celebration.

헤롯은 그녀가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She did such a good job, and King Herod was proud of her

그래서 헤롯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and made the promise to do whatever she asked for in front of his party guests.

이때 헤로디아의 딸이 헤롯에게 요한의 목을 베어서 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This is when the daughter of Herodia said she wanted John the Baptist beheaded, and she wanted his head.

이때 헤롯은 자기가 잘못된 약속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At that point, King Herod knew that he made a bad promise,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취소하지 못했습니다.
but he was not able to cancel his promise.

왜 그가 약속을 취소하지 못했을가요?
Why not? Because he couldn’t have the courage to make that happen.

그가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체면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충동 때문입니다.
He had the desire to show that he was a man of his word and could accomplish what he stated in front of his guests,

그래서 그는 요한의 목을 베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and so he chose to behead John the Baptist.

만약 헤롯이 진짜 용기가 있었다면 빨리 잘못된 약속을 취소했을 것입니다.
If King Herod knew that he had the courage to deal with this problem, he would have cancelled on his promise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는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and he wouldn’t have committed this sin of killing one of God’s prophets.

영적인 용기를 가진 사람은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잘 선택합니다.
A spiritually courageous person will be able to make the right decision.

비록 자기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을 선택합니다.
Even if it brings harm to oneself, he will ultimately make the right decision.

에스더 왕비를 보세요.
Look at Queen Esther.

그녀는 자기 민족이 죽음을 당하게 될 때 옳바른 선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We can see that she made the right decision when her people were being threatened.

왕이 부르지 않을 때 왕에게 나아가면 자기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그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She knew that if she came into the presence of the king without his permission, she could die,

그러나 그녀는 옳바른 것을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but she knew that she needed to take courage in order to make the right decision.

영적인 용기를 가진 사람은 그러한 순간에도 옳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A spiritually courageous person would be able to make the right decision in those circumstances.

죽으면 죽으리라!” 그녀가 영적인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 편에서 선택할 때 그녀는 민족도 구하고 또한 자기의 목숨도 구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If I perish, I perish,” she said, and when she had the spiritual courage to make the bold decision to go in the face of death, she was able to save her people along with her own life as well.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용기를 가지고 어떤 일이든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승리를 얻게 됩니다.
When we have spiritual courage, no matter the circumstances, we can receive God’s help, and then we can obtain victory.

 

존 홉킨스 병원하면 세계에서도 알아 주는 유명한 대학 병원입니다.
John Hopkins University is one of top-ranked medical universities that is recognized all around the world.

그런데 그곳에서 재활의학 전문의사인 이승복 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And there is a special doctor named Lee Seung-bok.

그의 자서전의 제목은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입니다.
He wrote a book called “The Miracle is Within You.”

책의 내용을 보면 그 기적은 바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 보는 가운데 생긴다는 내용입니다.
When you read the book, he writes that the miracle is actually from God and His power.

이승복 박사는 신체가 정상이 아닌 불구자입니다.
Dr. Lee does not have a normal physical body,

그래서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진료를 하는 의사입니다.
and so he has to move around in a wheelchair to visit his patients.

8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He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when he was eight years old.

이민 생활이 어려웠지만 그는 기계체조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Immigrant life was hard, but he was interested in heavy gymnastics.

그는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타고 싶은 것이 그의 이었습니다.
He wanted to be in the Olympics and win a gold medal.

는 자신이 미국 대표 선수가 되기보다 한국 대표 선수가 되어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Instead of representing the United States, he wanted to represent South Korea in the Asian and Olympic games.

그런데 어느 날 연습을 하다 추락 사고를 당했습니다.
Sadly, one day as he was practicing, he had a huge accident,

그래서 그는 척추를 다쳤습니다.
and he got a spinal damage so he was unable to use his arms and legs.

그 사고로 인해 그의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장애인이 된것입니다.
He became a handidcapped person because of that accident.

그는 병실에 갇혀 절망에 빠졌습니다. 낙심과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He became greatly depressed, and he went through a horrible time.

