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7.12.3 돌이킬 수 없는 한번의 실수 요19:1-16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쓴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혼을 당했습니다. 저의 사연을 말하자면 일단은 제가 나쁜 여자가 맞습니다. 근데 한번의 실수로 인해서 이혼을 당하게 된 것이 너무 억울하네요. 그렇다고 욕은 하지마세요. 제가 이혼 당한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 유독 잘 대해 주던 동료 한분이 있었습니다. 저도 친근감을 느낀건 맞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그분과 같이 회사 생활을 한지 2년이 넘었습니다. 어느날 거래처를 만나 술한잔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약간 취기가 올라온 상태였는데 어떻게 하다보니깐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바로 전날 남편과 심하게 싸우고 남편에게 뺨을 얻어 맞은 분노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그 남자와 같이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바로 호텔에서 관계를 한후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남편이 제가 있는 호텔방으로 경찰관과 함께 찾아온 것입니다. 정말 하늘이 노래지고 정신이 번쩍들고 정말 정말 내가 미친년이지...

하여튼 그렇게 해서 이혼을 당하게 되었는데…물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건 맞지만 한번의 실수로 인해서 이혼을 당하고 모든것을 다 빼앗긴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 일이 있은 후로 아이들도 저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나마 저를 위로를 해주는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인데…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자기들이 제 남자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농담만 해대기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저 처럼 이렇게 억울하게, 물론 잘못을 인정하지만…그러나 한번의 실수인데 이혼을 당해서 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또 계신가요?

저는 요즘 하루하루가 정말 괴롭고 힘이 듭니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정말 왜 그랬는지 후회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여자분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도 가진 분입니다. 그러나 같은 회사 직장의 동료와 한번의 외도 때문에 이혼을 당한 여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 한번 실수한 것인데 이혼을 당한 것에 대해 억울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성은 단 한번의 외도로 인해 이제껏 쌓아온 인생의 모든 것들이 다 한꺼번에 허무러져 버렸습니다. 남편도 잃고 자녀도 잃었습니다. 가정도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왜 이 분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단 한번의 실수였지만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며 살게 되나요. 그러나 실수를 해도 회복이 될 수 있는 실수가 있는가 하면 한번의 실수가 그 사람이 평생동안 쌓아왔던 모든 공든 탑을 한껏 번에 와르르~~~ 무너뜨리는 실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한 사람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빌라도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유대라는 나라의 총독으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한번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 실수로 인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풍지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기록으로 내려오는 그의 이야기를 보면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박아 죽이는 일에 가담한 후 얼마 안 있다가 로마 황제로부터 호출을 당해서 로마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의 그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기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몇 가지로 추측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첫째로, 빌라도는 자기의 정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찬성을 했으며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 후에 그는 정치싸움에 밀려서 37년도에 황제에게 호출이 되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번째로 내려오느느 이야기는,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고 나서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로 인생을 끝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려 오는 이야기로는, 그는 믿음이 좋은 아내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첫번째 내려오는 이야기가 가장 타당한 이야기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빌라도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나요? 그는 죽이지 말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데 가담했던 것입니다. 그는 죄가 없는 예수님을 죽이라고 내어 준 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풍지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대역 죄인이라는 불명예의 이름이 지금도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조금 전 예배를 시작할 때 사도신경을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거기에 분명히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빌라도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아무리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고 세수대야에다 물을 떠다 놓고 손을 씻었지만 그의 죄는 그에게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나 여러분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할 부분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짓지 않고자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빌라도를 보면서 그가 어떤 마음이 될 때 하나님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마음을 다져보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따라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따르는 일은 당연히 옳은 방법이며 옳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것이 옳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빌라도가 실수한 것이 무엇인가요? 그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요일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리들에 의해 잡히셨습니다. 그리고 안나스에게 끌려 갔습니다. 안나스는 그해에 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심문을 합니다. 그러다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찾지 못하자 자기의 사위인 제사장에게로 보냅니다. 제사장 가야바는 아예 예수님을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죄인으로 뒤짚어 씌워서 죽이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갑니다.