그러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Then during that difficult time period, Dr. Lee met the living God.

그래서 그는 비록 올림픽의 체조 금메달은 놓쳤지만 인생의 금메달에 도전해야겠다는 영적인 용기를 가졌습니다.
Certainly, Dr. Lee wasn’t able to make it to the Olympics and get a gold medal, but he was able to obtain the spiritual courage that gave him the gold medal of life,

그래서 자기 같이 절망에 빠져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and so Dr. Lee chose to diligently pursue the path of helping others as a physician.

그가 장애인의 몸으로 의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It was very difficult for him to study to become a doctor with his physical incapacities.

그는 어려운 고비를 많이 만났지만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마침내 다트머스라는 명문 의대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However, he studied hard and was able to make it to Dartmouth College and graduated from its medical school,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 인턴 생활을 수석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and he did his residency at Harvard.

그리고 장애인의 몸으로 존 홉킨스 대학병원에서 당당히 전문의사가 되었습니다.
Finally, he became a special physician at John Hopkins University.

그의 이런 놀라운 모습을 지켜보 미국 친구들이 그를 SB라고 불렀니다. SBSuper Boy!란 뜻입니다.
American friends next to him called him “SB” meaning “Super Boy”.

그가 성인이 되자 그를 Super Man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They called him “Super Man” When he became an adult.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요?
How was this possible?

하나님을 바라볼 때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용기가 생겼습니다.
This miracle was because Dr. Lee saw and trusted the Lord and had spiritual courage.

그는 절망이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When difficulty came his way, he just looked to the Lord, and he just trusted the Lord.

그가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 볼 때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되는 어려운 상황을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He found comfort in the Lord in the midst of trouble, and he was able to persevere during times of struggle.

그러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Things that looked impossible miraculously became possible through the Lord.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 다 이런 용기를 가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I hope that everyone here today will be able to experience this type of spiritual courage.

이런 영적인 용기는 언제 생길까요?
When are you able to experience this type of spiritual courage?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느냐에 따라 그 만큼 용기가 생깁니다.
It all depends on how well you come to truly know the Lord.

이런 영적인 용기를 가진 사람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육신적인 생각으로 결정하지 않게 됩니다.
Those who experience this spiritual courage will – in any circumstance – make the proper decisions.

주님이 주시는 용기로 선택을 하게 됩니다.
You will be able to choose based on the spiritual courage given by the Lord.

그리고 또한 좋은 결과도 얻게 됩니다.
You will then be able to see the wonderful results that come from it.

성도 여러분! 우리 옆에는 모든 것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Jesus Christ, the One who can accomplish anything, is standing right next to us.

그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두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He left the glories of Heaven in order to save us from our sins,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모진 핍박과 고난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and He experienced and took on all sorts of pain and suffering so that we could be saved – and went to the cross and died to give us life.

그리고 죽으신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He then rose again after three days, and after returning to Heaven,

그리고 하늘나라로 가셔서 지금도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He continues to love and care for us.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경험하셨습니다.
Jesus experienced everything,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고통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and therefore, all of the suffering we experience here – He knows,

그리고 그 분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and He has the power to help us.

그러기에 우리가 그 분을 바라보고 그 분에게 도움을 구하면 우리를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If we look to Him for help, He will indeed help us.

이미 예수님은 우리에게 도움의 손을 내 밀고 계십니다.
He already is extending His hand to help us,

그러기에 우리가 손을 내 밀어 그 분의 손을 붙잡으면 됩니다.
and all we need to do is reach up and accept his hand of invitation.

여러분이 삶의 현장에서 힘들고 어려움을 만날 때 다른 것을 바라 보면 안됩니다.
Don’t seek other solutions in the midst of your troubles.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 봐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주시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옳바른 것을 선택하며 살 수 있습니다.
Only seek Jesus, and He will help us, and we will be able to obtain spiritual courage and live in Him.

저는 여러분 모두 예수님이 주시는 이런 영적인 용기를 가지고 승리하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 pray that everyone here will be able to live victoriously in Christ through the spiritual courage that He provides to us today.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