이른 새벽에 큰 무리를 지어서 빌라도에게 찾아갑니다. 이른 새벽부터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는 유대인들을 보고 빌라도는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일로 왔느냐? 그러자 유대인들이 대답하길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자 빌라도는 너희에게 법이 있으니 너희의 법으로 해결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뭐라고 대답했나요?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나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끌고 온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그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예수님을 정상적인 재판 과정도 없이 그냥 죽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빌라도는 분명 많은 무리가 찾아와서 예수님을 죽여 달라고 할 때 예수님을 심문해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무리에게 나가서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노라고 선포를 합니다. 그러나 많은 무리가 지속적으로 예수를 죽여 달라고 소리치자 그는 그 무리의 목소리를 따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가 있는것 처럼 무리들이 원하는대로 따라 갔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즘은 무엇이든지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며 법을 만드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옳은 것을 따라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마음이 끄는대로 사는 감각적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가 무엇하는 곳인가요? 교회는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위대하심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고자 영적인 교육을 받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도간의 교제를 나누며 서로 용기를 주고 주님의 일을 함께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아직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를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하는 역할을 보면 교회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으로 흘러나가서 세상의 잘못된 것들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점점 흘러갈수록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키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교회인지 아니면 세상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나 사상이나 방법들이 세상과 똑 같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생각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단지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만 다르지 세상과 별다를 것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예를 든다면 70-80년 대까지만 해도 동성연애는 성경이 금하는 것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반대를 하며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대를 사는 사람들은 동성연애가 괜찮다고 찬성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지 여러분은 아시나요? 100명 중에 60명내지 65명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려고 동성연애가 괜찮다고 법으로 만드는 교단들이 여기저기서 막 나오고 있는 슬픈 시대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동성연애가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세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왜 그렇게 따라가고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 같은 사람은 이런 사람들의 동조를 얻어서 동성연애를 합법화시켜서 법으로 만들어 놓는 일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는 많은 사람이 원하면 어떤 것이든 옳다고 법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짓을 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셔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는데 무슨 소릴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도 입 닦치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일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나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법을 만들고 합법화를 시킨다 해도 아닙니다. 아멘.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면 아무리 적은 사람이 그것을 따른다 해도 그것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절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하기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따라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그 방법이 옳다고 하며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성경공부가 중요한 것입니다.

왜 빌라도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요? 많은 유대인들이 찾아와서 예수를 죽여 달라고 하니까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끝까지 죄가 없는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했어야 합니다. 그러면 비록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에 의해 미움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미디어를 조심해야 합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신문에서 말하는 것을 늘 조심해서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바이어스가 들어가도록 보도를 합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쪽으로 물을 타서 방송을 합니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좋은 것은 보지 못합니다. 그 반대 쪽에서 나쁜것을 털어서 보도를 하므로 사람들을 자극하려는 아주 좋지 못한 것이 이 시대의 미디어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을 보든 옳바로 보고 옳바로 판단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추구하며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라는 생각으로만 따라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옳다고 하시는가를 확인하시며 결정하실 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마음의 자세로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경고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빌라도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분명히 메시야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빌라도의 아내인 클라우디아라는 여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는 그 순간에 그런 메시지를 그녀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아내는 급하게 사람을 시켜서 자기 남편에게 이 메시지를 보냅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마27:19).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하게 빌라도에게 경고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그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마치 큰 권세를 가진 사람처럼 거들먹 거리며 자기가 예수님을 죽일 권세도 있고 살릴 권세도 있다고 하며 거만을 떨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늘 성령의 가르침과 경고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실 때 그냥 갑자기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면저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결정하고자 할 때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 먼저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선한 생각을 무시할 때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빌라도를 보세요. 분명히 그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상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는 유대인들에게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며 그들을 좇아 보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가 그 경고를 무시한 것일까요? 자기의 욕심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욕심이 차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빌라도는 자기의 권세를 유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하나님이 특별하게 주신 경고를 무시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도 어떤 생각을 할 때나 그리고 어던 결정을 할 때 주관적인 입장에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늘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실수를 줄이고 옳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빌라도는 만약 자기가 예수님을 풀어준다면 자기의 야망인 정치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만약 예수를 풀어준다면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보다도 자기의 욕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죽이는 쪽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선택했지만 그의 정치 생명은 끝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메시야를 죽인 죄인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는 둘다 잃은 것입니다. 만약 그가 메시야를 죽이고자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가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먼저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생각하며 결정하시나요? 또한 혼자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는 목회자에게 상담을 하면서 결정하시나요? 요즘은 개인주의가 강해서 상담도 하지 않고 자기 혼자 결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그러기에 점점 사람들의 마음이 자기 중심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먼저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결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각자의 마음에 선한 것을 선택하라고 하시는 음성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옳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먼저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나 자기의 욕심 때문에 성령이 하시는 음성을 무시하면 그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그럴 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선한 것을 늘 선택하며 사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고 사는 승리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